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044.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성 1949 – The Second Sex, 1949 by Simone de Beauvoir

忍齋 黃薔 李相遠 2023. 3. 2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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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ghB2ifsn-s

시몬 드 보부아르는 프랑스의 실존주의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작가입니다. 작가로서는 1943년에 출간한 초대받은 여자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해 1945 타인의 , 1946 모든 인간은 죽는다(Tous les Hommes sont Mortels) 연달아 발표하고, 1954년에 출간한  망다랭(Les Mandarins)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밖에도 1964년 소설 아주 편안한 죽음(Une Mort Très Douce), 1966 아름다운 영상(Les Belles Images), 1967 위기의 여자(La Femme Rompue)’ 등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1949 2  저술하는 등 철학적인 글쓰기로 현대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후기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완성했으며, 197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여성운동을 통해 낙태죄를 폐지시켰으며, 시대를 앞선 장폴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이 2의 성은 페미니즘 근처를 얼쩡거리는 사람들의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2의 성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페미니즘이 세간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이번기회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생애와 제2의 성의 일독을 권하며 그 속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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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생애 – life of Simone de Beauv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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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원이름은 시몬 루시 에르네스틴 마리 베르트랑  보부아르 (Simone Lucie Ernestine Marie Bertrand de Beauvoir, 1908 1 9 - 1986 4 14)로 제법 깁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08 1 9  파리 6구의 몰락해가는 부르주아 집안 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직 법조인 출신 아마추어 배우 조지 베르트랑 드 보부아르(Georges Bertrand de Beauvoir) 어머니는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프랑수아즈 브라쇠(Françoise Brasseur) 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원해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와 2살 아래로 1910 6 6일에 태어난 헬렌 드 보부아르(Hélène de Beauvoir)등 두딸만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아버지는 어린 보부아르에게  남자의 뇌를 가지고 있다.’라며 거의 쇄뇌수준으로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덕에 보부아르는 진취적인 성격에 지적으로 조숙했습니다. 1 세계 대전 직후 뫼즈 은행의 은행장인 외할아버지 귀스타브 브라쇠르가 파산하면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집안은 가난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 프랑수아즈는  딸을 명문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부부관계까지 악화되었습니다. 아무튼 보부아르는 머리가 우수했고 아버지는 가난에서 벗어날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학문적 성공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딸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긴 하였습니다. 보부아르의 여동생인 엘렌  보부아르는 화가가 되었고, 보부아르는 아버지가 좋아했던 희곡, 문학 등의 취미를 교육받으며 키워졌습니다. 이처럼 보부아르는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서 보부아르는 수녀원 학교에 보내졌고 어렸을 때부터 수녀가 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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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4  종교적 비극과 세상의 많은 변화를 목격하면서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남은 생애 동안 무신론자로 살아갔습니다. 이후 보부아르는 15세의 나이에 페넬론 고등학교(Lycée Fenelon)에서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와 함께 공부했습니다. 1925년에 파리 카톨릭 인스티튜트(Institut Catholique de Paris)에서 수학학사를, 성모 마리아 연구소(Institut Sainte-Marie)에서 철학,문학,언어 학사를 공부하여 합격했습니다. 국립고등사범학교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École Normale Supérieure) 입학하여 철학을 전공하여 1928년에 졸업했습니다. 그녀는그곳에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폴 니장(Paul Nizan), 르네 마여(René Maheu) 만났습니다. 이후 1929 소르본에서 레옹 브룬슈빅(Léon Brunschvicg)의 라이프니츠 개념(The Concept in Leibniz)이라는 논문으로 석사를 했고 1929 1급 교원자격 아그레가시옹 철학시험에서 21세의 나이로 사르트르에 이어 차석으로 최연소 합격을 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시몬 베일(Simone Weil) 이어  번째로 "일반 철학  논리"인증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정치 철학 연구는 그녀가 자신  문제보다는 사회적 관심사를 생각하기 시작하도록 영향을 미쳤습니다. 1929년부터 1943년까지 보부아르는 자신의 저서 수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있을 때까지 고등학교 교사로 종사했습니다. 