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71 서화보따리

[芮春浩 (예춘호 1927~2020) 선생 작품 - 柳宗元(유종원) 江雪(강설)]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12. 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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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 선생 유품 중에 1969년 4월 15일 3선개헌에 반대한 4 · 8항명 공화당 국회의원 중에 한분인 목촌(牧邨) 예춘호(芮春浩, 1927년 2월 7일 ~ 2020년 7월 22일) 선생의 쓰신 柳宗元(유종원)의 詩句 江雪 (강설) 서화도 눈에 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때도 고생을 하신 분으로 부산 동아대 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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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山 鳥飛絶 (천산 조비절)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逕 人蹤滅 (만경 인종멸) 길에는 사람 자취도 끊어졌네
孤舟 簔笠翁 (고주 사립옹) 도롱이에 삿갓차림 늙은이, 한 척 배 띄워놓고
獨釣 寒江雪 (독조 한강설) 눈 내리는 겨울 강에 홀로 낚시를 하고 있네.
柳宗元 詩句 (유종원 시구)
癸未新春 (2003년 계미신춘)
芮春浩 (예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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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山 鳥飛絶 (천산 조비절)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逕 人蹤滅 (만경 인종멸) 길에는 사람 자취도 끊어졌네 孤舟 簔笠翁 (고주 사립옹) 도롱이에 삿갓차림 늙은이, 한 척 배 띄워놓고 獨釣 寒江雪 (독조 한강설) 눈 내리는 겨울 강에 홀로 낚시를 하고 있네. 柳宗元 詩句 (유종원 시구) 癸未新春 (2003년 계미신춘) 芮春浩 (예춘호)

Kyzbma Yang:
<江雪 (강설)>
千山 鳥飛絶 (천산 조비절)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逕 人蹤滅 (만경 인종멸) 길에는 사람 자취도 끊어졌네
孤舟 簔笠翁 (고주 사립옹) 도롱이에 삿갓차림 늙은이, 한 척 배 띄워놓고
獨釣 寒江雪 (독조 한강설) 눈 내리는 겨울 강에 홀로 낚시를 하고 있네.
柳宗元 詩句 (유종원 시구)
癸未新春 (2003년 계미신춘)
芮春浩 (예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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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唐)나라의 시인 유종원의 대표적인 산수시로 《당시선(唐詩選)》에 실려 있다. 헌종(재위 805~820) 즉위 후 왕숙문(王叔文)과 함께 한 영정(永貞) 연간의 개혁이 실패함으로써 유종원이 후난성[湖南省]의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되었던 시기에 씌어진 작품이다. 속세를 초월한 듯 대자연에 은거한 고기잡이 늙은이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 관조적으로 노래함으로써, 정치적 실의와 고독감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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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형식은 오언절구(五言絶句)로 분류되는 정형시로, 기승전결의 전4구로 이루어졌다. 제1,2,4구의 마지막 글자 '絶(절)·滅(멸)·雪(설)'이 압운을 나타내는 운자(韻字)이다. 시의 제재는 눈 내리는 강의 풍경이며, 주제는 대자연 속에 묻혀 사는 은자(隱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산수경치의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지며, 객관적 세계를 담담하게 그려내 적막한 시적 분위기와 시인의 고독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 점을 들 수 있다. 기구와 승구에 대구법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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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구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萬徑人종滅(만경인종멸)"은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모든 길엔 사람 자취가 끊어졌다는 뜻으로, 눈 오는 날의 산과 들의 정적감을 그리고 있다. '천산(千山)'과 '만경(萬徑)'은 제3,4구의 '고주(孤舟)'와 '독조(獨釣)'의 정황을 살리는 효과적인 배경으로 작용한다. 제3,4구 "孤舟사笠翁(고주사립옹)/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은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가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한다는 뜻으로, 노인의 모습은 제1,2구에 묘사된 대자연에 대비되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여기서 '사립옹(사笠翁)'은 중앙정계에서 좌천된 작가의 처지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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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강 위에 배를 띄워 낚시를 드리운 어옹의 모습을 노래해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정신적 좌절과 울분을 인내하면서 대자연 속에 시정신을 개화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 시에 묘사된 정경은 중국 남송의 화가 마원(馬遠)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를 비롯해 화제(畵題)로 자주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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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宗元 (유종원)
(773~819). 중국(中國) 당(唐)나라 때의 문인(文人).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자(字)는 자후(子厚). 산서 하동(河東) 사람 장안(長安) 출생. 고문(古文) 부흥(得興) 운동(運動)을 주창(主唱)하였으며, 유하동(柳河東)·유유주(柳柳州)라고도 부른다. 관직에 있을 때 한유(韓愈)·유우석(劉禹錫) 등과 친교를 맺었다. 혁신적 진보분자로서 왕숙문(王叔文)의 신정(新政)에 참획하였으나 실패하여 변경지방으로 좌천되었다. 이러한 좌절과 13년간에 걸친 변경에서의 생활이 그의 사상과 문학을 더욱 심화시켰다. 고문(古文)의 대가로서 한유와 병칭되었으나 사상적 입장에서는 서로 대립적이었다.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산수의 시를 특히 잘하여 도연명(陶淵明)과 비교되었고,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등과 당시(唐詩)의 자연파를 형성하였다. 송별시 ·우언시(寓言詩)에도 뛰어나 우분애원(憂憤哀怨)의 정을 표현하는 수법은 굴원(屈原)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저서에 시문집 《유하동집(柳河東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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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촌(牧邨) 예춘호(芮春浩, 1927년 2월 7일 ~ 2020년 7월 22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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