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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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길연, 은미희 문학, 삶, 사랑을 이야기 하다 / 출판저널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8. 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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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길연, 은미희 문학, 삶, 사랑을 이야기 하다

6월 28, 2009 by admin  
Filed under Wide interview, 책으로 맺은 인연

 

소설가 정길연, 은미희 문학, 삶, 사랑을 이야기 하다

 

 초여름 햇볕이 한층 따가워진 어느 날 오후, 두 여성 소설가가 삼청동으로 나들이를 왔다. 《변명》(이룸)의 작가 정길연(48)과《나비야 나비야》(문학의 문학)의 작가 은미희(49).《변명》은 1998년에 출간작을 재출간한 작품으로 SBS 드라마 <두 아내>의 원작이며, 은미희의《나비야 나비야》는 조선시대 여류시인의 삶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문단에서 ‘절친’으로도 소문난 두 작가가 삶과 사랑에 관한 다감하고 도 유쾌한 수다를 나눴다.

 

글 한성아 객원기자 사진 임수식 작가 장소제공 진선북카페

 

 북카페로 들어서는 두 작가의 표정은 화사했다. 시크한 멋쟁이 정길연, 여성스럽고 다정스러운 은미희. 정길연은 1984년 <문예중앙>으로, 은미희는 1996년 <전남일보>와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문단으로는 정길연 작가가 선배고 나이로는 은미희 작가가 한 살 많지만, 둘은 누가 보기에도 허물없는 친구 사이다. 집도 같은 동네라 삼청동으로 오는 길 내내 이야기꽃을 피웠을 두 여인은, 자신들의 각별한 인연을 기자에게 소개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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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이하 정) / 10년 정도 됐지, 우리가?


은미희(이하 은) / 그때 내가 광주에서 살다 올라왔는데, 예전부터 정말 좋아했잖아. 문장도 기가 막히고, 그 감수성과 따뜻함, 진솔함이 부러웠어요.


/ 인연이라는 게 있나 봐요. 은 선생이 지방에서 올라왔으니까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맨날 여자들끼리 모였어요. 지금은 무슨 일 있으면 서로 같이 챙겨주고.


/ 그래서 첨에 내가 어떻게 하면 친해볼까 싶어서 얼쩡얼쩡하고 그랬잖아. (웃음)


(정길연의《변명》은 주인공‘태희’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불륜의 사랑에 빠진 스토리를 그렸고, 은미희의《나비야 나비야》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詩)마저 버린 400년 전의 여류시인‘이옥봉’의 기구한 삶과 재능을 되살려낸 소설이다.)

 

정길연과‘태희’vs 은미희와‘옥봉’

 

/《나비야나비야》를읽으면서느꼈어요‘. 옥봉’은정말은미희의 분신이구나. 옥봉의 현현이 은미희구나. 역사 속 실존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 않은 옥봉을 읽었어요. 정을 다 주는 태도라든가 사랑을 할 때 다 바치는 태도가 옥봉에 녹아 있더라고.


/ 그래서‘작가의말’에도썼잖아‘, 난은옥봉이야’라고. (웃음) 사실 나는《나비야 나비야》를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썼어요. 사랑하는 감정이 소설에 다 들어갔죠. 그런데 길연씨하고 나하고,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나 정서는 같은데, 자세는 참 달라요. 나는 그야말로 대책 없이, 우매할 정도로 푹 빠지는 반면에, 길연씨는 참 현명하고 지혜로워요. 그래서 내가 조언도 많이 구하고 야단도 맞고 위로도 받는 입장이죠. 길연씨를 보면서도, 《변명》을 보면서도, 늘 부러워요.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 나는 10년 전《변명》을 쓸 당시에, 그때까지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주인공‘태희’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사랑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느끼는 여잔데, 그 당시의 내가 바로 그랬어요. 그 이후에 두어 번 연애를 해봤지만, 사랑을 할 때 나는 다 해주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딱 끊어요. 근데 은 선생은 마음이 굉장히 착하고 여려서, 자기 상처가 더 큰데도 상대방이 상처 입을까봐 자기가 상처를 떠안는 타입이죠. 나는 다 해주다가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순교를 했으면 했지 개죽음, 과로사는 절대 안 하겠다’그러거든. 내가 좀 못됐나봐.


/ 나는 순교하는 게 소망인데. (웃음)


/ 성격 때문인가 봐요. 나는 담배든, 남자든, 금단현상이 없더라고. 할 땐 열심히 해요. 그러다 끊어져도 고통을 크게 안 느끼는 타입, 냉정한 타입이야. 난 일단 돌아서면 홀가분한 사람이에요, 길게 가지도 않고. 그런 면에서 ‘태희’랑 내가 많이 닮은 거 같아요.


/ 나는 그럴 수 있는 게 부러워. 다른 사람이 나 같은 사랑을 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거예요. 멍청하게 너무 많이 아파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정길연 선생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자기는 그게 콤플렉스라고 표현했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를 지켜내니까. 그건 내가 갖지 못한 거니까.


