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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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의 딸 용담할미(8회) - 투쟁의 시작과 해월의 고민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8. 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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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고은광순 선생님은 소설가로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읽어보니 흥미진진 합니다. 어쩌면 토지나 혼불에 버금가는 대하소설이 되는건 아닌지 은근히 기대도 됩니다. 하여 고은광순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그분의 소설을 연재합니다. 활자화된 책으로 나올때 까지 이곳에서나마 갈증을 풀어보기 바랍니다. [퍼와 편집한 이 주]



 3. 청산, 푸른 산 맑은 물이 피로 물들다 (1892~ )


-합법적 시위에 공을 들였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친인척으로 조직을 늘려가서 ‘처남포덕’이라고 했던 동학은 ‘마당포덕’에 ‘우물청수’라는 말이 돌 만큼 빠른 속도로 교도들이 늘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방에 들어올 새도 없이 마당에서 우물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그 우물을 동학 의례 때에 떠놓는 정화수인 청수 삼아 입도식을 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뀔 것이라 했다. 조선의 운수가 다하여 장래 새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고 했다.

너도 나도 한울을 모시고 있으니 사람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귀하다 했다.

나라를 도와 백성을 편케 하자고 했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이 하늘마음이라 했다.

주문을 외우며 하늘마음을 키우면 병도 오지 않는다 했다.

도움을 주어도 즐겁고 도움을 받아도 기뻤다. 무자년(1888)과 기축년(1889)의 연이은 대흉년에도 동학도들은 서로 나누면 살 수 있다는 생존법칙을 깨달았다. 돈, 식량, 기술, 지식, 힘…. 무엇이든 가진 자와 안 가진 자가 서로 돕는 동학의 유무상자(有無相資)라는 말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뜻을 가진 것인지 실감했다. 살면서 이렇게 의지가 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동학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니 한동안 뜸하던 유생, 토호, 관원들의 토색질도 덩달아 날개를 달았다. 충청감사 조병식이 다시 동학도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관아에서는 동학도들을 잡아다 곤장을 치고, 속전을 받고서야 풀어주었다. 해월은 뻗쳐 오는 지목의 창끝을 피해 상주 윗왕실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충청도의 영동 옥천 청산의 수령들뿐 아니라 전라도 김제 만경 무장 정읍 여산 등 탐관오리들의 횡포로 동학도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엄니, 또 무슨 큰일이 생겼나요? 서인주(서장옥) 아저씨랑 모두들 얼굴이 왜 저렇게 굳어있지요?”

아버지의 버선을 만들고 있던 윤이 물었다. 열다섯이 된 그녀는 완전히 성숙한 처녀티가 났을 뿐 아니라 바느질 솜씨는 이제 새어머니 솜씨를 뺨칠 정도가 되었다.

“충청도, 전라도에서 탐관오리들이 못되게 굴어서 도인들이 모두 거리에 나앉을 지경이라는구나. 그래서 저이들이 신원운동을 하자고 졸라대는 모양이야.”

동희의 옷을 짓고 있던 손 씨가 대답했다. 걸음마를 배운 게 엊그젠데 이제는 마구 뛰어다니니 옷이 남아나지 않았다.

“신원이 뭔데요?”

“네 아버지 스승이신 수운 선생님이 30년 전에 무고하게 죄를 쓰고 돌아가시지 않았니? 그걸 다시 제대로 밝혀 달라는 거지. 그래서 서학 믿는 사람들처럼 마음 놓고 동학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야. 서학 믿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수만 명 씩이나 죽어 나갔다잖으냐. 지금은 내놓고 믿는 걸…. 수운 대선생님이 신원이 되면, 동학 한다는 구실로 도인들을 잡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니, 그리 하자는 의논을 아버지에게 드리는 거란다.”

“아버지가 쉽게 결정을 안 하시나 봐요?”

“20년 전에 이필제란 사람이 같은 소리를 하고선 아버지를 끌어들였는데 사람들만 엄청 상하고, 그때 왜 큰어머니랑 식구들도 잃으셨다잖니? 엄청 후회를 하셨더란다. 두 번 다시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으신 게야.”

“그래도 모두들 좀처럼 물러날 기세가 아닌걸요.”

“아버지도 많은 궁리를 하고 계시겠지. 뜻을 밝히되 이쪽이나 저쪽 사람들을 서로 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으시려고….”


며칠을 두고 거듭 간청하며 해월의 대답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빛이 퍼졌다. 해월이 드디어 결심을 한 것이다. 공주의 충청감영에 소장을 제출키로 하고, 앞장서기로 한 도인들은 청주 솔뫼(松山) 손천민 집에 도소를 설치하고 빈틈없는 준비를 해 나갔다. 추수가 끝난 뒤인 10월에 1차로 충청감사를 상대로, 11월엔 2차로 전라감사를 상대로 뜻을 밝히기로 했다. 그동안 숨어서만 동학을 하던 사람들이 백주 대낮에 스스로를 드러내야 하는 일이어서 사태가 어찌 흘러갈지 재삼재사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질서를 지켜 평화적인 시위가 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영해에서의 이필제 때와 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 저질러서는 안 되었다. 책임자는 덕과 신의가 있는 접주들로 하고 의관을 갖추고 민폐가 없도록 할 것이며 질 낮은 언행은 절대로 삼가서 동학도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했다.


