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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모성의 삶
가끔, 사람이라는 것과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 생각 끝에 정리되는 결론이나 정답은 없다. 그저 처음 그대로의 질문이 남아 있을 뿐. 정말, 사람이란 뭘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고 하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을 알지 못한다. 하긴 이 물음에 명쾌히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누굴까.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그랬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사람의 정명론에 대해 이야기한 셈인데, 어떤 것이 사람다운 것인지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어쨌거나 사람의 도리나 올바른 사람살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성현들의 말씀이나 종교적 율법에 나타나 있긴 한데, 왠지 그것만으로는 허전하다. 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억제하며 그렇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도 감정의 동물이며, 본능에 충실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원초적 자아가 나를 일탈로 부추기는 것이다. 정말,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유희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이다. 그러면서 가장 인간다운 삶은, 후회 없는 삶은, 정직하게 자신을 따라 사는 거라는 자기 변명도 잊지 않는다.
한데, 며칠 전 지방나들이를 할 일이 있었다. 나와 동행한 사람은 나보다 세 살 적은 여류시인이었다. 그저 이런저런 자리에서 얼굴과 이름만 트고 살았을 뿐, 특별히 개인적으로 친하지는 않았으니, 그의 내밀한 삶의 이력들을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일 때문에 하루를 꼬박 같이 있다 보니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주로 내 글쓰기와 관련한 고충을 토로했고, 그는 가족 이야기를 했다. 시쳇말로 ‘동안’이었던 그의 나이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벌써 대학생이 되는 아이들이 둘이나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그가 혼자 몸이라고 생각해 온 터였다. 그런데 자분자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그의 삶이 만만치 않았다.
듣는 동안, 스물여덟 살에 교통사고로 먼저 남편을 보내고 네 살짜리 딸과 한 살짜리 아들을 홀로 키워낸 그의 억척과 지난한 세월이 가물가물 눈앞에 잡혔다. 처음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막막했을 뿐. 당장에 먹고 살아야 했던 그는 분식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통계청 조사원으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을 했다고 했다. 그 틈에도 그는 자신을 놓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고 했다. 힘들게 벌어 대학에 진학하고, 시인이 되었으며, 두 아이를 키워냈단다.
그러면서 그는 비밀한 고백을 하나 털어놓았다.
두어 번,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망칠 생각을 했더란다. 하루하루가 너무 끔찍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한밤에 무작정 터미널로 가서는 가장 늦은 시각에 출발하는 차표를 사서는 기다리다가 결국은 떠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안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왜 아니겠는가. 스물여덟의 나이에 두 목숨을 책임져야 했으니, 어찌 그 삶이 편했을까. 모성의 본능과 이기심 사이에서 힘들게 시소를 탔을 그의 갈등과 번민이 내 가슴에 묵직하게 얹혔다.
돌아온 뒤에 그는 가족들에게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자식들을 두고 새 출발을 하라며 부추기는 가족들에게, 한번만 더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미워하거나 함부로 할 때에는 가족들과 인연을 끊겠다고 협박했다고 했다. 아이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어미가 많은 이 시대에 그의 고백은 참으로 울림이 컸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부끄러웠다. 그 나이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스물여덟의 나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그 어중간한 나이에 나는 나를 책임지지도 못한 채 얼마나 방황했던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의연히 두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는 진정 사람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가 아름다운 이유다.
[[은미희 / 소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그랬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사람의 정명론에 대해 이야기한 셈인데, 어떤 것이 사람다운 것인지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어쨌거나 사람의 도리나 올바른 사람살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성현들의 말씀이나 종교적 율법에 나타나 있긴 한데, 왠지 그것만으로는 허전하다. 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억제하며 그렇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도 감정의 동물이며, 본능에 충실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원초적 자아가 나를 일탈로 부추기는 것이다. 정말,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유희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이다. 그러면서 가장 인간다운 삶은, 후회 없는 삶은, 정직하게 자신을 따라 사는 거라는 자기 변명도 잊지 않는다.
한데, 며칠 전 지방나들이를 할 일이 있었다. 나와 동행한 사람은 나보다 세 살 적은 여류시인이었다. 그저 이런저런 자리에서 얼굴과 이름만 트고 살았을 뿐, 특별히 개인적으로 친하지는 않았으니, 그의 내밀한 삶의 이력들을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일 때문에 하루를 꼬박 같이 있다 보니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주로 내 글쓰기와 관련한 고충을 토로했고, 그는 가족 이야기를 했다. 시쳇말로 ‘동안’이었던 그의 나이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벌써 대학생이 되는 아이들이 둘이나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그가 혼자 몸이라고 생각해 온 터였다. 그런데 자분자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그의 삶이 만만치 않았다.
듣는 동안, 스물여덟 살에 교통사고로 먼저 남편을 보내고 네 살짜리 딸과 한 살짜리 아들을 홀로 키워낸 그의 억척과 지난한 세월이 가물가물 눈앞에 잡혔다. 처음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막막했을 뿐. 당장에 먹고 살아야 했던 그는 분식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통계청 조사원으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을 했다고 했다. 그 틈에도 그는 자신을 놓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고 했다. 힘들게 벌어 대학에 진학하고, 시인이 되었으며, 두 아이를 키워냈단다.
그러면서 그는 비밀한 고백을 하나 털어놓았다.
두어 번,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망칠 생각을 했더란다. 하루하루가 너무 끔찍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한밤에 무작정 터미널로 가서는 가장 늦은 시각에 출발하는 차표를 사서는 기다리다가 결국은 떠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안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왜 아니겠는가. 스물여덟의 나이에 두 목숨을 책임져야 했으니, 어찌 그 삶이 편했을까. 모성의 본능과 이기심 사이에서 힘들게 시소를 탔을 그의 갈등과 번민이 내 가슴에 묵직하게 얹혔다.
돌아온 뒤에 그는 가족들에게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자식들을 두고 새 출발을 하라며 부추기는 가족들에게, 한번만 더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미워하거나 함부로 할 때에는 가족들과 인연을 끊겠다고 협박했다고 했다. 아이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어미가 많은 이 시대에 그의 고백은 참으로 울림이 컸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부끄러웠다. 그 나이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스물여덟의 나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그 어중간한 나이에 나는 나를 책임지지도 못한 채 얼마나 방황했던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의연히 두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는 진정 사람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가 아름다운 이유다.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9-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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