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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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의 딸 용담할미(5회) - 어머니, 큰어머니, 새어머니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8. 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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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고은광순 선생님은 소설가로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읽어보니 흥미진진 합니다. 어쩌면 토지나 혼불에 버금가는 대하소설이 되는건 아닌지 은근히 기대도 됩니다. 하여 고은광순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그분의 소설을 연재합니다. 활자화된 책으로 나올때 까지 이곳에서나마 갈증을 풀어보기 바랍니다. [퍼와 편집한 이 주]




(열 살이 된 윤이 아버지 해월의 첫 부인 손씨를 만나는 장면)


2. 어머니, 큰어머니, 새어머니 (1886~ )


-큰어머니 손씨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라니? 아이들은 눈이 둥그레져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방으로 올라선 김 씨가 손 씨에게 큰절을 하자 손 씨는 맞절을 했다. 손 씨는 수시로 쿨럭거리며 타구에 가래를 뱉는 것이 건강이 안 좋은 듯했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고, 오랜만에 만난 두 여인네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 어린 것들 데리고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저야 힘들기는 해도 아이들이랑 사느라고 적적할 틈도 없지요. 형님은 혼자 얼마나 적적하시겠어요? 몸도 불편하신데. 제가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게 자네 팔자고 그게 또 내 팔자라면 어쩌겠나. 나는 정말 신미(1871)년 그 난리 통에 모든 걸 다 잃은 것 같다네.”

손 씨는 버릇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건지 말씀해 주세요. 따님들이랑 양자로 들인 아들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일찍이 수운 그 어른이 돌아가시며 애들 아버지한테 멀리, 그저 멀리 가서 몸 보존해야 한다구 하시지 않았다던가. 박 씨 사모님이랑 그 집 자제분들은 멀리 강원도로 도피하고 우리는 영양 일월산 자락 대치라는 곳에서 아주 조용히 살고 있었다네. 애들 아버지는 가끔 강원도로 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아 뵙구 양양이며 여기저기를 조심스럽게 다니며 포덕을 계속하셨지. 그런데 경오(1870)년에 이필제란 자가 애들 아버지를 계속 흔들어댔어.

“왜요?”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니 출세한 양반들, 관리들은 백성 등쳐먹느라 바쁘구, 그래서 세상을 혼내주고 싶었던 모양일세. 못돼 먹은 관리들을 혼내고 스승님 명예를 회복시키자고 하두 졸라대니까 인근의 도인들에게 연통하여 합세하게 하고, 미리 가서 천제를 지내고 뭐 양식 준비나 돕겠다고 집을 나서신 게 그해 삼월 초였네. 초열흘 수운 선생님 제삿날 일을 벌인다고 했으니 수백 명이 모이는 일에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좀 많았겠나. 일이 터지고 애들 아버지는 무사히 피하긴 했는데 나랑 딸들이 잡혔지 뭔가.”

손 씨는 다시 눈을 아래로 깔고 한숨을 쉬었다.

“저런... 어떻게?”

“우리 시누이 남편이랑, 우리 준이…. 코 밑에 거무스레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고 으쓱하던 우리 준이랑 그렇게 수백 명이 영해관아로 가서 수령 목을 베구 나서 13일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틀 뒤에 관군이 들이닥쳐 잡아갔구, 나중에 잡힌 우리들도 모두 옥에 갇혔다네.”

“여자들까지도요?”

“그럼. 이필제랑 애들 아버지 숨은 데를 대라고 모진 고문들을 당하고, 준이는 옥에서 고문 끝에 효수를 당했다네.”

손 씨는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았다.

“아이고 저런….”

“나랑 함께 영양 옥에 갇힌 우리 큰 딸 민이도, 작은 딸 난이도 아버지 가신 데를 대라고 해서 모진 매를 맞았지.”

“여자들도 때렸어요?”

“그럼. 그놈들이 패는데 남녀노소가 있다던가? 나도 엄청 맞았는걸. 괴수 놈의 마누라가 남편 간 데를 모르겠냐면서…….”

