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4_해월의딸용담할미

해월의 딸 용담할미(13회) - 인질이 된 처녀들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8. 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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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고은광순 선생님은 소설가로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읽어보니 흥미진진 합니다. 어쩌면 토지나 혼불에 버금가는 대하소설이 되는건 아닌지 은근히 기대도 됩니다. 하여 고은광순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그분의 소설을 연재합니다. 활자화된 책으로 나올때 까지 이곳에서나마 갈증을 풀어보기 바랍니다. [퍼와 편집한 이 주]




 (출세에 밝은 박정빈은 인질을 고문한 뒤 옥졸에게 내어 주는데...)

아침이 밝았을 때 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는 거동 못 하는 손 씨를 끌어내어 밖에 대어놓은 소달구지에 태웠다. 매서운 북풍이 몰아쳤다.

“아저씨, 산모 몸에 찬바람이 들어가면 안 될 터이니 우리가 모두 달구지에 탈 테요.”

윤이 동희를 먼저 태우고 달구지에 올라타더니 손 씨에게 가마니를 덮어주고 그 옆에 누워 한기를 막아주었다.

“태희야 너도 얼른 올라와서 그 쪽으로 누워.” 

나이는 비슷한데 윤이 머리 쓰는 것이나 당차기가 보통은 넘었다. 


 “아저씨, 어디로 가는 거지요?”

 “가보면 알 거요.”

키가 크고 더 젊은 총각이 퉁명스레 말했다. 앞으로 모진 고초를 겪게 될 것을 저 여자들이 짐작이나 할까? 그의 표정에 딱하다는 빛이 언뜻 스쳐갔다.

 “정초부터 이게 무슨 짓이람.” 

눈이 매운 박가가 말했다.

 “그래도 이제 창고지기는 면하지 않우?”

총각이 말했다.

 “아, 이제 을미년(1895년)엔 좀 조용히 살고 싶은데...”

박가가 여자들을 원망의 눈초리로 쏘아 보았다.


손 씨 말대로 그들이 갇혀 있던 곳은 팔음산 아래 별티계곡이었던 모양으로 이제 소달구지는 팔음산을 뒤로 하고 예곡다리를 지나 청산현으로 가고 있었다.


“동학군들은 어찌 되었나요?”

“그것도 가보면 알게 될 거요.”

“우리 아버지는요?”

박가가 눈짓을 하자 정가총각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청산현의 옥. 옥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손 씨는 윤과 태희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만약 동희 아버지가 무사하시다면 갈만한 곳을 대라고 너희들을 심하게 다룰 것이다. 우리는 진정 가신 곳을 모르니 그저 모른다 하면 된다. 만약 돌아가셨다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부디 잘들 견뎌다오. 특히 태희는 일가친척에 대해 물어보면 부모 없이 떠돌다가 보은취회 때 만났다고 하고 일체 아무 이야기도 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그러나 현감이 제일 먼저 옥에서 불러낸 것은 일어설 기력도 없는 손 씨였다.

 “저 년을 형틀에 매어라!”

  “이보시오. 나는 갇혀있는 동안 낳은 아기도 그냥 잃고 말았소. 죽이려거든 그냥 어서 죽이시오.”

 “저것이 주리를 틀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박정빈은 형방에게 눈짓을 했다. 양쪽에서 나무막대에 힘을 주자 손 씨 부인이 비명을 질렀다. 덜컥 검붉은 핏덩이가 치마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산후조리도 못한 채로 있다가 지혈이 되지 못한 채로 다시 하혈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옥 안에서 손 씨의 비명을 듣고 있던 윤이 소리쳤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나를 내 가시오. 우리 엄니 대신 나를 치시오!”