1943 여름에 보부아르는 교직에서 해고를 당하는데, 보부아르가 제자인 나탈리 소로킨과 연애를 하다가  관계를 나탈리 어머니에게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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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의 어머니는 '미성년자 풍기 문란 선동'이라고 정부에 소송을 걸었는데, 보부아르는  소송에서 패소하여 철학 교사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사건으로 보부아르는  상심에 빠졌으나 이때 즈음  출간한 소설 초대받은 여자 호평을 받자 이를 계기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소설, 에세이, 희곡 등의 여러 가지 작품을 출간했으며 장폴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Merleau-Ponty) 함께 현대(Les Temps Modernes)’지를 창간하여 주요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1949년에 문제의 소설인 2  발표하고 1954년에  망다랭 발표하여 공쿠르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여러 서적들의 출간을 계속하여 문필가로서의 안정적인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을 연구하면서도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지식인이 직접 나서서 행동하는 "앙가주망(engagement)" 지지한 보부아르는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사회운동과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과정에서 프랑스 공산당과 함께 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현실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껴 독자 노선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 , 드골의 노선을 반대하는 정치적 운동을 펼쳤는데  때문에 1960년대 초에 극우파의 테러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여성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74년 낙태 합법화와 피임 자유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권익 보호, 가정폭력 근절에 힘쓰다가, 1986 4 14 78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당뇨로 인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있는 사르트르 옆에 묻혔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무렵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인물로 존경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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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삶에서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은 빼먹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시몬  보부아르를 유명하게 만든 스캔들인 이 계약결혼은 아직도 현대의 일반인들에게 시행하기 망설여질 정도로 파격적인 관계였습니다.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는 국립고등사범학교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시절에 만났습니다. 보부아르에게 구애를 한 장 폴 사르트르는 거절 당했습니다. 대신,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함께 계약결혼이라는 새로운 결혼관계제도를 도입했습니다. 1929 10월 어느  그들이 루브르 박물관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을  그는 "2 임대 계약에 서명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보부아르는 "결혼은 불가능했다. 나는 지참금이 없었다"라고 회고했지만, 학자들은 2의성(The Second Sex) 다른 곳에서 묘사된 그녀의 이상적인 관계가 당시의 결혼 기준과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무튼 그녀와 사르트르는 성적이지만 배타적이지도 않고 동거도 포함하지 않는 평생의 "영혼 파트너십" 맺었습니다.  계약결혼은 2년의 효력이 있었고 서로에게 뜻이 있으면 다시 2년을 갱신하는 식의 관계였습니다. 자유로운 연인관계를 원했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에게 최소한의 규칙만을 조건으로 삼았고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방식을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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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은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서로 파트너를 바꾸든 상관하지 않지만 서로가 합의하거나 요구하는 날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 사르트르도  사항에 동의를 했고 사르트르의 성격을  알았던 보부아르는  계약관계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재계약을 갱신하였습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계약의 갱신을 거부할  있었지만 사실상 서로의 입장에 만족을 했기 때문에 말만 자유지 현실은 종신계약이었습니다.  기간동안  사람은 결혼관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서로의 원고를 검토하는  학문적 동반자로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1947 보부아르는 미국 여행  작가 넬슨 앨그렌(Nelson Algren) 사랑에 빠지기도 했지만 사르트르와 약속한 작업일정에는 항상 맞추어 귀국했습니다. 넬슨 앨그렌 외에도 1952 부터 1959년까지 영화감독 클로드 란즈만(Claude Lanzmann)과도 아내로서의 관계를 유지했는데 당시 클로드 란즈만은 26세였고 보부아르는 란즈만보다 18 연상이었습니다. 31세에는 23살의 청년 자크 로앙 보스트와도 연애를 했습니다. 이외에도 동성 애인도 여럿 두면서 다자연애관계를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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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삶에서 또 하나 빠질수 없는 미성년 제자와의 동성애사건이 있습니다. 보부아르 사후에 공개된 일기와 편지에서 보부아르가 여러 명의 제자들과 동성애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보부아르는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 철학교사를 하던 시기에까지 젊은 여성 3명과 육체 관계를 맺었는데, 이들은 모두 보부아르의 제자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계약남편인 장 폴 사르트르도 나중에  여자들과 육체 관계를 맺었습니다.  뉴스가 보도되자 보부아르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성들을 꼬드겨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첫번째 관계는 러시아 출신 올가 코사키에비치(Olga Kosakiewicz)로 관계당시 18세였습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철학도를 꿈꾸던 학생인 올가에게 개인교습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써서 방을 얻어주었습니다.  보부아르는  방에서 올가와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올가는 훗날 인터뷰에서 "뭐가 어떻든 간에 나는 그들의 관심을 누린다는 특혜에 완전히 흥분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회상하면서, 그들의 권위에 이끌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렸다고 후회했습니다. 두번째 관계는 폴란드 출신 수험생이었던 비앙카 비넨펠트(Bianca Bienenfeld)로 관계당시 17세였습니다. 보부아르는 일기에서 비앙카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육체적 쾌락이 "도착적"이라고 말했으며, 자신이 비앙카의 육체를 "이용하고" "아무 애정 없이" 관능을 즐겼다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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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는 훗날 인터뷰에서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서 성관계를 맺었다고 보부아르를 비난했으며, 보부아르를 "여제자들 중에서  무르익은 젊은 육체를" 선별하여 "자기가 먼저 맛보고 사르트르에게 넘기는" 포식자로 말하였습니다. 