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4_해월의딸용담할미

해월의 딸 용담할미 (12회) - 청산은 붉게 물들고 어거지로 시집가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8. 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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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고은광순 선생님은 소설가로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읽어보니 흥미진진 합니다. 어쩌면 토지나 혼불에 버금가는 대하소설이 되는건 아닌지 은근히 기대도 됩니다. 하여 고은광순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그분의 소설을 연재합니다. 활자화된 책으로 나올때 까지 이곳에서나마 갈증을 풀어보기 바랍니다. [퍼와 편집한 이 주]


 (일본군은 "민나 고로시-모조리 죽여라!"는 명령을 받고 조선에 쳐들어왔다. 앞으로의 정복에 방해가 되는 동학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동학지휘부가 있던 청산과 보은은 이 잡듯이 뒤지며 문서를 수집하고 수차례 방화를 저질렀다.)

- 일본군의 작전-모조리 살육하라!


9월 18일 총력 기포가 결정되고 이 소식은 빠르게 옥천, 영동, 보은, 황간, 충주, 괴산, 청주, 청안, 덕산, 목천, 서산, 공주, 당진, 안면도, 염천, 태안, 양지, 여주, 양근, 수원, 안성, 음죽, 원주, 홍천, 횡성으로 전달되었다. 20만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동학당을 모조리 잡아 없애기 위한 병력을 따로 파견하는 일이 당장 급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천황의 인가하에 이미 살육진압경험이 있는 야마구치현 히코시마(彦島) 수비병 19대대를 동학당 진압 전담부대로 파견하고 러시아의 간섭을 피하고자 ‘동학당을 서남구석으로 내몰아 모조리 살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0월 9일 인천에 상륙한 19대대는 15일부터 세 부대로 나누어 서로, 중로, 동로 세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서남향인 전라도 해안으로 ‘토끼몰이’를 시작하며 조선군의 지휘권을 확보하고 동학관련 모든 문서를 확보하는 대로 서울의 일본공사관으로 보내어 수집 정리하도록 했다.   


동학군의 사령탑이 청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 중로군은 10월 중순 청산을 불바다로 만들고 이어 19일엔 후지타(藤田)부대가 들어와 청산 오리동을 다시 불바다로 만들었다. 11월 6일 문바위를 기습해서 서류를 압수하고 수십 명을 사살한 뒤 이틀 뒤 다시 한밤중에 문바위의 80호에 불을 질렀다. 관군과 일본군은 ‘동학수괴’ 해월을 잡기 위해 동학지도자들의 본부가 차려진 청산과 보은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목천 세성산에서 수많은 동학도들이 희생되었고 효포에서 청산현 석성리에서 큰 전투가 벌어져 농민군들이 쓰려져 갔다. 증약에서, 양산에서, 우금치에서, 능치에서, 괴산, 보은, 성주에서, 연산에서, 논산에서, 태안에서, 서산에서, 전주에서, 태인에서, 금구에서 돌멩이와 죽창과 화승총을 든 동학군 수만 명이 화승총보다 수백 배 성능 좋은 일본의 무라다총 앞에서 가을낙엽처럼 우수수 무너지고 말았다.


일본군은 사람을 죽이는 기계인 무기를 손에 쥐었다. 동학농민군은 사람을 살리는 도구인 동학도를 가슴에 지녔을 뿐이다. 수만 명의 동학군은 10월 11월 내내 관군과 대량학살전문집단인 일본 후비보병 19대대의 협공으로 그렇게 사라져갔다. 12월 2일 남쪽에서 전봉준이 잡혔고 이어 손화중, 김개남이 체포되었다.


청산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일본군 조사대와 상주 소모영장 김석중은 청산에서 안소두겁, 김유성, 박기준, 지상록, 박부만, 이치오, 김순천, 여성도(대성리), 부성철, 강경중, 허용(법화리), 서오덕(삼남리), 김경연(작은 뱀티/소사동), 정윤서(영동 고관리), 이판석, 김태평, 김철중, 김고미, 배안순, 이관봉, 박추호를 포살했다. 인정리의 접주 최인관을 포살하고 그의 전답 80두락도 모두 몰수했다. 김성원 송병호 등은 끌려가 뒤에 처형되거나 옥사했다. 병정들의 토색질이 끊이지 않았다. 온 마을이 동학농민군이었던 옥천에선 일본군에게 공격을 당해 6리를 가도 민가에 사람이 없고 수백호가 불에 타 없어지고 많은 사체가 노상에 버려져 개와 새들의 먹이가 되었다.