박정빈은 잠시 생각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송장 치우고 살인냈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는 손 씨를 들여놓고 윤을 옥에서 내왔다. 그가 형방에게 나지막히 지시를 내리자 포졸들이 이번에는 긴 형틀을 준비했다. 그들은 윤의 두 팔을 뒤로 꺾어 손목을 꽁꽁 묶은 뒤 형틀에 눕히고 다리를 꽁꽁 묶었다. 포졸 하나가 가슴 위로 올라 타 어깨를 내리 찍었다. 머리맡에 서있던 포졸이 윤의 얼굴에 보자기를 덮더니 코를 막고 입에 물을 계속 쏟아 부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게 이렇게 큰 고통일 줄이야. 윤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고 고개를 돌려보려 했으나 우악스러운 남정네들의 힘을 당할 수 없었다.

 “네 아비가 갈만한 곳을 대라.”

 “푸하... 푸...푸... 모른다. 설령 내가 안다고 해도 말해줄 성 싶으냐?”

 “어라, 이것이?”

그가 다시 눈짓을 하자 형방이 또다시 물을 부었다.

 “그래도 대지 않겠느냐?”

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리질을 했다.

 “푸... 푸하... 모른다. 모른다 하지 않았느냐?”


고문을 받는 동안 윤은 아버지의 무사함에 감사했다. 고문을 받아 죽음으로 끝이 난다면 이 고통의 순간도 끝이 날 것이다. 죽지 않는다해도 이 고통의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순간이 결국은 지나가리라. 윤은 순간순간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주문을 외우며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물이 쏟아지기를 몇 차례.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옥사의 작은 창문으로 새벽빛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여기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동희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한울님, 저를 살려두셨군요. 지독히 고통스러운 순간에 외웠던 주문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스승 수운이 강조했다는 주문. 아버지가 한시도 쉬지 않고 외우셨던 그 주문, 오... 그것이 나와 한울님을 잇는 통로였군요. 윤은 이제야 주문의 가치, 주문의 존재이유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백성이 수시로 맞닥뜨리는 지독한 절망의 순간, 지독한 위기의 순간, 지독한 아픔의 순간에 내 안의 한울, 내 밖의 한울은 주문을 통해 내게 손을 내밀어 주시는구나. 나를 견뎌내게 하셨구나.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옆에 누운 태희가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일어나 살펴보니 얼마나 이를 악물었었는지 입술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놈들은 윤이 고문을 받고 혼절한 후에 이어서 태희를 고문했던 모양이다. 이놈들이 대체 태희한테는 무슨 짓을 했던 걸까? 그녀의 눈에 태희의 퉁퉁 부은 손이 들어왔다. 양쪽 엄지손톱 밑으로는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태희야... 태희야...”

윤이 태희를 안아 올렸다.

깨어난 태희는 윤을 힘없이 올려다보았다. 자기의 부모와 고향을 물으며 손가락에 쇠막대를 끼우고는 발로 밟더란다. 양쪽 엄지손톱 밑에는 대나무 바늘을 박기도 했다. 말하는 태희의 얼굴이 다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이모, 그래도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박정빈은 밤새 머리를 굴렸다. 계집들을 족쳐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렇다면 30여 년을 여우처럼 피해 다녔다는 수괴를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까? 청산현감 자리로 만족할 수는 없다. 다음날 아침 그는 옥천에 사는 세작 박정호를 불러들였다.


 “수괴를 잡으면 내 한턱 함세. 자넨 저 여자들을 어찌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박정호가 다가와 박정빈의 귀에 소근 거렸다.

 “마누라와 어린 자식은 옥에 가두어 감시를 잘 하고, 처녀들은 사또 주변의 총각들에게 데리고 살라고 주고 감시를 시키시면 어떠오리까?”

 “옳거니!”

 박정빈이 무릎을 쳤다.

 “그래 통인 정주현, 열아홉 살로 장가갈 나이도 되었고 한 달 이상 여자들을 감시했으니 앞으로도 눈치껏 잘 해낼 것이다. 또 하나는?”

 “아, 예, 제 사촌동생으로 예곡에 사는 박재호가 지금 열여덟이니 역시 통인으로 데리고 계시면서 여자를 감시하라 시키시면 될 것이올습니다.”5)


-인질이 된 신부들    

박정빈이 정주현과 박재호를 불러들였다.

 “주현아, 너는 둘 중에 누구를 가지려느냐?”

 “예? 무슨 말씀이시온지?”

