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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아름다운 인생
어찌하여 인생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끔찍한 시련과 핍박 속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이도 인생이 아름답다 했으니, 우리 역시 당장에 힘들지라도 미래를 생각하며 한번 살아봄 직하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식상하기조차 한 이 아포리즘에 동의하는 것은 나 또한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과거의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긴 좌절이나 절망이 없었던 이가 세상에 있을까.
내게 주어진 그 시련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들이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구국열사들의 그것처럼 위대하고 거창하지 못하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욕심에 기인한 것이지만, 어찌 됐든 내가 통과해온 그 길에는 숱한 좌절과 절망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 내 발을 걸었다. 어찌 그것들을 다 열거할 수 있을까.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가족 문제였다. 힘과 용기를 주어야 할 가족이 오히려 삶의 의욕을 꺾고 힘들게 했으니 나는 모든 것을 엽렵하게 해낼 수 없었다. 한데 그 가족 문제라는 것도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또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인 나는 부모님의 공평하지 못한 사랑을 늘 불만으로 여겼다. 그렇게 아들을 바랐으면서도 겨우 하나밖에 얻지 못하고, 딸만 내리 네 명이나 둔 우리 부모님의 사랑법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은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었고, 둘째는 맏딸이라는 이유로 속 깊은 사랑을 쏟아부었다. 유난히 욕심이 많은 셋째는 그 욕심 때문에 손해 보지 않고 제 몫을 챙기면서 살았고, 동생은 막내라고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을 받았다. 미운 오리새끼는 언제나 나였다. 화가 나면 마땅히 풀 대상이 없던 어머니는 내게 곧잘 미운 소리를 했고, 난 늘 형제자매들에 치여 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살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 분명 감각이 무디어 덜 아픈 손가락은 있는 법이었다.
가족들 관계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글 쓰는 동인들 가운데서도 내가 등단이 제일 늦었으니, 다른 동인들이 하나둘 수상 소감을 통해 습작의 고통을 토로할 때마다 겪어야 하는 열패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찌된 게 그 열패감과 상실감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통증으로 나를 힘들게 하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못된 생각까지도 했었다. 내 인생이 더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누추해지고 비루해지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짓는 게 더 좋겠다고 여겼다. 그러면 고통도 줄어들 터이고 자존감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실행의 방법에 있어서 몇 가지를 머릿속에 두고 기회를 엿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나는 다른 이유를 대며 그 절망의 바닥을 기어올랐다. 한편으로는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새옹지마니, 전화위복이니, 혹은 일체유심조니, 은산철벽의 경지 등을 외며 힘겹게 외며 그 지난한 시간들을 견뎌내고 통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그때가 있어 지금이 더 아름답다. 그 고통들이 양념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내 무뎌진 감성을 자극한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어려움이 없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하루하루 사는 일이 심드렁하고 어떤 자극에도 무감각하게 반응한다고. 그래서 그런지 우울증을 겪는 이 또한 많다고. 적당한 걱정은 삶의 동력일지도 모른다.
한데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예전의 신명나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열패감과 상실감과 분노만이 암죽처럼 진득하게 흐르고 있을 뿐, 그 열패감과 분노를 삶의 에너지로 치환시키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다만 상대적 결핍감에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다. 컵 속에 절반 정도 담긴 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공익 광고가 생각난다.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과 ‘절반이나 남았다’는 것 가운데 우리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평의 순간에도, 고난의 순간에도, 행복한 순간에도 시간은 간다. 한번뿐인 삶, 불평만 하다 탕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어쩌랴.
[[은미희 / 소설가]]
내게 주어진 그 시련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들이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구국열사들의 그것처럼 위대하고 거창하지 못하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욕심에 기인한 것이지만, 어찌 됐든 내가 통과해온 그 길에는 숱한 좌절과 절망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 내 발을 걸었다. 어찌 그것들을 다 열거할 수 있을까.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가족 문제였다. 힘과 용기를 주어야 할 가족이 오히려 삶의 의욕을 꺾고 힘들게 했으니 나는 모든 것을 엽렵하게 해낼 수 없었다. 한데 그 가족 문제라는 것도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또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인 나는 부모님의 공평하지 못한 사랑을 늘 불만으로 여겼다. 그렇게 아들을 바랐으면서도 겨우 하나밖에 얻지 못하고, 딸만 내리 네 명이나 둔 우리 부모님의 사랑법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은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었고, 둘째는 맏딸이라는 이유로 속 깊은 사랑을 쏟아부었다. 유난히 욕심이 많은 셋째는 그 욕심 때문에 손해 보지 않고 제 몫을 챙기면서 살았고, 동생은 막내라고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을 받았다. 미운 오리새끼는 언제나 나였다. 화가 나면 마땅히 풀 대상이 없던 어머니는 내게 곧잘 미운 소리를 했고, 난 늘 형제자매들에 치여 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살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 분명 감각이 무디어 덜 아픈 손가락은 있는 법이었다.
가족들 관계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글 쓰는 동인들 가운데서도 내가 등단이 제일 늦었으니, 다른 동인들이 하나둘 수상 소감을 통해 습작의 고통을 토로할 때마다 겪어야 하는 열패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찌된 게 그 열패감과 상실감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통증으로 나를 힘들게 하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못된 생각까지도 했었다. 내 인생이 더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누추해지고 비루해지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짓는 게 더 좋겠다고 여겼다. 그러면 고통도 줄어들 터이고 자존감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실행의 방법에 있어서 몇 가지를 머릿속에 두고 기회를 엿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나는 다른 이유를 대며 그 절망의 바닥을 기어올랐다. 한편으로는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새옹지마니, 전화위복이니, 혹은 일체유심조니, 은산철벽의 경지 등을 외며 힘겹게 외며 그 지난한 시간들을 견뎌내고 통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그때가 있어 지금이 더 아름답다. 그 고통들이 양념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내 무뎌진 감성을 자극한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어려움이 없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하루하루 사는 일이 심드렁하고 어떤 자극에도 무감각하게 반응한다고. 그래서 그런지 우울증을 겪는 이 또한 많다고. 적당한 걱정은 삶의 동력일지도 모른다.
한데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예전의 신명나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열패감과 상실감과 분노만이 암죽처럼 진득하게 흐르고 있을 뿐, 그 열패감과 분노를 삶의 에너지로 치환시키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다만 상대적 결핍감에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다. 컵 속에 절반 정도 담긴 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공익 광고가 생각난다.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과 ‘절반이나 남았다’는 것 가운데 우리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평의 순간에도, 고난의 순간에도, 행복한 순간에도 시간은 간다. 한번뿐인 삶, 불평만 하다 탕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어쩌랴.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9-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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