/ 은 선생은 자기를 다 녹여버리니까.


/ 난 옥봉이 시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걸 충분히 이해해요.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소설을 포기하라고 하면 나도 행복하게 소설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소설도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인데, 내가 먼저 있고 소설이 있는 거지 소설이 있고 내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정말로 내 인생을 올인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싶으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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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난 자리의 냉정과 열정

 

/ 금단현상이 없다는 건 자기 자신을 관찰하기 때문일 거야. 객관화시키는 거지.


/ 응. 그래서 슬픈 순간에 슬퍼하다가도 감정에 매몰이 잘 안 되고 객관화 되어버려요. 난 실생활에서도 수납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머릿속에도 수납이 참 잘 되나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 정리되면 더 이상 저항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아요.


/ 훈련인지 본성인지, 그런 거 보면 참 부럽기도 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감정적으로 푹 빠져들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아요?


/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힘든 거보다 오히려 빠져들지 못해서 힘든 게 있어요, 난.


/ 그치 그치. 옥봉이처럼 푹 빠지는 걸 못 하지?


/ 그래서 작가로서 굉장히 치명적인 거다, 아주 촉촉한 연애소설은 못 쓰겠다 싶었어. 이옥봉이란 소재는 나라면 전혀 못 썼을 거야.


/ 하지만 감수성 있는 문체를 가지고 사물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어서 값을 발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길연씨가 부럽더라. 작가적으로 거리감을 두어야 할 때가 있는데, 난 소설 속 캐릭터와 한 덩어리가 되어버리니까. 근데 정작 본인은 참 끔찍할 거 같아.


/ 맞아. 별로 좋지가 않아요. 전에 어떤 작가가 이런 글을 쓴 걸 본적이있어요.‘ 아들이 죽었을 때도 그걸 작가로서 관찰하는 내가 있다’던가. 그런 것처럼 어떤 일로 마음아파 하면서도‘그거 몇 프로가 진짜야?’하는 내가 내 속에 있거든요. 그럴 때 섬뜩해, 내 자신이. 내가 지나치게 이성적인 건가, 냉정하고 야멸찬 건가 하는 혐의를 나한테 많이 둬요. 사랑에 대해서도.


/ 나는 사랑 때문에 정말 아팠을 때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모델이《변명》의 태희였어. 나는 무감각하게 있고 상대만 나를 사랑하면, 나는 안 아플 거 아니야. 앞으로는 그런 관계를 갖고 싶기도 해. 사랑에 안 빠지는.


/ 근데 그건 우리 둘 다 잘 안 될 것 같아. 우리 둘 다 사실은‘사고치는 과’잖아. (웃음) 끝을 맺는 방식이 달라서 그렇지.


/ 맞아. 아파했으면서도 또 사랑을 주고 싶은데 어떡해. 꼭 옥봉이처럼. 난 사랑이 끝나고 나면 항상 그런 걸 느껴요. 내가 더 이상 못 받아서가 아니라, 내 안에 넘쳐나는 사랑을 더 이상 줄 대상이 없다는 거, 그게 정말 견딜 수 없더라고. 사랑은 받는 게 아니고 주는 거라는 말은 정말 몹쓸 말이야. 그래놓고 나서 정신 차리면 시효가 다 끝나 있고, 못난 나만 남아있더라고. 반성할 때는 이미 시효가 끝난 뒤야.


/ 받는 건 막 죄송스럽지?


/ 맞아. 막 불편해.


/ 그 부분은 우리가 비슷한데. 우린 항상 상대방과 밀고 당기는게 안 돼요, 성격상. 있으면 다 줘야 되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줘야 되지. 주고 싶은 거 다 털어주고 나서 나중에 보면 오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다 실패하는 케이스예요, 둘 다. 왜 있잖아, 사랑에 강한 여자들은 남자가 10개를 줘도 한 2~3개 받은 것처럼 군대. 그런데 우린 겨우 1개 받고는 10개 받은 것처럼 고마워하잖아. 다만 차이점이, 나는 더 줄 게 없으면 끝나는 반면, 은 선생 같은 경우는 더 줄 게 없다고 마음 아파하고 상처를 오래 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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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코드, 그 안의 사랑과 권력에 대하여

 

/ 사랑에빠진다는건‘, 사랑한번해볼까’마음먹는다고되는게 아니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준비도 없이, 사소한 것 가지고 사랑에 빠지지. 그 사람이 머리 한 번 쓸어 넘기는 모습에 반한다든가. 그 담부턴 그 사람이 바늘처럼 가슴에 박혀버리고, 옥봉이 사랑에 빠질 때처럼 그 사람만 부각되어서 후광이 보이지. 그런데 싱글일 때 사랑에 빠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 경우엔‘금기’가 주는 묘한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아요.