 “내 저 두 년을 네들에게 내어주려 한다.”

 두 남자는 기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하나는 동학 수괴 최시형의 딸이고 어린년은 일가쯤 되는 것 같은데 통 말을 않는구나. 수괴의 마누라는 좀 더 두었다가 몸이 회복되거든 다시 문초를 하기로 하고 젊은 년들은 네 들이 데리고 살면서 이리저리 구슬르고 달래든지 겁박을 주든지 해서 수괴의 행적을 캐어내란 말이다. 알겠느냐?”

 “예, 사또. 그럼 저는 큰 년 윤이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저는 작은 년을...”

 “언제 데려갈깝쇼?”

 “어미 년이 눈치 못 채게 조용히 그리고 빠를수록 좋다.” 

     

슬쩍 옥사로 다가간 두 젊은이에게 윤이 하소연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우리 엄니 돌아가시겄소. 우리는 안 먹어도 좋으니 미역국에 밥 한 덩이만 넣어주오. 벌써 며칠째 먹지도 못한 몸으로 아이 낳고 못된 꼴 보고 고문까지 당하셨으니 당신들 잔인하기가 어찌 이리 심하오?”


남자 둘이 한숨을 쉬며 돌아서더니 잠시 후 더운 미역국에 차디차게 식어 떡이 서로 엉겨붙은 떡국 두 사발을 가지고 왔다.


 “고맙소.”

윤이 그릇을 받아 누워있는 손 씨를 일으켰다. 더운 미역국에 찬 떡 몇 개를 넣어 손 씨의 입에 넣어주고 옆에서 입맛을 다시는 동희에게도 먹여주었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는 태희 입에도 넣어주었다.


 “동희야. 이제 떡국 먹었으니 너도 이제 여섯 살이 된 거다.”

손씨, 동희, 태희에게 나누어주고 나니 정작 윤은 제 입에는 떡 한 숟가락 넣기도 힘들었지만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누이는 몇 살이야?”

 “우린 같은 호랑이 띠잖아. 열두 살 많으니 열둘에 여섯을 더하면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여덟이지!”


윤이 손가락을 곱아가며 동생에게 숫자를 헤아려주었다. 먹을 것이 들어가서 기운이 나는지 모처럼 넷은 서로를 다독여주었다. 옥사 기둥 뒤에서 이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정주현은 자기의 선택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안에서 그릇을 한쪽으로 치우기가 무섭게 옥의 빗장이 열렸다.

 “어이, 거기 두 사람, 사또가 물을 것이 있다고 하시니 잠깐 나와보슈.”


따듯한 국물이 들어가 기운을 차린 손 씨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윤과 태희의 손을 잡았다.  

 “내가 한 말 기억하고들 있지? 그리고 우리를 살려둔다는 건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뜻이니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를 찾으러 오실 거다.”

 “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우린 이제 다 컸잖아요.”

 “작은 할머니, 다녀올게요.”


옥에서 나온 윤과 태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주현과 박재호였다. 정주현은 태희를 박재호에게 건넸다. 박재호는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단속하며 태희의 팔을 나꿔채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

 “이모, 아니 언니.. 언니...”

 “태희야, 꼭 다시 만날 거야. 주문 외우고, 수행하는 거 잊지 말어.”


태희는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관계를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 태희야. 지혜롭게, 당차게 이 모진 세월을 버텨내자. 너를 위해 기도하마.


정주현은 윤을 데리고 한참을 이리저리 끌고 돌아다니더니 인적이 드문 산길로 접어들었다.

저 멀리 당산나무와 당집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아마 그리로 끌고 가는 듯싶었다. 아... 어머니, 아버지...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인터넷 공개는 여기까지.  출판작업이 끝나는 대로 여러분들에게 책의 모습으로 공개될 것입니다. 현재 30% 정도만 공개된 것이며 이후에 여러분들이 깜짝 놀랄 사실들이 소설 속에 녹아 드러날 것이오니 많은 관심 놓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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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해월의 딸 용담할미 (12회) - 청산은 붉게 물들고 어거지로 시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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