(인질로 잡히다)

옥천 지역의 유림으로 구성된 민보군 지도자 12명 중에 매의 눈을 한 박정빈이라는 자가 있었다. 내무주사로 있던 그는 가까운 곳에 동학의 최고 우두머리인 최시형이 거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혼자 기민하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전라도 지역에서 시작된 전투는 지금 목천, 효포, 우금치 등지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해월에게는 젊은 마누라와 딸, 어린 아들이 있다고 했다. 같이 전장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투는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벌어지고 있다. 괴수의 무리들은 언젠가는 청산으로 다시 올 것이다. 괴수를 잡으면 청산현감은 물론이요 충청감사 자리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청산현감으로 있는 조만희라는 작자는 믿을만한 위인이 못된다. 조만희는 동학비적들에게 흠뻑 빠져있는 눈치다. 현감 모르게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


그는 눈치 빠른 세작 박가와 그 사촌 동생 정가를 풀어 문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인정리에 가족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괴수가 돌아오기 전에 조용히 가족들을 빼돌려야 한다!’ 그는 숨어있던 괴수의 부인과 어린 아들, 두 처녀를 한밤중에 끌어내어 청산관아에서 멀리 떨어진 별티의 외딴 농가 광에 손발을 묶어 숨겨놓고 박가와 정가에게 철통같이 지키게 했다. ‘괴수’의 부인은 만삭의 몸이었다.


 “작은할머니, 여기가 어딜까요?”

잔뜩 겁을 먹은 태희가 물었다.

 “글쎄다. 보름달이 오른쪽 산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계속 걸어왔으니 팔음산 쪽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요?”

 “우리를 이용해 네 아버지를 잡으려는 수작이야. 그러니 목숨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걱정들 하지 마라.”

어린 동희는 불안한 가운데에도 세 여자와 함께 있으니 마음이 놓였는지 크게 보채지 않았다.

저녁에는 추위가 엄습했다. 문 밖에서는 칼바람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보초 중 젊은이가 가마니를 몇 장 들여놓아주기는 했지만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가 딱딱거려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이렇게 추운데 아버지는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어디서 무얼 하실까? 추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엄동설한에 짚신이나 제대로 신고 다니시려나. 무얼 먹고 어디서 주무시려나. 보초들의 감시가 엄중한 것을 보면 아직 살아 계시는 것은 확실하다. 천지부모시여... 수많은 병사들을 보호해주소서. 평생 핍박을 받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평생 빼앗기며 짓밟히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굽어살피소서...


밥 한 덩이를 세 여자와 동희가 나누어 먹었다. 그것도 하루에 두 번만 주는 것을 윤과 태희가 젊은 총각에게 사정사정해서 세 번을 얻어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자 남자들이 처녀들을 보는 눈빛이 묘해진 것을 눈치 챈 손 씨 부인의 마음이 급해졌다.


 “윤아, 태희야...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아기는 어찌 생기는 줄 아느냐?”

 “우리가 어찌 알겠어요. 다만 꽃은 비가 와서 벌 나비가 못 날아다니면 열매를 맺지 못하지 않나요? 벌 나비가 다리에 꽃가루를 붙이고 다니며 옮겨주어야 열매가 달리지요.”

 “그래. 윤이가 역시 보는 눈이 다르구나. 아이가 태어나매 어미도 닮고, 아비도 닮는 것은 어미의 정과 아비의 정이 섞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내 어머니에게 가르쳐주시고 내 어머니가 또 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니 이제부터 잘 들어야 한다.”

윤과 태희는 왜 지금 이곳에서 손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지 몰랐지만 그 표정으로 보아서 무척 중요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함께 산다고 언제나 아기가 생기는 건 아니야. 또 일 년에 한 번을 만나도 아기가 생길 수 있단다. 달거리가 시작된 날부터 다음 달거리가 시작되는 날의 딱 중간날짜가 수태 되는 날이지. 그러니까 만약에 보름에 달거리가 시작된다면 다음 달에도 보름에 달거리가 시작되겠지? 그러면 언제가 수태 되는 날일까?”

 “그믐이요.”

 “초하루요.”