“세상에나….”

“그놈들은 무조건 먼저 사람을 패놓고 일을 시작하더라고. 그런데 옥졸 중에 우리 스물한 살 된 큰 딸 민이한테 잘해 주는 이가 있더란 말이지. 김성도라고. 민이는 제 어미가 맞는 꼴을 보고 있다가 차마 그냥 있을 수 없었는지 김성도에게 우리를 봐 달라고. 여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 보내주면 뭐든지 다 하겠노라고 사정을 했다네.”

“그랬군요. 그래서 바로 나오셨어요?”

“뭘. 그 아까운 사람들이 모두 죽어 나간다는 소식을 한참이나 들어야 했지. 딸들이 옆에 없었다면 아마 미치구야 말았을 거야. 휴우…. 우리는 속으로 시천주 주문을 외우며 그들의 영혼이 자유로운 세상으로, 양반 상놈 없고 짓밟고 짓밟히지 않는 세상으로 가시라고 빌고 또 빌었다네.”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리가 보름에 잡혀 들어갔는데 김성도가 수령에게도 말을 했던지 다음 달 그믐이 지나구서 그 애비를 잡자면 옥졸 옆에 붙잡아 두는 것도 좋겠다 싶었던지 우리를 옥에서 내보내더군. 그 길로 민이는 김성도의 색시가 되고 말았어. 아이가 참하니까 누구랑 살아도 살기는 살겠지마는, 그렇게 창졸간에 아버지도 없이 어거지 시집을 보내게 되었네.”

“나와서 어찌 하셨어요?”

“양자라고 해도 정들여 키운 내 아들 준이 주검도 수습 못해 주고, 시누이 남편도 난리 통에 죽었다는 소식이고, 나는 둘째 난이랑 이집 저집 여기 저기 걸식하며 6년을 생사를 모르는 애들 아버지를 찾아 다녔다네.”

“그러셨군요.”

손 씨의 기구한 과거를 들으며 김 씨 또한 연화와 둘이 살았던 깜깜했던 세월이 생각나 눈물을 훔쳤다.

“그러다가 단양 송두둑에서 애들 아버지를 만나게 된 거라네.”

“참, 그런데 어떻게 송두둑을 찾아오셨어요?”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이 5년을 헤매고 다녔는데 6년째에 접어들면서 신기한 꿈을 꾸게 되더라니까. 하늘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서 고생 많이 하셨다며 자기를 따라 오라잖겠어? 북쪽으로 서쪽으로 이렇게 저렇게 가자고 하더라고. 잠에서 깼는데, 그 장면이 너무도 생생한 거라. 그래서 그 선동이 한 말대로 길을 나섰더니 뭐 헤맬 것도 없이 바로 그리 닿게 되지 뭔가. 나랑 난이는 그저 기가 막혔지. 그렇게 쉽게 가르쳐줄 걸 어쩌자고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우리를 골탕 먹였냐 말야.”

김 씨는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히 말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찾아 오셨는데 새 사람을 맞아 아이까지 낳고 사는 사람을 보고 얼마나 놀라셨어요.”

말하는 김 씨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손 씨 역시 한 동안 말을 잊고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는 김 씨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가마니처럼 거친 손바닥으로 김 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네 잘못이 아니네. 처음엔 너무 기가 막혔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원통하고 분하고 야속하고 원망스럽고. 가슴이 쿵 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구.”

그녀는 멈췄다가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지. 6년을 떨어져 있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했겠는가. 애들 아버지가 살아만 계시기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두 여인 모두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내 나이 열일곱, 그이가 열아홉에 만나 일 터지기 전까지 27년인가를 같이 살았네. 자네도 알다시피 하늘 아래 다시없는 사람 아닌가. 여기저기 피난 다니느라 배불리 호강하고 살지 않았어도 민이, 난이, 준이랑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네. 청수 떠놓고 기도하면 마음도 한없이 평화롭고…. 끊임없이 드나드는 도인손님들 뒷바라지 하는 것도 힘든지 몰랐지. 그런데 내 복이 거기까지였던가 보이. 내가 애들 아버지랑 헤어지게 된 것도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다시 만나게 된 것도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네. 지금은 그저 이렇게 같은 하늘을 이고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기만 하다네.”

