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71 서화보따리

동양의 피카소가 남긴 수묵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21. 1. 7. 06:07
반응형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 보따리 속에 畔影(반영)이라는 분의 설경 수묵화가 있다. 작은 강 건너 눈 덮인 초막 마당에 눈을 치우는 사람도 있다. 도무지 반영이라는 분이 누구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낡은 노란 종이 쪼가리에서 “東洋のピカソ(동양의 피카소)”를 발견했다. 바로 하반영(河畔影) 김구풍(金俱豊, 1918~2015) 선생의 작품인 것이다.

.

반영 선생은 1918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부친의 직장을 따라 영동, 대전 등지로 옮겨 다니며 살다가 군산에 정착했다. 일곱 살 때 서예와 수묵화를 통해 처음 붓을 잡은 반영 선생은 1931년 철모르는 나이 13세 때 금릉 김영창(1910-1988) 선생의 강력한 추천과 권유로 조선총독부미술전람회에 ‘나팔꽃이 있는 정물’이란 유화 작품을 익명으로 출품하여 최고상인 조선총독상 수상했다.

.

양반 가문에 환쟁이는 있을 수 없다는 부친의 반대로 인하여 반영 선생은 열네 살에 집을 떠나 가출하여 대만, 티벳, 만주 등지를 떠돌았다. 양반집 아드님이 남의 집 머슴살이, 선창가의 막노동자, 극장 간판 집 허드렛일을 하는 환쟁이로 살았다. 그리고 김(金) 씨를 버리고 하(河) 씨로 살다 갔다. 하반영(河畔影) 이란 이름도 ‘냇가 논 반 마지기에 어룽거리는 그림자’라고 본인 스스로 지어 붙였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반영(畔影) 하구풍(河俱豊)으로 알고 있다.

.

반영 선생의 작품은 유럽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61세때인 1979년에는 프랑스 국전 ‘르 살롱’전과 ‘콩파레종’전에서 각각 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7년에는 미국 미술평론가협회 공모전 우수상을 받았으며 2006년에는 동양 미술계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일본 ‘이과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1985년 가을에는 프랑스에서 돌아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며 한국적 미를 탐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했다. 산수와 실경을 그리되 자연을 해석하는 독자적인 시각을 가지려 애썼다.

.

이 작품은 한국적 미를 탐구하던 시절이자 예술혼이 절정에 이르러 프랑스 ‘르 살롱’전과 ‘콩파레종’전에서 금상을 수상하던 시절인 1979년 전북 완주에서 설경을 보고 남기신 작품이다. 유화는 박물관 등에서 자주 접했지만, 수묵화는 많이 보질 못했다. 반영 선생의 작품인 줄 진작 알아보질 못해 송구스러울 뿐이다.

.

+++

 

양금섭 선생님 해설: 1979년 눈그림자의 계절에 완산에서 반영이 그리다 己未 雪影之節於完山畔影画
東洋のピカソ(동양의 피카소)
하반영(河畔影) 김구풍(金俱豊, 1918~2015) 선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