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4_해월의딸용담할미

해월의 딸 용담할미(11회) -혁명이 시작되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8. 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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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고은광순 선생님은 소설가로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읽어보니 흥미진진 합니다. 어쩌면 토지나 혼불에 버금가는 대하소설이 되는건 아닌지 은근히 기대도 됩니다. 하여 고은광순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그분의 소설을 연재합니다. 활자화된 책으로 나올때 까지 이곳에서나마 갈증을 풀어보기 바랍니다. [퍼와 편집한 이 주]



 

(덕기 오빠에 이어 연화언니도 떠나고 상황은 급박해지기 시작한다. 피비린내가 온 강산을 뒤덮게...)

(연화언니도 떠나고)

청산의 거포리 거흠에 거처를 정한 뒤 문바위와 보은을 오가며 묵묵히 장정 이상의 몫을 톡톡 해 내던 연화가 윤과 영동 심천의 장동리에 심부름을 가던 중 갑자기 아랫배를 움켜쥐며 얼굴을 찡그렸다. 윤이 급히 가까운 의원을 물어 찾아갔다. 그새 연화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언니, 이게 웬일이우?”

“고르게 있던 달거리가 이번 달엔 한참 없기에 혹시 수태했나 생각했지. 그런데 새벽부터 하혈이 있으면서 아프기 시작했어. 참아보려고 했지만….”

맥을 짚어보던 의원이 말했다.

“수태가 맞습니다만…. 이걸 어쩌누…. 뭔가 잘못된 것 같구료.”

연화를 딱하게 바라보던 의원은 주섬주섬 침 도구들을 치우며 말했다.

윤이 다급하게 물었다.

“의원님, 무슨 일이에요. 네? 우리 언니 살려주세요. 살아야 해요.”

의원은 윤을 따로 불러내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내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애기집 근처 어딘가가 터져 피가 새고 있을 것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려.”

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연화 언니는 아버지는 달라도 덕기 오라버니, 윤과 함께 한 어머니의 배를 타고 태어난 자매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연화 언니는 윤에게 어머니나 다름없는 의지처가 되었다. 덕기 오라버니도 자식 없이 홀연히 떠나더니 반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언니마저도 떠날 것이라 한다. 아, 엄니…. 엄니, 이를 어째요. 왜 이렇게 빨리 불러 가시는 거예요? 나만 남겨놓고 다들 어딜 가나요?


의원집 가까운 곳에 사정을 하고 방을 빌려 연화를 눕히고 연국에게 기별을 했다. 저녁이나 되어 도착한 연국은 창백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연화를 보고는 넋이 나갔다. 처음 만난 의붓아버지 눈에서 그리워하던 생부 배씨의 눈빛을 보아 울었다던 11살짜리 계집아이. 20년간 자기 곁에 누이로, 아내로, 때론 어머니로 존재했던 연화다. 늘 주문을 입에 달고 살던 아내. 꽃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던 아내. 꽃향기를 맡으며 한울님 향기라고 미소 짓던 아내. 해월의 법설을 필사본으로 정리해 주던 아내.


연화의 식어가는 손을 연국과 윤이 양쪽에서 잡고 함께 밤을 지새웠다. 연화는 다음날 아침을 맞지 못했다. 1894년 6월 11일.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농민들은 폭풍전야와 같이 긴장하여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슬픔에 오래 잠겨 있을 수도 없었다. 연국은 아내를 거적에 말아 지게에 지고 앞산으로 올라가 진달래나무 무더기 아래 묻어주었다. 봄이 되면 진달래가 그녀의 친구가 되어 주리라.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르는 윤은 이제 어머니 시신을 잡고 울부짖던 열 살 꼬마가 아니었다. 덕기 오라버니를 보내고 나서, 다시 어제 연화언니의 손을 잡고 밤을 지새우며 아버지 말씀대로 태어남과 사라짐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 오빠, 언니 모두 밝은 빛 속에 세상만물을 향해 사랑과 축복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벼 위에 쏟아지는 햇살 속에도 그들이 있을 것이오,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에도 그들이 있을 것이며, 눈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에도 그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내 몸과 마음속에 이미 그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슬플 일이 어디 있으랴. 윤은 뜨거워지는 햇살을 받으며 세상 모든 존재에 감사를 보냈다. 빈 지게를 지고 붉은 눈시울로 산을 내려오는 연국에게 윤이 말했다.

 “형부, 나중에 나 죽었다는 소식 들리걸랑 슬퍼말고 대신 박수를 쳐 주실라오?”

 “그게 무슨 소리야?”

 “힘들게 살았다면 고생이 끝날 터이니 박수쳐 주고, 감사하며 잘 살았다면 또 잘 살았다고 박수쳐주고….”

 “열일곱 살 처자가 하룻밤 사이에 도통한 거 같네 그려.”

