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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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인간에 대한 예의 / 한국경제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8. 2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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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은미희 < 소설가 >
 
정말 부쩍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공원이고,지하철 안이고,새벽 운동 길이고 간에 젊은 사람 못지않게 성성한 기운을 가진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삭의 임부들보다도 자글자글 주름이 꽃처럼 핀 노인들이 눈에 많이 밟힌다. 장유유서(長幼有序). 노인을 공경하라는 의미인데 언제부턴가 이 말이 힘을 잃었다. 젊음을 상품화하고,가치를 매기는 값싼 상업주의 탓에 노인에 대한 의식이 갈수록 각박해졌다. 그래서인지 나이 든 사람들과 어린 십대들 간의 불미스러운 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노인은 젊은 사람들이 불손해 노엽고 젊은 사람은 노인들의 몰염치함에 대해 불평한다. 한 쪽에서는 세상 끝장난 듯 한탄하고 한 쪽에서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볼멘소리를 한다.

어머니는 그랬다. 젊었던 시절에는 아버지의 그림자만 봐도 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했다. 한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아버지의 늙어감을 힘들어했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시다가 자주 사레가 들리셨고 국물을 흘리셨으며 좋지 않은 이 때문에 무른 것만 찾으셨다. 간혹 단단하게 씹히면 아버지는 종이에 싸서 상 한 쪽에 버리시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걸 참지 못하셨다. 우리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어머니는 나날이 속을 빼낸 자루처럼 늙어가는 아버지를 미워하시며 등 뒤에서 맵게 눈을 흘겼다.

그러던 어머니였는데 지금은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실수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계신다. 눈이 어두워 반찬에 밥알이 떨어졌는데도 모르거나 잦은 사레에 밥상에 같이 둘러앉은 가족들을 당혹케 만든다. 어머니는 지금 그런 당신을 이렇게 변호하신다.

"그래,내가 늙어보니까 느그 아버지 속을 알겠드라.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닌데 말이다. 눈은 안 보이고 자꾸만 몸속의 기관들이 낡고 헐거워지니까 그런 거였는데. 느그 아버지한테 미안하다. 내가 늙어보니까 알겠다."

 

어머니의 말씀이 아니어도 나 역시 세월의 흐름에 무심해질 수 없음을 실감한다. 어릴 때 어머니의 당부나 야단을 그저 노파심에서 우러나온 잔소리라고 여겼는데 이제 내가 어머니만한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어머니가 하셨던 말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지치고 피곤하며 아플 때는 마음 또한 강퍅해져서 내 몸 먼저 챙기고 싶지만 어머니를 생각해서,또 미래의 나를 생각해서,될 수 있으면 노인을 먼저 배려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 역시 그만큼 먼저 삶의 비의를 깨달은 사람처럼,젊은 사람들을 넉넉하게 보듬으면 안 될까. 젊은 사람의 양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당신의 몫을 더 갖기 위해 억센 손으로 갈퀴질하기 보다는 미망(迷妄)에 헤매는 젊은 사람을 그간에 깨우친 지혜로 인도해내는 그런 든든한 나무 같은 모습을 기대하면 과욕일까.

얼마 전 출판사에 볼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주말이었던 탓에 지하철 안은 만원이었다. 한데 한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얼굴에 난 주름은 균열처럼 깊었고 진갈색으로 그을린 피부는 노인의 삶이 결코 안온(安穩)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손사래까지 치며 자리를 사양하던 사람은 마지못해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 노인은 당장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거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저버린 채 몇 정거장 더 가서야 내렸다.

"이제까지 편하게 앉아 왔으니 다른 사람도 편하게 가야지."

그 허술한 차림의 노인이 수줍게 웃으며 한 말이었다. 그 말이 큰 울림으로 날아와 내 가슴에 박혔다. 다른 사람들 역시 잔잔한 파동들을 지닌 얼굴로 그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임산부를 매몰차게 몰아붙이며 일어서게 만들었다는 우울한 뉴스 속의 할아버지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노인공경을 할 줄 모른다며 태중(胎中)의 아이까지 싸잡아 나무랐다던가.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담배를 달라는 십대들을 꾸짖었다가 몰매를 맞고 병원에 입원한 노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뉴스에 사람들은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입력: 2006-11-24 18:08 / 수정: 2006-11-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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