/ 태희의 남편이 불륜에 빠지잖아. 하지만 나는‘불륜’이란 말조차 거북해. 다른 여자,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건데, 도덕과 법으로 따지다 보니 불륜이라 하지. 그 소설을 쓸 무렵엔 사랑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후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굉장히 큰 주제더라고요. 안온하게 가정을 꾸리고 있든 아니든, 남자와 여자의 속마음에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거든. 그런 문제가 어느 집이나 한두 번씩은 불거지더라고요. 그러니 얼마나 흔한 주제야. 식상하다고 하면서도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똑같은 이야기들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진짜 좋은 연애소설 한 번 쓰고 싶다’는 게 작가들의 꿈인데, 작가들의 꿈이라는 건 결국 인간의 꿈이기 때문에 자꾸 그 주제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불륜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이 주제라는 거지요. 그리고 난 태희의 입장이라는 것도 잘 알고 나도 그런 상황을 겪어봤지만, 왜 모든 아내들이 권리에만 집착하는가 싶어요. 무슨 대단한 기득권이라고. 그게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것을 내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


/ 난 기득권이라고 생각해. 법적으로 얼마나 짱짱한 권력이고 기득권인데.


/ 난 내 언니나 여동생이라도 그렇게 얘기해요. 네 남편을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네 남편이 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정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조건 때문에 붙들고 있는 건 제도가 만들어준 폭력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차라리 새로운 사랑의 길을 열어주고 자기는 더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정직한 삶이 아닐까?


/ 그건 소설가의 입장이지. 난 그 권력을 갖고 싶어.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권력을.


/‘조강지처’가 되고 싶은 거지? (웃음)


/ 난 정 선생과 달리 아직 한 번도‘안’갔다 왔는데 (웃음) 사랑에 빠졌을 때도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되는데 그게 무서워서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사랑하는 이가‘나한테 와라’그러면 짱짱한 법적 권리를 취득해서 가고 싶은 맘이야. (웃음) 이젠 정말 편안하게 손잡고 늙어갈 수 있는 동무를 구하고 싶은 거니까.


/ 지난주에 저자 사인회를 했는데, 세월이 변했다는 걸 느낀 게, 10년 전의 독자들은《변명》을 읽고 화를 많이 냈어요. 태희가 너무 바보 같다고도 하고, 남성 독자들에게 항의전화도 받았어요. 근데 요즘 젊은 독자들은‘세 인물이 다 이해가 된다’그래요. 법적인 기득권보다‘사랑’이 관계를 결속하는 더 큰 권리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쿨해진 거지.


/ 그런데 나는 이제 와서 법적인 권리를 운운하고, 정말 지진아네. (웃음)


/ 고전적인 거지. 그건 귀한 거야. (웃음)

 

옥봉이 태희에게, 태희가 옥봉에게

 

/ 내가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허우적거릴 때마다 정 선생이 이렇게 얘기해줬잖아.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라고. 그 말 듣고 나면 덜 아파요, 정말로.


/세월이란게그런것같아《. 변명》의태희도10년이지나면서 이제는 많이 너그러워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어 번쯤 연애도 해보고 실패도 해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좀 더 인정해주게 되지 않았을까? 태희라는 여자는, 자기는 정말 사랑을 받지도 해보지도 못했으면서 남의 사랑을 인정해줘야 하는 위치였잖아요.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그녀가 이제는 사랑 때문에 외롭지 않았으면 해요.


/ 내 생각엔 아주 매력적인, 예전보다 더 매력적인 성격의, 내가 정말 닮고 싶어 하는 여자가 되어 있을 거 같아요. 길연씨 같은.


/ 나 자신도 태희를 쓸 때와 비교하면 많이 변했지. 인생관이 변했다기보다, 인생을 즐기는 거야. 전에는 율법적이고 원칙적이었는데, 나 자신에게 엄격한 게 많이 없어졌어. 요즘엔 매일매일 나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나하고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요.


/ 내가‘옥봉’이라면‘태희’에게이렇게말해줄거야‘. 이세상도, 이 세상의 사랑도 다 네 거야. 그러니 다 가지고서, 정말 여제처럼, 남자들을 다 끌어안고 호령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 내가‘태희’라면‘옥봉’에게 이렇게 말하겠어. ‘헌신적으로 마음을 다해서 지고지순하게 상대방을 사랑하더라도, 그 사랑이 끝났을 때는, 시의 힘으로, 문학의 힘으로, 자신을 제자리에 다시 빨리 놓아줄 수 있었으면 해. 또 다른 사랑의 자리로 나비처럼 날아갈 수 있었으면 해. 옥봉은 그 안에 사랑을 가진 사람이니까.’


/ 갑자기 등에 날개가 돋는 거 같은데? (웃음)

 

두 여인의 이야기에, 인터뷰 내내 기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빨려들었다.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두 작가의 웃음소리가 창 밖 초여름 햇살보다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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