윤과 태희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래. 그믐, 초하루 언저리가 수태가 되는 날이지. 만약 수태를 원한다면 그 날을 택하면 되고, 수태를 피하려면 그 날을 반드시 피하면 될 것이야. 하루 이틀 앞뒤로 달거리가 움직일 수 있으니 가운데 날짜들을 유념해야 해.”

 

 며칠이 지난 저녁 무렵 손 씨 부인이 배를 움켜쥐고 아랫니를 깨물었다. 진통이 시작된 모양이다. 

(주는 생략)

4. 어거지로 시집을 가다 (1895~ )


-고문당하는 여자들

두 번째 출산은 처음보다는 수월하다고는 해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추위에 떨며 밤새 진통에 시달리는 손 씨를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아기가 태어났는데 순간 손 씨는 혼절하고 말았다.


윤이 광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여보시오. 우리 엄니가 아기를 낳았어요. 탯줄을 끊을 가위랑 더운 물 좀 주세요. 예?”

웬일인지 밖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윤과 태희가 문에 달라붙어 소리치고 두들겨 봤지만 밖에 빗장을 지른 채 둘 다 사라진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어머, 이모... 이 애기가 이상해. 왜 안 울지?”

“이를 어째.”

윤이 어설픈 솜씨로 아기 궁둥이를 쳐 보았으나 아기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여자 아기였는데 숨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가 버린 것이다.


밖의 남자들은 그날 하루종일 기척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도 마찬가지. 산모에게 따듯한 물이라도 한 그릇 먹여야 하는데... 이놈들이 우리를 여기에 가두고 영영 모른 척 하려는 걸까? 굶겨 죽일 심산인 거야? 어린 동희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지푸라기를 씹어 먹었다. 아... 한울님!


셋째 날 밖에서 기척이 들리더니 남자는 밥 두 덩이와 찬 물 한 바가지를 들이밀며 오늘 하루치라고 말하고는 급히 사라졌다. 산모 이야기를 할 새도 없었다. 넷째 날도, 다섯째 날도...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모, 저들의 거동이 수상하잖우? 혹시 동학군들이 청산에 돌아온 것 아닐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우리 크게 소리를 질러볼까?”

어제 문틈으로 열나흘 날 달이 보였었다. 이곳에 갇힌 지 벌써 한 달이 된 것이다. 둘이는 서로  눈짓을 하고 젖 먹던 힘을 다해 함께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아버지이~”

“삼초~온~”


급히 빗장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는 주먹으로 처녀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년들이 어디서 까불어!”

남자들은 윤과 태희의 손을 뒤로 돌려 새끼줄로 묶고는 지푸라기 뭉치를 처녀들의 입 안에 밀어 넣고 새끼줄로 재갈을 물렸다.  그들은 피범벅이 된 치마를 두른 채 한쪽 구석에 누워 있는 손 씨 부인과 짚단으로 덮어놓은 물체를 보고 비로소 상황을 파악했던지 잠시 후 망태에 아이의 주검을 담고는 눈알을 부라리며 나갔다. 그 중에 나이가 든 박가라는 놈이 소리를 질렀다.

 “이 년들아, 조만간 결판이 날 터이니 얌전히들 굴어!”

    

여자들을 빼돌려 광에 가둔 장본인 옥천 민보군 박정빈은 12월 11일 이후 상주 소모영 유격장 김석중과 일본군과 함께 청산, 영동, 옥천, 황간에서 최시형, 손병희가 이끄는 1만 여명의 동학군을 무자비하게 쫓았다. 김석중이라는 자는 상주 담당인데도 경계를 넘어와서 닥치는 대로 포살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형씨는 청산현감 조만희를 아쇼?”

박정빈이 물었다.

 “나야 잘 모르지요만 좀 이상한 구석이 있더군요. 내가 풀어놓은 세작 박정호 말대로 배학수와 김경연을 잡아들였는데 조만희가 자기가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서 동학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고 풀어주라 하지 않겠수? 그래서 내어주며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나중에 다시 잡고 보니 그 놈들이 운량도총관에 팔로도집강이라는 거괴들이더라고요.”

 “그러니 조만희가 저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구려.”

박정빈은 자기도 얼마 전에 조만희에게 속은 사실을 떠올렸지만 계속 입을 다물고 들어보기로 했다. 조만희는 적을 분주히 뒷바라지하고는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못 믿을 작자임이 분명했다.