그녀는 수시로 기침을 터트렸다. 가르릉거리는 소리와 쌔액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가만가만 손씨의 등을 쓰다듬었다.

“둘째 따님은요?”

“둘째는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꼭 찾아 드린다고 나를 부축하고 다녔다네. 그래서 그렇게 나이를 먹게 되었지만 둘째 난이 덕에 나도 단양까지 갈 수 있었으니 참 고맙지. 어찌 되었든 난이는 스물네 살이나 먹었어도 제 아버지를 만나서 제 아버지 인연으로 다 늦게 이천 앵산의 신택우 도인 자제 신현경이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 아니었나. 이제는 시댁에서 애들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해 온다네. 딸은 윤이보다 조금 어릴 걸.”

손 씨의 기침 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큰따님 소식은요?”

“애 아버지가 송두둑에서 우릴 만나고 이태 뒤 무인년(1878) 봄에 영양 큰딸 민이한테 가 보셨다더군. 민이도 얼마나 반가웠겠나. 생사를 모르던 아버지를 8년 만에 만나게 되었으니…. 사는 모습은 옹졸해도 밥은 굶지 않는 모양이고, 각시 됨됨이가 워낙 반듯하고 의젓하니 사위도 큰소리 내지 않고 사는 모양이더라고 하대. 아이들도 반듯하게 잘 키우고 있고. 마침 수운 어른 제삿날이 다가와서 사위한테는 민이 할아버지 제사라 속이고 딸에게 일러 수운 어르신의 제사상을 차리게 했다지. 사위도 장인인데 관가에 고발할 수 있겠나. 그럴 위인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지내다 가시게 했다는군.”

15년 전 벌어졌던 이야기부터 8, 9년 전 일까지 거슬러 풀어내는 손 씨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송두둑에 찾아오셨을 때, 그 때 제가 더 잘 모셨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가슴의 아린 통증을 누르며 김 씨가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아니네. 아이들이나 잘 키워 주시게. 아버지의 영을 나눈 아이들이니 귀한 사람이 될 것이야.”

보은에서 며칠을 묵고 돌아오는 길에 김 씨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모든 일이 다 계획된 일 같았다. 선동은 왜 그들 모녀가 그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은 지 6년이 지나서야 꿈에 나타나 길을 일러 주었을까? 남편과 자기가 만나기 위해 시간을 벌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사이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일이라면 그것은 덕기(솔봉)와 윤의 출생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 왔지만 모든 사건과 모든 인연이 아귀처럼 서로 맞물려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한순간도, 단 하나의 일도, 한 올의 인연도 의미 없는 것이 없구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구나. 모든 것이 귀하고 귀한 그물의 코와 같구나. 그녀는 덕기와 윤을 잡은 손에 꼬옥 힘을 주었다.

“엄니, 왜 엄니 얼굴이 달라졌어?”

“응?”

“엄니 얼굴 표정이 큰엄니 집에 갈 때랑 올 때가 다르다구.”

“어떻게 달라졌는데?”

“중요한 일이 생긴 것 같아.”

“그렇게 보이냐?”

“응.”

“모든 일이 생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단다. 이유를 알게 되면 넘어져도 일어날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윤이는 고개를 들어 어미의 얼굴을 한참 살펴보았다.

“아니 일어서기만 한다면 그 뒤에 넘어진 이유를 알 수 있게도 될 것이다.”

윤이는 어머니 김 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알 수 없어도 언젠가 나도 알게 되겠지.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어머니가 한 말들을 꼭꼭 눌러 담았다.

(다음주 금요일에는 윤의 오빠 덕기(아명 솔봉. 묘비명 봉주)의 결혼과 어머니 김씨의 죽음이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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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 해월의 딸 용담할미(4회) - 속이 깊은 아이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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