10월에 공주에 천여 명의 동학도가 모였다. 충청감사 조병식이 집무하는 포정사 앞에 무릎을 꿇고 의송단자를 올렸다. 나흘 만에 충청감사는 교조신원은 정부차원의 약속이니 들어줄 수가 없으나 관리들의 탄압을 중지하도록 각지에 명령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닷새 만에 얻은 부분적인 승리다.


11월에는 수천 명이 삼례에 모여 전라감사 이경직에게 의송단자를 올렸다. 몇 년 전 김덕명 접주의 주선으로 입도한 전봉준이 앞에 나서 무릎을 꿇고 엿새를 보냈으나 묵묵부답. 다시 답을 촉구하는 글을 보내 마침내 열흘 만에 충청감사 조병식과 같은 답장을 받았다. 그러나 충청감사, 전라감사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해산을 위한 입에 발린 약속이라는 것을 알고, 동학도들은 한양으로 올라가 임금님에게 직접 상소를 하기로 했다.

계사년(1893) 2월 동학도 천여 명이 한양으로 올라가 경복궁 밖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박광호를 소두로 한 대표자들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엎드려 상소문을 올렸다. 무릎 끓고 엎드린 지 사흘째, 임금은 “각기 집으로 돌아가 생업에 안주하면 소원에 따라 베풀어주리라”는 답변을 보냈다.

동학도들의 예상대로였다. 지방의 감사도 그랬지만 임금 역시 지방 백성들의 애타는 호소에 진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동학도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백성의 신분으로 평화적으로 해 볼 수 있는 최후의 방편까지 모두 다 했다! 저들은 민초들에게 관심도 갖지 않는다! 민초들이 뼛속 깊은 설움과 분노를 토해 놓는데도 저들은 듣는 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저들은 절벽이다! 좋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식의 방법을 또 다시 강구할 것이다!’  돌아서는 그들의 눈에 비친 한양은 이미 왜인들과 양인들의 천국이 되어 있었다.


-해월의 고민

지난 해 10월의 공주 취회를 끝내고 다음 달에 있을 삼례 취회에 참여하려던 해월은 중도에 말에서 낙상한데다 배탈까지 얻어 삼례의 일을 손천민에게 일임하고 청주 서택순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제자들이 모두 떠나고 그는 조용히 묵상에 잠겼다.

‘충청감사에 이어 전라감사에게 천여 명 이상이나 몰려가 대선생의 신원을 호소하고 있다. 탐학에 젖어 있는 지방의 관찰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곧 이어 임금에게 상소하자는 말이 나올 것이고, 외세에 의존하며 휘둘리는 무능한 조정 역시 쉽사리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조정까지는 몰라도, 호서 호남의 양반과 관리들은 이제 우리 동도의 세를 어렴풋이 알아채고, 우리를 새로운 눈으로 주시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이 깨어나면 지금까지 누리던 이익을 손쉽게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것은 저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싹을 잘라 내고 짓밟아 버리기 위해 무력을 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동도는 더 이상 어슬픈 싹 정도가 아닌 것을…. 무력으로 부딪쳐 오면 젊은 도인들이 일시에 세를 규합하여 맞부딪칠 터…. 그리되면 양쪽에서 엄청난 희생자가 생길 것이다. 그 전에 동학도인이 더욱 많이 늘어나서, 하늘이 감응하여 동학의 기운이 국운을, 천운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큰 희생 없이 새 세상이 올 수도 있으련만….’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해월은 그만 고개를 꺾고 말았다.

‘그리되지 않을 것이다. 부산이 개항했고, 원산, 인천이 개항한 것이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도인들에 대한 탄압은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관리들의 탐학은 꺾일 줄 모르는데, 이 나라를 넘보는 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일본은 신식병기를 갖추었다고 했다. 욕심을 채우려고 곧 굶주린 늑대처럼 덤벼 올 것이다. 스승이 ‘개 같은 일본 놈’이라며 누누이 일본을 경계하라 하시지 않았던가.


동학도인들은 유례없이 탄압 받으면서도 그러기에 더욱 단단해져가고 있다. 부딪힐 것이다. 머지않아 크게 부딪히리라. 그리고 또 다시 크게 상처 입게 되리라. 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희생자가 많게 되리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것이 시운인 것을… 천운인 것을…. 필요한 상처라면 역사가 그 고통을 안고 갈 것이다. 개벽의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며, 내 눈으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들 어떠하랴. 개벽을 향해 걷고 있는 내 발 걸음 하나하나가, 도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개벽이다. 그들의 발자국에서 이미 개벽의 싹이 트고 있지 않은가? 개벽을 향한 발걸음이 코앞의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개벽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 것이니 그 길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할 것이고 그 죽음을 통해 역사 속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스러지고 스러지면서도 멈출 수 없는 길이다.’

해월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주 금요일, 보은취회 이후 청산으로 이사, 오빠 덕기의 죽음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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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 [소설/고은광순] - 해월의 딸 용담할매(7회 )- 큰어머니의 죽음과 새어머니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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