 “또 뭐 내가 청산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고 조정에 상소를 하기도 한 모양인데, 청산은 모두 비적들 투성이인 걸 보면 보은취회 이후 여기가 온통 물이 든 모양인 것 같수다. 그런데 그 해월인지 뭔지 수괴라는 놈은 굴을 세 개 파 놓는 토끼처럼 어떻게 잘 내빼는지, 정말 귀신같은 놈이요. 내가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안 보이니...”

 “대체 그 잡았다는 거괴들은 다 어찌하셨수?”

 “오래 끌 거 있소? 사방천지에 비도들인데 이럴 땐 공초고 뭐고 빨리빨리 없애는 게 상수요. 비적을 놓치지 말고 공을 세워야 출세도 할 거 아뇨? 나는 상주에서부터 줄곧 그렇게 해 왔수다.”

 “아, 그렇지요.”

박정빈은 맞장구를 쳤지만 김석중이 출세길에 방해가 되는 귀찮은 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해월과 손병희가 이끄는 군대는 임실까지 후퇴했다가 12월 9일 무주에서 북상하고 있었다. 청산을 거쳐 보은으로 향하는 행군이었다. 전라도 무주의 설천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충청도 영동 용화면의 달밭고개. 20여 차례의 대소전투를 치룬 그들은 달밭재에서 다시 관군과 전투를 벌이고 가곡리에서 전투를 벌인 다음 용산리에서 전투를 벌였다. 12월 11일 용산장터에서는 손병희의 군대와 김석중의 상주 부대가 하루 종일 밀고 당기는 전투를 했다. 그러나 동학군의 수가 워낙 많아서 관군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눈이 날리고 운무가 둘러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다. 12일, 청주 옥천의 관군이 합세했으나 손병희의 군대는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13일에는 청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손병희는 사람을 풀어 해월의 가족이 간 곳을 여기저기 찾아보았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만삭이 되었을 누이동생, 어린 동희와 윤, 태희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동학군을 책임지고 있는데 가족을 찾기 위해 그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는 일. 그들은 청산에서 사흘을 머물고 16일 보은으로 출발했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석성을 지나 삼승산 줄기를 오른쪽으로 두고 걸었다. 그들의 머리는 수피(현 탄부면 대양리)에 있었고 꼬리는 원암(현 삼승면 원남리)에 있어 그 길이가 30리에 이르렀다.


용산전투에서 동학군의 기세에 관해 보고를 들었던 박정빈은 동학군이 청산에 들어와 있는 동안 몸을 잽싸게 피해야 했다. 숨겨놓은 인질들을 들킬까 애간장을 졸이며 그들의 철수를 고대했던 그는 동학군이 보은으로 떠나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보은으로 떠난 동학군들이 일본의 화력을 당하지 못하고 대패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총을 가진 일본군인 하나가 동학군 2-300을 상대할 수 있다니 동학군들은 정말 무모한 놈들 아닌가. 17, 18일 양일간 북실에서 죽은 수백 수천의 동학군 시체가 들과 산을 덮었다고 했다. 교조 최시형은 이번에도 여우처럼 도망갔다지만 남녘에서는 호남의 괴수들도 이미 다 잡혔다고 하니 이 싸움은 이미 정리가 되어가는 판이다. ‘이제 내 계획을 제대로 펼칠 때다.’ 박정빈은 얇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박정빈은 급히 장계를 올렸다.

‘보은취회 이후 충청감사와 청산현령이 동학도들을 느슨하게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을 뒷바라지까지 한 정황들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충청감사가 조병호, 이헌영, 박제순 등으로 바뀐 이후에도 비적들은 방자하게 굴고 있습니다. 무리들이 남쪽에서 다 체포되었다고 하나 여우같은 최고의 수괴 최시형은 잡히지 않았는바 본인은 이미 이를 내다보고 청산에서 그 가족들을 비밀리에 잡아놓고 있습니다. 제게 그들을 문초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다면...’


조정은 급히 12월 30일자로 옥천의 내무주사였던 박정빈을 청산현감으로 임명하였다.

(다음주 금요일에는 인터넷 공개 마지막편이 이어집니다. 해월의 딸 최윤의 물고문 당하는 장면은 작가 본인이 박정희의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때 당한 물고문을 재현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세명의 여대생이 똑 같이 물고문 당한 것을 증언했지만 고문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행위'였노라며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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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 해월의 딸 용담할미(11회) -혁명이 시작되다! 


삽입 그림 저작권 정보 :"Crow" by Surajram Kumaravel, used under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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