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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훈훈한 이웃
문득 고개 들어 보니 나무마다 붉은 물이 들어 있는 것이 어느새 가을이 찾아와 있다. 나무가 노랗고 붉게 변해 가는 것도 모른 채 무엇에 그리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일까. 세월은, 시간은 얼마나 비정하고 야박한 것인가. 사람들이 눈치 채든 채지 못하든 그렇게 기다려 주지 않고 재깍재깍 제 갈 길을 가니 말이다.
그렇게 찬바람의 계절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자연 시간이나 지리 시간에 우리나라는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4계절이 있다고 배웠다. 뚜렷한 사계가 우리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라고 했다. 철철이 금수강산이라 했다.
하지만 가끔, 계절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나의 계절이라면 그만큼 삶이 간편할 수도 있겠다고. 그러면 냉방기, 난방기가 따로 필요 없을 테고 계절별로 옷도 필요치 않으며 이불이며 신발은 물론 자질구레하게 손과 마음을 뺏어가는 일도 줄어들 거라고. 정말, 요즘처럼 살기가 팍팍한 시절에는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그러지 않던가. 춥고 배고픈 것이 가장 서럽다고.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겨울나기가 그만큼 녹록지가 않다. 하긴 추위가 어디 겨울에만 국한돼 있는 것인가. 한여름에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추위와 한기 역시 겨울의 그것 못지않게 클 수도 있을 터.
어쨌거나 달라진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옷장 정리를 했다. 한데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주워 보니 지난 여름 러시아에 갔을 때 사진들이었다. 내 사진만 따로 보내온 것을 받아서는 봉투째 옷장 선반에 올려 놓았던 것들이었다. 그랬다. 지난 여름에, 나는, 우리는, 러시아에 갔었다. 8·15 광복에 맞춰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또 하나의 소수 민족으로 그 땅에 정착해 버린 우리 동포들을 위문하는 자리였다. 가수들로 구성된 공연단과 함께 한 그 위로 방문은 순수하게 민간 봉사단체인 국제휴먼클럽이 주관한 행사였는데, 새삼스레 보는 얼굴들이 반가우면서 그때의 일이 어제의 일인 듯 떠올랐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만난 우리 동포들은 벌써 우리말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어렵사리 꺼내는 우리말은 귀 기울여 들어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을 잃는다는 것은 뿌리를 잃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하지만 잊혀가는 자신들의 존재를 그렇게나마 기억해주고 찾아와 주는 일은 고단한 삶에 크나큰 위로가 되리라. 하긴 타국에서 쓸쓸히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교포들이 어디 러시아에만 있던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가난과 싸우며 외롭게 말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일본에는 또 얼마나 많던가. 그들에게 고국에서 온 봉사단체의 사람들은 헤어졌던 혈육만큼이나 반가운 사람들일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게다가 그런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새겨 보았으리라.
뿌듯했다.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머나먼 이국의 동포들을 위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한바탕 흥겨운 잔치를 벌여준 사람들도 자랑스러웠고, 모국에서 달려온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준 이들도 고마웠다.
아이들이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산타클로스를 만나기 위해서다. 썰매를 타고 흰눈 사이를 달려오는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들은 결코 겨울이 심란한 계절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산타클로스는 많다. 국제휴먼클럽처럼 알게 모르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과 단체가 많은 것이다. 구세군의 냄비에 십시일반 작은 돈을 보태고,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 기부자들이 있는 한 겨울은 더 이상 춥고 심란한 계절이 아니다. 세상에는 아직 온정이 남아 있다.
그악스럽게 제 것을 움켜쥐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더 많다. 지금 이 순간 역시 누군가는 없는 이웃을 돌보고 타인의 불행을 진정 가슴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봄 직하지 않은가. 그들이 있기에,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말이다. 믿는다. 이번 겨울 역시 결코 춥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은미희 / 소설가]]
그렇게 찬바람의 계절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자연 시간이나 지리 시간에 우리나라는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4계절이 있다고 배웠다. 뚜렷한 사계가 우리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라고 했다. 철철이 금수강산이라 했다.
하지만 가끔, 계절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나의 계절이라면 그만큼 삶이 간편할 수도 있겠다고. 그러면 냉방기, 난방기가 따로 필요 없을 테고 계절별로 옷도 필요치 않으며 이불이며 신발은 물론 자질구레하게 손과 마음을 뺏어가는 일도 줄어들 거라고. 정말, 요즘처럼 살기가 팍팍한 시절에는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그러지 않던가. 춥고 배고픈 것이 가장 서럽다고.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겨울나기가 그만큼 녹록지가 않다. 하긴 추위가 어디 겨울에만 국한돼 있는 것인가. 한여름에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추위와 한기 역시 겨울의 그것 못지않게 클 수도 있을 터.
어쨌거나 달라진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옷장 정리를 했다. 한데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주워 보니 지난 여름 러시아에 갔을 때 사진들이었다. 내 사진만 따로 보내온 것을 받아서는 봉투째 옷장 선반에 올려 놓았던 것들이었다. 그랬다. 지난 여름에, 나는, 우리는, 러시아에 갔었다. 8·15 광복에 맞춰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또 하나의 소수 민족으로 그 땅에 정착해 버린 우리 동포들을 위문하는 자리였다. 가수들로 구성된 공연단과 함께 한 그 위로 방문은 순수하게 민간 봉사단체인 국제휴먼클럽이 주관한 행사였는데, 새삼스레 보는 얼굴들이 반가우면서 그때의 일이 어제의 일인 듯 떠올랐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만난 우리 동포들은 벌써 우리말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어렵사리 꺼내는 우리말은 귀 기울여 들어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을 잃는다는 것은 뿌리를 잃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하지만 잊혀가는 자신들의 존재를 그렇게나마 기억해주고 찾아와 주는 일은 고단한 삶에 크나큰 위로가 되리라. 하긴 타국에서 쓸쓸히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교포들이 어디 러시아에만 있던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가난과 싸우며 외롭게 말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일본에는 또 얼마나 많던가. 그들에게 고국에서 온 봉사단체의 사람들은 헤어졌던 혈육만큼이나 반가운 사람들일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게다가 그런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새겨 보았으리라.
뿌듯했다.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머나먼 이국의 동포들을 위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한바탕 흥겨운 잔치를 벌여준 사람들도 자랑스러웠고, 모국에서 달려온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준 이들도 고마웠다.
아이들이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산타클로스를 만나기 위해서다. 썰매를 타고 흰눈 사이를 달려오는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들은 결코 겨울이 심란한 계절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산타클로스는 많다. 국제휴먼클럽처럼 알게 모르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과 단체가 많은 것이다. 구세군의 냄비에 십시일반 작은 돈을 보태고,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 기부자들이 있는 한 겨울은 더 이상 춥고 심란한 계절이 아니다. 세상에는 아직 온정이 남아 있다.
그악스럽게 제 것을 움켜쥐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더 많다. 지금 이 순간 역시 누군가는 없는 이웃을 돌보고 타인의 불행을 진정 가슴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봄 직하지 않은가. 그들이 있기에,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말이다. 믿는다. 이번 겨울 역시 결코 춥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9-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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