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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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경주에서 1년>을 읽고]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12. 2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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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경주에서 1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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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서 용의원을 하는 페친 SeungAh Jeon 선생이 손바닥 문학상을 받은 <경주에서 1년>을 읽은 소감을 담벼락에 올렸다. 최근 내 지인 중에도 암으로 먼저 간 분이 있어 냉큼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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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로 전공을 바꾸긴 했지만, 30여 년 전 난 농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나왔다. 그때 월급을 받으며 실험했던 프로젝트 중에는 수이사이드 시드스(The Suicide Seeds)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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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를 항생제에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는 실험이었는데, 이 종자는 수확된 종자를 파종하면 싹이 트면서 자살해버린다. 재 수확을 못하게 만들어 농민들이 종자를 꼭 종자회사에서만 사야 한다. 

이런 장난을 몬산토가 넘겨받기 전이었지만, 이어지는 프로젝트는 종자를 재파종하면 결실이 되지 않고 잡초만 무성하게 만드는 실험이었다. 

공대 대학원으로 옮겨 지하수를 연구하고 불포화대를 연구하고 오염추적을 하고 모델링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먹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학위를 마치고 직장을 잡고 열심히 미국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다 보니 그만 미국사람들과 함께 미국식으로 먹고 살다 보니 난 돼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70 cm의 키에 113kg의 몸무게, 허리둘레 42인치의 바지를 입었다. 2003년 처음 한국에 가서 백화점 양복매장을 가니 문간에서부터 '손님 치수는 없어요'로 면박을 당했다. 

그러다 내 조카를 꼭 미군에 입대시킬 일이 생겼는데 비만으로 퇴짜를 맞았다. 그래서 내 각시가 산타로사에 있는 비만 클리닉에 조카를 입원시켜 체중을 빼서 4차례 만에 입대를 시켰다. 

내 조카는 주스 단식을 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물단식(Water Fasting)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내가 돼지인 걸 알았기에 물단식을 시작했다. 그래서 80 kg 때의 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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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MSG)과 라면(밀가루)을 끊었다. 파머스 마켙에 가서 유기농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기 시작했던 담배가 언제 피웠었나 처럼 냄새조차 역겨워졌다. 

아주 아주 높아 의사가 바로 응급실행이라며 혈압약 먹길 권했던 고혈압은 확 내려갔다. 물단식과 먹는걸 잘 먹어 몹쓸 병에 걸렸다 기적처럼 완치한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끼는 암에 걸린 사람들을 설득시킬 재간이 없다. 그들 주변에는 내가 막아낼 수 없는 기도로 기적을 보여주겠다는 죽음가지고 장사하는 종교인(?)들이 너무 많았다. 

또 내가 막아설 수 없는 이런저런 영험한 약재라고 죽음을 막아낼 비싼 음식인지 약재인지를 바리바리 준비하는 돌팔이(?)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그래서 먼저 보낼 수 밖에 없는 지인들이 있었다. 

나이가 먹어가니 많이 배운 것이나 많이 벌어놓은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 연로하여 가는 것이나 암에 걸려 살기를 급급해 하는 것이나 보이는 모습은 같다. 

신자 1천여 명을 둔 유명교회 목사, 40여 년간 배를 탔던 선장, 승진을 기대하던 은행원,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시간강사, 그 모든 부와 지위와 명예와 지식은 죽음 앞에선 무력할 뿐이다. 

작가의 수상 소감처럼, 나도 스물 세 살에 처음 만나, 스물일곱부터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도록 절실해지는, 나의 소중한 각시와 우리의 외아들 만은 물단식과 먹거리 치유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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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경주에서 1년  (출처 : 한겨레21 | 네이버 뉴스) http://naver.me/Gu9U7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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