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 당연한 것이라 해도
게재 일자 : 2011-06-02 14:04
은미희 / 소설가
망설이고 망설이다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이전에 쓰던 전화번호에 애착이 남아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고심만 하고 있다가 기존의 번호를 그대로 둔 채 새로이 스마트폰을 구입한 것이다. 그리하여 졸지에 전화기가 두 대가 돼버렸다. 넉넉지 못한 소설가의 재정 형편에 웬 전화가 두 대냐 싶은데, 그게 글쎄, 간단치가 않다. 2세대(2G) 서비스의 그 번호는 20년 가까이 쓰고 있었고, 그만큼 그 번호는 또 다른 형식의 내 이름이자 기호였던 셈이다. 그러니 어찌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시대가 그렇고, 꼭 필요한 검색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는 편리함까지, 온갖 당위성을 끌어다대며 기어이 스마트폰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만큼 지름신의 위력이 강력했다. 한데 아뿔싸, 스마트폰이 시간을 잡아먹는 귀신인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긴 가만 보면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나까지도 거기에 푹 빠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즉각 e메일을 확인할 수도 있었고, 사진을 찍어서 곧바로 미니 홈피에 올릴 수도 있었으며, 실시간으로 주요 뉴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지루한 줄도 몰랐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무언가 읽을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손 안의 작은 물건만 있으면 그 무엇도 필요치 않았다. 그러니 누가 책을 읽으려 하겠는가? 스마트폰 안에 책을 다운받아 읽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지만 그 작은 모니터 창을 통해 누가 글을 읽고 싶겠는가. 당장에 나부터 눈이 아프고, 멀미가 날 지경인데.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들을 실험해 보고 알아보느라 만지작거리고 있는 동안 뭔가 찜찜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실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사실은 우리를 공격하는 적대적 프로그램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위치정보에 따른 사생활 노출 논란이야 진작에 공론화 됐던 터라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스마트폰이 담고 있는 그 다양한 기능들은 조만간 우리의 삶의 방식과 환경을 바꿔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있는 곳의 위치와 부근의 정보를 검색하다 그 상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에 담긴 온갖 정보들은 내가 수고스럽게 114로 전화를 걸어 안내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너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이제 스마트폰이 있는 한 114 안내원의 살아 있는 음성은 선택 사항이었다. 그럼 114 안내원은 편할까, 불안할까? 어쩌면 안내원은 스마트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 한편이 불안할지도 모른다. 114 안내원뿐일까. 내비게이션 업체도 불안할 테고, 카메라 만드는 회사도 매출 부진에 고심할 테고…. 그렇게 그렇게 연관이 있는 회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가는 환경에 허둥거릴 것이다.
하긴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꼭 스마트폰뿐일까. 언제부턴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는 요금을 받는 징수원이 줄어들고, 대신 하이패스 게이트가 늘어나고 있었다. 또 공항에는 출입국 관리 직원 대신 지문 하나로 통과되는 자동 출입국 시스템의 통로가 생겨나 있었다. 오래전부터 강력한 구조조정을 해왔던 은행들 또한 자동입출금기를 공격적으로 늘려가고 있지 않던가. 원가 절감과 신속성을 이유로 사람들의 일자리를 기계들이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점령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그렇고, 대세가 그렇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모를 일이다. 나중에 소설을 쓰는 로봇이 등장할지도. 세상사 이런저런 뉴스와 전해 내려온 전설들을 아카이브로 저장해서는 새롭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만들어내는 로봇이나 프로그램이 나올지도. 사람들은 굳이 눈 아프게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그때그때 재밌는 이야기를 골라 들을지도 모른다. 영화 ‘007’ 시리즈에서 나오던 다소 황당한 첨단 기기들이 얼마 가지않아 우리 실생활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말이다. 그렇다면 소설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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