세번째 관계는 이혼가정의 가난한 나탈리 소로킨으로 1939년 관계당시 18 였습니다. 나탈리 소로킨의 어머니는 딸을 소르본 대학에 보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보다 취직을 권했지만, 보부아르가 등록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결국 그녀와도 성관계를 맺는데, 심지어  사실을 사르트르에게 편지로 보고했습니다.  글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포옹이 다시 시작되었고 호응이 잘되었어요. 올가와  때랑은 확실히 달랐어요.  그녀의 몸을 좋아해요." 이후 나탈리의 어머니는 보부아르를 '미성년자 풍기 문란 선동'으로 정부에 고소했고, 보부아르는 1943년 교사 자격직을 박탈당했습니다. 물론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프랑스에 미성년법이 아직 제정되기 전이어서 보부아르가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가 명확하게 15 미만과의 성관계를 범죄화한 것은 2021년이 되어서였습니다. 2023 기준으로도 프랑스에서 성인과 15 이상과의 성관계는 불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도 자유로운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 지는 관계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공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되어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 있는 미성년 대상과 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공직자의 그러한 행동은 법으로 제지받는 행동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건으로 인해 보부아르는 교사직을 박탈당했지만 나중에 복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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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함에도 시몬 드 보부아르는 명실상부한 페미니즘의 선구자였습니다. 제대로 여성 인권을 주장한 인물이었고, 성평등을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여자가 가진 여성성,  보편적으로 알려진 소극적, 의존적인 여성성은 여자가 가지고 태어나는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모순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문화적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여성 신체에 대한 '성적 대상화' 여성 억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성적 대상화' 여성을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고 남성 욕망의 대상이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주체' '자유로운 선택'   있는 사람을 뜻하며, 반대로 '대상'이란 선택할 자유가 없이 '수동적'이게 됨을 말합니다.  성적 대상화란, 여자의 '성적 결정권' '남자' 선택에 휘둘리는 대상이나 소유물로 보는 시각을 의미합니다.  여자의 생각에 상관없이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부아르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랑', 남자와 여자  다가 '주체' 되어, 상대방을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하나의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한쪽이 다른 쪽을 구속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그런 사랑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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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문화사회적 복종'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이 주체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보부아르의 생각입니다. 여자는 '문화적 복종' 관계에서 , 여성성을 잃고 남성에게 매력 없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은 사랑을 인생과 동일시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라는 기대에 시달립니다. 이런 문화적 상황 속에서 남자는 여자를 '여성성'이라는 '환상'으로만 바라볼 , '존재 그대로를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며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기획하는 의식있는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고 보부아르는 주장했습니다. 보부아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넘어가려는 과도기의 페미니스트이며, 본격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의 태동보다는 이전의 사람입니다. 보부아르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도,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분류될  있으나, 80년대 이후의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프랑스에는 90년대 이후 북미에서 발달한 래디컬 페미니즘의 조류가 수입되어 보부아르 계열의 기존 페미니스트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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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태어난 폴란드 이민 2세인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여성운동가이며 작가로 사회과학 전문학교(EHESS) 교수로 한때 동반자였던 자크 데리다와 함께 국제철학학교의 운영을 맡은 적이 있으며 프랑스 국무총리를 지낸 리오넬 조스팽과 재혼한 실비안 아가생스키(Sylviane Agacinski) 시몬  보부아르의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면서 "여자는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가능성  하나를 거절함으로써만 자유로울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흔히 어머니로서의 여자가 남자에게 이용되어 도구로 간주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후손에 대한 관심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도구성' 필연적으로 상호적이다. 그렇기에 누가 다른 (, sexe) 이용하고, 누가 다른 성을 수단으로 삼았는지를 아는 문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피임과 생식의 기술로 여자들이 자신의 생식력을 억제할  있는 지금 확인되고 있다. 여전히 무례한 니체는 즐거운 지식에서, 여자에게 "남자는  수단에 불과하다. 목적은 항상 아이이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도발적인 주장은 사실이 되어 가고 있다. 여자들은 자신이 어떤 아버지의 아이를 어느  가질지를 최종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이라고 실비안 아가생스키의 성의 정치 (politique des sexes)에서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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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부아르는 남성이 '모성' 수단으로 여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모성애'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논리를 그대로 여성에게 적용시켜본다면 여성 자신도 그것이 순수한 의도이건 아니건 간에 '아기의 존재' 가지고 남성을 '수단으로써' 사용하고 있음을 실비안 아가생스키는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이용한다는 ' 성별 간에 있어서 상호적인 것인 것입니다. 