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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미운 오리 새끼/문화일보[2010-03-18]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3. 2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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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미운 오리 새끼

올해, 여동생의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마냥 아이 같기만 하던 조카가 언제 컸을까 싶게 벌써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조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문득문득 가슴 한 편이 서늘해진다. 저 아이들이 이만큼 컸을 때 나는 얼마나 나이가 들었을까. 게다가 얼마나 어른이 되었을까. 그 자문 앞에서는 늘 당혹스럽기만 하다.

어쨌거나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조카에게 책이며 세면도구 같은 필요한 짐들을 갖다주기 위해 제 엄마와 함께 기숙사를 찾았다. 끙끙거리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배정받은 방으로 가 짐을 부리려는데 조카가 자꾸만 빨리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쫓기듯 나와 제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하긴 조카가 지나칠 정도로 친구들의 눈을 의식하며 남을 대하듯 가족들을 대한 것은 그 날뿐이 아니었다. 조카는 늘 친구들의 눈치를 봤고, 행여 책이라도 잡힐까봐 노심초사했다. 비오는 날 우산을 가져다주면 잰걸음으로 다가와서 우산만 냉큼 받아들고 서둘러 교실로 들어갔고, 길에서 만나면 고개를 외로 돌린 채 황급히 지나쳐 갔다. 집에서는 더없이 다정다감하고 지나칠 정도로 어리광도 부리는 아이가 친구들만 있으면 전혀 다른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의젓하고 너볏한 것이 아니었다. 냉차고 매정한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할까 무서워서 그런다고 했다. 왜 그게 놀림거리가 되고 왕따를 당할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들의 예민한 감수성 탓이려니 하며 넘어갔다. 하긴 조카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위해, 그 또래 아이들이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친구들과 같아지기 위해 아이들이 입는 옷을 입었다. 조금만 친구들과 달라도 한사코 마다하고, 또 걱정했다.

한번은 목 부분에 풍성하게 레이스가 달린 핑크색 원피스를 사주었더니 친구들이 놀린다며 한 번도 입지 않았다. 예쁘고 괜찮다며 달랬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공주병에 걸렸다고 놀려댈까봐 무섭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빚어지는 여러 종류의 폭력에 대해 심심찮게 보도되는 세상이라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어째서 조카에게 걱정거리가 돼야 하고, 공포가 돼야 하는 것일까.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개성과 창조성과 자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조카에게 설명했지만 아이는 손사래까지 치며 안 된다고 했다. 사뭇 화까지 내려고 했다. 조카의 경기어린 반응에 나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왜 다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지. 왜 다른 것은 공포여야만 하는지. 오히려 그 수많은 아이들이 똑같이 행동하고 이야기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 공포여야 하지 않을까. 다른 이들도 나와 같아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파시즘이며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 역시 경우는 다르지만 조카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때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을 보고 기이한 공포를 느꼈다. ‘비 더 레즈’라는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응원하는 군중의 모습은 장관이면서도 무언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결집된 힘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원동력인 줄 알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힘이 무서웠다. 저 힘들이, 저 에너지가 만약에 우리 내부로 향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재앙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때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박자 맞춰 대∼한민국을 외쳤었다.

나 또한 다름을 인정하지는 않는지, 스스로도 생각해보았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그게 발전 동력이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줘야 할 것이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해주면서. 미운 오리 새끼는 다른 외모 때문에 무리에서 따돌림을 받고 미움을 받았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결코 미운 오리가 아니었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마다 다른 미운 오리 새끼들이라고 조카에게 말해줘야겠다.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10-03-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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