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푸른광장> 나의 경쟁 상대/문화일보[2010-02-18]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2. 18. 16:28
반응형

<푸른광장>
나의 경쟁 상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환경과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래도 가장 힘든 일은 뭐니뭐니 해도 자신을 이기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극기. 자신을 이기는 것. 이것만큼 세상에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 또한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이기지 못함에 따라 빚어지는 결과가 아니던가.

나 또한 나를 이기지 못한다. 욕심에 과도한 목표를 정했다가도 힘에 부치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포기해 버리고 만다. 간혹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을 볼라치면 가슴 찡한 감동을 느낀다. 그러니 어찌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아름다운 일이 자신을 이기는 일이 아니라 하겠는가.

소설을 쓰는 어느 대선배는 그랬다. 누군가 선배의 라이벌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자신의 라이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답했다. 작품 또한 바로 이전에 발표한 작품이 자신의 경쟁 작품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라이벌이고, 자신의 작품이 경쟁 작품이라니. 그 말이 동심원처럼 내 안에서 잔잔히 울려 퍼졌다.

나는 어떠했던가. 나는 한번도 나 자신을 내 라이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다른 소설가들 역시 경쟁 상대라고 여긴 적도 없다. 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독법이 다른데, 어찌 그 다름을 경쟁 상대로 여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애초에 다른 작가들은 라이벌이 아니라 험난한 여정을 함께 가는 고마운 길동무라 생각했고, 나는 그 여정에 동참한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아파하며 한편으로는 다른 이의 작품을 부러워했을 뿐이었다.

그 대선배는 자신의 전작이 자신의 경쟁 작품이라는 말끝에 덧붙였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자신은 달라져 있다고. 작품 하나하나 발표할 때마다 그만큼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고. 그 대선배가 많은 독자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작가라, 자만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 그 대선배는 어느 자리에서든 겸손했고 후배를 아꼈으며, 누구보다도 작품을 쓸 때 힘들어했다. 한데 자신의 작품과 자신이 라이벌이라는 그 말 속에는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는 작가적 성찰이 깔려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점검이기도 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을 차지한 사람의 여유와 자만심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한번도 그런 식으로 나 스스로를 점검해 보지 못했다. 역시 대선배는 달라도 크게 달랐다.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늘 선배들로부터, 동료들로부터 배운다. 사는 법을 배우고, 쓰는 법을 배우고,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선배처럼, 타인을 인정하고 라이벌 상대를 자신으로 삼는다면 세상이 참 아름다워질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개개인의 발전을 통해 나아가는 사회는 더 눈부신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항아리 속의 참게들은 서로 끌어내리는 통에 한 마리도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서로 돕고 밀어주고 끌어주면 탈출할 수도 있으련만, 서로 먼저 살겠다고 바둥거리다 함께 떨어진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누군가 경쟁 상대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욕망이 앞서면 질투와 시기도 생기는 법. 그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질투와 시기는 상대를 해치기에 앞서 자신부터 아프게 만든다. 그 아픈 몸으로 어찌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으랴. 사람은 저마다 십인십색이고, 지문 또한 다 다르다고 했다. 한데 그런 타인을 경쟁 상대로 삼는다는 것은 자신을 타인에게 맞춘다는 말과 다를 게 무어랴.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시끄럽다. 또 얼마나 많은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할까. 벌써부터 귀가 아프고 마음이 무겁다. 내 적은, 내 라이벌은, 내 경쟁 상대는 언제나 자신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 라이벌은 나다. 내 경쟁 작품은 바로 이전의 내 작품이다.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10-02-18 13:2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