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 곽재구
대전차장애물 징검다리처럼 코스모스 꽃길 위에 놓였습니다
만세교 지나 함흥 여관집 큰아들 기선이 아재
이곳 바다에서 사십년 동안 소주병 붙들고 울며 살았습니다
돈은 벌어서 뭐해 고향에 다 있는데 밤이나 낮이나
지나는 사람 붙잡고 소주 한잔씩 권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헌 오징어처럼 파도에 떠밀려 죽었습니다
대전차장애물 구렁이처럼 코스모스 꽃길 휘감았습니다
너두 한잔 해라 이놈 얼룩무늬 콘크리트 장벽 향하여
고래고래 소주 한잔 따르던 기선이 아재 꽃길 속에 설핏 보았습니다.
------
오늘 저녁 바쁜시간을 쪼개어 각시와 송도근처 영화관에서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980년대초 곽재구 시인이 포구기행 연작시를 위해 화진포일대를 돌며 취재하고 수집한 내용을 한 여관방 바닥에 배를 깔고 지은 [화진포]에 등장하는 [기선이 아재]는 실존인물로 오래전에 작고하신 1919년생이신 장인 김기선 어른입니다. 14후퇴전 함흥의 유일한 함흥 여관집 외동아들로 함흥고보를 나온 수재이며 만세리 일대의 전답을 대부분 소유하셨던 집안의 아들로 돈을 꼬아 허리에 두르고 홀로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그 피난배를 타고 내려와 고향이 지척인 속초 대포에 자리를 잡고 통일되어 돌아갈 고향을 그리며 술로 마음을 달래다 오래전에 작고를 하셨습니다.
영화를 본 뒤 한동안 그 자리에서 슬픈 감정을 다스리던 저와 제각시를 지나처 나가는 주위의 젊은이들이 소문보다 재미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실제 삶으로 목도하며 살았던 우리네와 그저 지나간 과거사의 이야기거리 정도로 여겨지는 젊은 세대와의 느끼는 감정의 골이 크다는것을 느끼게도 되었습니다. [기선이 아재] 장인어른이 심지를 가다듬어 술을 절재하며 건강하게 백수를 누리셨다면 금강산도 다녀오셨을 터이고 북에 남겨진 가족 친지도 만나셨을꺼라는 아쉬움이 남아 더욱 마음이 먹먹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람들 참 징한 사람들이라는 자조가 머리 속에서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
'0. 韓山李氏 > 08_黃薔(李相遠)' 카테고리의 다른 글
yelling and struggling while going back to May in 1980 (0) | 2016.05.07 |
---|---|
사랑의 배신자? (0) | 2016.03.31 |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 10권 (0) | 2016.03.06 |
풀빵장수와 호떡장수 (0) | 2016.03.06 |
고향 .... (0) | 2016.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