따라서 임신이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는 '모성' 문제를 한쪽의 '수단'으로써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하나의 가능성, 아기를 낳고 기르기로 선택하는 것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실비안 아가생스키는 주장합니다. 그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고, 인간의 수컷이 사회 속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는 어떠한 생리적, 심리적, 경제적 숙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명 전체가 수컷과 거세체와의 중간 산물을 만들어 내어, 그것에다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2의성 마지막 문장 처럼, "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다.  숭고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녀가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분명히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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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성의 내용 – Contents of The Second Sex,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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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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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성(Le Deuxième Sexe, The Second Sex)’1949 6월에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보부아르가 현대(Les Temps modernes)’에서 출판한 대표작으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사르트르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적이고 페미니즘적 진언으로 보부아르는 먼저 -젠더 구별로 알려지게 ,  생물학적 성별과 젠더의 사회적, 역사적 구성과 이에 수반되는 고정관념 사이의 구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은 본질적인 타자로서의 여성성의 역사적, 사회적 구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정의되기 때문에 여성을 "2 "으로 정의합니다.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이 "특정한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이라고 주장한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이자 "부수적인" 존재라고 언급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녀는 "동성애는  자체로 이성애만큼 제한적입니다. 이상은 두려움, 구속 또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여성이나 남성, 어느 쪽이든 인간을 사랑할  있어야 합니다." 보부아르는 여성도 남성만큼 선택의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이전에 체념했던 " 내재성 " 넘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위치인 "초월성" 도달하여 자신을 고양시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번째 출판은  판이 프랑스에서 나온    후에 나왔습니다. 출판사 알프레드 A 크노프(Alfred A. Knopf) 아내  블랑쉬 크노프(Blanche Knopf) 요청에 따라 하워드 파쉴리(Howard Parshley) 빠른 번역으로 인해 바로 미국에서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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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쉴리(Parshley) Smith College 생물학 교수로 프랑스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었고 철학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부아르(Beauvoir)  대부분이 오역되거나 부적절하게 편집되어 보부아르 의도한 메시지를 왜곡했습니다. 수년 동안 크노프(Knopf) 실존주의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제안을 거절하면서 보부아르 작업을 보다 정확하게 재번역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1953년 전혀 다른 영문판이 번역되었으며, 프랑스에서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마냥 무시받은 것은 아니라서, 출간 이후 50 동안 프랑스에서만 100 부가 팔려나가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심지어 1984년에는 영화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실존주의의 시각이 아닌 사회경제적 시각에서 다시 분석한 속편의 집필을 고려하였으나, 작업량이 너무 버거워서 포기했다고 합니다. 제목은 본래는 다른 으로 하려 했으나, "동성애자가 '3 ' 이라고 불린다면, 둘째 성은 남성이라기보다는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2009년에야 최초 출판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번째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콘스탄스 보드(Constance Borde) 쉴라 말로바니-슈발리에(Sheila Malovany-Chevallier) 2010년에 최초의 통합 번역본을 제작하여 원본의 3분의 1 복원했습니다. 2의 성(The Second Sex)’ "여성: 신화와 현실(Woman: Myth and Reality)" 장에서 보부아르 남성이 여성을 주변에 "신비"라는 잘못된 아우라를 적용하여 사회에서 여성을 "타자"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남성들이 이를 핑계 삼아 여성이나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돕지 않고, 이러한 고정관념은 사회에서 항상 상위 집단에서 하위 집단으로 행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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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인종, 계급, 종교와 같은 다른 범주의 정체성에서도 계층에 의한 유사한 종류의 억압이 발생한다고 썼지만 남성이 여성을 고정 관념으로 삼고 그것을 핑계로 사용하는 젠더보다  진실한 곳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운동, 특히 프랑스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그녀의 공헌과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동등한 교육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 처음에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의 부활을 관찰한  보부아르는  이상 사회주의 혁명이 여성 해방을 가져오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1972 새로운 관찰자(Le Nouvel Observateur)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2018년에 2의 성(Le Deuxième Sexe, The Second Sex)’ 원고 페이지가 출판되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입양된 딸인 철학 교수인 실비   보부아르(Sylvie Le Bon-Beauvoir) 어머니의 저술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한정되고 달라지지만, 남성은 여성에게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은 우발적 존재입니다. 