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91 지운서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를 통해 본 봄]

忍齋 黃薔 李相遠 2021. 3. 2. 09:06
반응형

명나라 초기를 대표하는 시인 高啓(고계, 1336~1374)는 벼슬에서 물러난 자유인으로서, 아름다운 강남 땅을 배경으로 구슬과도 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하지만 高啓가 지은 시문이 천자의 비위를 거스르는 바람에, 高啓는 수도로 끌려가서 허리가 잘리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형벌을 당했다. 예술의 꽃이라는 시가 공포와 광란의 도끼로 돌변하기도 한 대표적인 경우가 高啓에게 있었다.

.

지운 선생이 애송한 高啓의 尋胡隱君(심호은군-은군자를 찾아서)은 피비린내 나는 高啓의 최후와 달리,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봄바람 부는 강 길을 가니 집에 이른 줄도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봄을 읊은 詩로 포근하고 환한 봄날의 아름다운 개나리 꽃같은 시다.

.

渡水復渡水(도수부도수) 물을 건너고 또 물을 건너

看花還看花(간화환간화) 꽃을 보며 다시 또 바라보면서

春風江上路(춘풍강상로) 봄바람 부는 강가 길을 걸어가노라니

不覺到君家(불각도군가) 어느새 그대 집에 다다랐도다

.

直譯(직역)을 해보아도 그 아름다움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물을(水) 건너서(渡) 다시(復) 물을(水) 건너고(渡)

꽃을(花) 보고(看) 도로(還) 꽃을(花) 보느라(看),

봄(春) 바람 부는(風) 강(江) 위의(上) 길을(路)

그대(君) 집에(家) 이른 줄도(到) 알지(覺) 못했네(不)”

.

五言絶句(오언절구)는 다섯자 안에 한 덩어리의 응축된 시상을 마무리한다. 시인은 여러 번에 걸쳐 물을 건넜고 강가에 피어 있는 무수한 꽃들을 낱낱이 살펴보며 완전 넋을 잃었다. 대자연에 도취하여 봄바람 강변길을 하염없이 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사실 별 내용도 아니고, 시인이 전하고자 한 심각한 메시지도 없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무한한 여운과 정취가 어려 있고, 시상의 전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그야말로 天衣無縫(천의무봉)이다.

.

이 시는 원래 4절까지 있는데 위 첫 구절이 가장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보통 한시(漢詩)에서 같은 글자를 두번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기(起)와 승(承)에서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 오히려 읽는 이의 감흥을 높인다. 시인은 그렇게 강뚝길을 걷다보니 어느듯 벗의 집에 이르렀다. 맘 가는대로 걸음 내키는대로 친구를 찾아가고, 친구는 이렇게 불쑥 찾아온 벗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맞는다. 그래서 이어지는 다음 절,

.

今日花前飮(금일화전음) 오늘 꽃 밭에서 술을 마시네

甘心醉數盃(감심취수배) 즐거운 마음에 몇 잔 술로 취했네

但然花有語(단연화유어) 단연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不爲老人開(불위노인개) 이 늙은이 만을 위해 핀 것이 아니라고 말 할걸

.

그렇다! 아름다운 이 꽃들은 유독이 나 만 보라고 핀것이 아니고 세상 모두를 위해 피어난 것이다.

.

요즘 코비드-19로 집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나 휴일이면 마스크를 한체 집 근처의 들과 산으로 가깝함을 달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없고 여름은 사막처럼 삭막하고 겨울은 온천지의 생물이 만발한다. 간단하게 채비하고 산과 계곡을 따라 하이킹을 하다 보면, 이름모를 온갖 꽃들이 봉우리를 터트릴 준비 중이다. 은자를 찾아가는 시인의 발걸음과 거의 흡사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하이킹의 끝길 이다.

.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