김연국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모처럼 미소를 띠고 말했다. 그리고는 급박해지는 사태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청산이 붉게 물들다   

3월에 전라도 무장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태인, 금구, 부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4월 2일 진산에 모여 있던 농민군이 금산 보부상들의 기습을 받고 114명이나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호남에서 모두 죽는 것을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다. 6일 청산 소사전으로 모두 모이라는 통문을 보내겠오. 이틀 뒤인 8일 회덕관아를 점령하고 무기를 확보할 것이오.”5)

해월의 동학군은 예고한 대로 청산 소사전에서 봉기하여 8일 회덕(대전) 관아를 점령하고 무기를 확보해 진잠으로 향했다. 진잠뿐만 아니라 연산, 옥천, 공주, 이인, 문의, 금산 등에도 수천 명의 농민들이 모였다.6) 충청감사 조병호가 해임되고 4월 말 새로 임명된 충청감사 이헌영은 조정에 ‘공주 이하 지방은 나라의 소유가 아니다’라는 보고를 올렸다. 7)

호남 쪽에서는 정읍, 태인, 원평에 이어 전주성을 장악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정부가 청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5월 5일 청군 9백 명이 아산에 상륙했다. 이틀 뒤에는 청군과의 조약에 따른 것이라며 일본군 4백 명이 인천에 상륙했다. 동학지도부는 외세침략의 구실을 주지 않으려고 집강소를 설치해 민원을 해결토록 하고 전투를 접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일본군은 수 년 전부터 호시탐탐 조선침략의 기회를 엿보며 치밀한 준비를 해 왔으므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청나라와 시비가 붙어야 했다. 일본의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는 조선정부가 철병을 요구하자 조선정부를 위협하여 청병 격퇴를 일본에 맡기도록 하기 위해 경복궁을 습격하여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8) 오토리(大鳥) 공사와 모토노 이치로 참사관,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9) 여단장이 긴밀하게 움직였다. 6월 21일(양력 7월 23일) 0시 30분 일본 보병 21연대는 경복궁의 영추문에 폭약을 터뜨리고 도끼로 찍고 톱으로 절단하고 도끼로 부수고 들어가 오전 4시부터 오전 7시반까지 조선병사와 총격전을 벌였다. 고종은 일본의 사실상 포로가 되었다.10)


일본의 왕궁 점령 소식은 빠르게 조선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해월을 비롯한 동학 지도부는 일본의 왕 궁점령에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수운 선생이 ‘개같은 일본 놈을 조심하라’고 수차 당부했지만 이토록 일본이 대담하고 뻔뻔스러울 줄이야. 일본은 며칠 뒤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승리한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조선을 중국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시켰다고 말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조선반도를 완전히 자기 수중에 넣게 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 일본에게 장애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 동학당이었다.


(모두들 죽음을 각오하다)

“선생님, 5월에 청국군대, 일본군대가 들어왔을 때 우리가 빌미를 줄까 봐 정부와의 싸움을 중단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일본놈들은 철수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조선 땅에서 청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군대를 부산에 상륙시키고 있습니다. 전신선을 가설한다면서 일본군이 수십 명씩, 수백 명씩 몰려다니며 우리 양민들을 못살게 굴고요. 이미 왕궁은 완전히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일본놈들이 경복궁을 점령한 뒤 청나라 군대를 기습하여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세라면 머지 않아 완전히 조선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청군과 싸우는 일본군의 무기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폭탄이며 총탄을 소나기처럼 퍼붓는데 그 성능도 대단히 뛰어나다고 합니다. 게다가 청국은 일본군 상대에 전력을 쏟을 형편도 되지 않고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이 많아 일본에게 오히려 밀리는 형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청군을  내몰고 나면 곧바로 조선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할 겁니다.”


추석이 지나 가을걷이를 마치고 청산 거포리 거흠의 김연국 집에 모인 접주들이 각자의 생각을 쏟아 내었다. 해월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 우리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각자의 마음에 한울을 모신 것을 깨닫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아지면 조용한 혁명으로, 평화로운 혁명으로 새로운 개벽 세상을 우리 힘으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을…. 그런데 무능한 조정 관료들과 탐욕스러운 일본 때문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이렇게 허망하게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인가. 지난 30여 년간 공을 들여왔는데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해월은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들며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저들을 이길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저들의 총을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왜 싸워야 하는가?”

 “우리는 2년 전부터 공주, 삼례, 광화문 상소, 보은 민회를 잇따라 열어서 눈물로 엎드려 조정을 설득해 보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저들은 우리의 간절한 요구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요지부동. 백성을 위해 지혜를 내려고 하거나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탐욕에 길들여진 무능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새 세상에 대한 우리의 꿈을 저들의 탐욕 아래 짓밟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벌레 같은 왜놈들은 이미 경성의 궁을 침범하여 나라가 위태로워지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일어나면 엄청난 숫자가 희생이 될 터인데도?”

 “왜적을 치다가 죽는 건 오히려 비굴하게 살아남는 것보다 현명하다 할 것입니다.”

 “남겨진 처자식들의 삶도 고단해질 것일세.”

 “탐관오리들도 지금 죄를 묻지 않으면 남은 처자식인들 언제 편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 바로 일어서야 할 때일까?”

 “이미 탐학 때문에 삶을 위협받았던 우리 백성들입니다. 일본놈들은 탐관오리들보다 더 야비하고 모질게 굴 터이니 앞으로 그 밑에서 누구도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지일 터이지요.”

 “모두 죽을 각오로 저항을 할 텐가?”

 “동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무얼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꿈을 포기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겠지요. 우리 후손들은 비굴하게 오래 산 선조들보다 벅찬 감동을 안고 기꺼이 죽어간 선조들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모두들 고맙네.”

해월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듯 결연한 각오를 하고 있다면 희생을 각오하고 떨쳐 일어서야 했다.

(다음주 금요일에는 일본의 개입과 무자비할 대량학살이 이어집니다./ 민나 고로시!-모두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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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 청산편)해월의 딸 용담할미(10회)-청춘은 꽃피는데(청년 김구와 만나다)


삽입 그림 저작권 정보 : "Drops of Rain" by Deborah, used under CC BY / Desaturated from 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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