여성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비본질적입니다. 남성은 주체입니다. 남성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여성은 타자입니다. 비본질로서의 여성이 본질로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힘으로 그러한 반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1, p.23”  책은 이항대립의 세계관, 성기환원주의에 대한 비판, 성녀-창녀 이분법, 젠더라는 개념과 사회화로서의 여성성, 비출산 운동, 낙태 찬성론, 모성신화에 대한 비판, 자기타자화에 대한 비판  현대 페미니즘의 주축을 이루는 굵직한 담론들이 거의 전부  책의 영향 하에 있기에 "페미니즘의 바이블"이란 찬사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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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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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당시 프랑스에는 사회적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전쟁  이후의 재건을 겪으며 여성들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해졌고, 전쟁에 참여한 이래 남성들의 부족으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용인되었으며, 독일의 침공을 견뎌내는  여성들이 군수공장 등등에서  역할을 다해준 것에 대한 영향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성인권, -가정 양립 등의 이슈들이 프랑스에서 사회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철학자이자 작가인 보부아르는 전후에 팽배해 있던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다른 학문적 흐름들인 정신분석학과 공산주의는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실제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책의 철학적 기반에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됩니다. 1945년에 프랑스에서 여성참정권이 보장되는  점차적으로 여성인권이 하나하나 갖춰지고, 가톨릭과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전개되고 있었으나, 보부아르는 그쪽과 거의 연이 없는 상태에서 어쩌다가 여성문제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이 흔히 겪는 "편견과 차별"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다가 페미니즘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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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보부아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은 그녀의 에세이인 '모든 사람은 혼자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보부아르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수적입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따르면, 1) 인간 행동을 안내해  초월적 가치는 없습니다. 2) 존재에는 이유가 필연적으로 따르지 않으며, 존재의 최후의 목표는 존재의 주체적 근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3) 실존은 본질보다 앞섭니다. , 창조된 것은 본질이 실존보다 앞서지만, 창조되지 않은 인간은 실존이 본질보다 앞섭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을 창조함으로써 실존합니다.  철학적 관점에 따르면, 모든 개인은 실존으로부터 무한한 자유와 선택의 기회를 가지며, 개인 간의 만남은 결국 주체성의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개인이 자신에게 주체적이기 위해서는 타자를 객체화할 수밖에 없는데,  타자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상대방을 객체화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이후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 도덕을 통하여 해소되어   있습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은 보부아르가 주장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타자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여성들 스스로의 자기타자화"  구체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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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의 열등함은 여성의 본질 때문이 아니며 남성들의 타자화에 의한 것입니다. 이때 여성들은 자신을 창조 즉 실존하기 위한 자기초월의 작업에 전념할 수도 있지만, 자기타자화를 통해 객체로서의 삶에 안주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서의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본디 대등한 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항상 불평등한 맥락인 것만은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에 대등하지 못한 관계가 형성된 것은 여성들의 자기타자화 때문이라고 진단할  있습니다. 결국 보부아르는 "여성들은 유사 이래 아무것도 스스로 쟁취하지 못했다" 개탄했으며, 페미니즘의 당위성은 여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배경에 입각하자면, 수많은 여성들은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있는가?"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수가 여성의 특성 즉 여성성은 본질적인 것이라는 점에 입각해 답하지만, 인간의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는 실존주의에 따르면 이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성의 본질을 규정한 것은 정작 여성 본인들이 아니라 남성들이었습니다.  지점에서 보부아르는 풀랭   바르(Poulain de la Barre)’ 유명 어록을 인용하는데,  어록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에 대해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당사자인 동시에 판단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성들은 여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아예 처음부터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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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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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권으로 구성됩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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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과 신화 (Woman: Myth and Reality), 서론, 숙명, 생물학적 조건, 정신분석적 견해, 유물사관의 입장, 역사, 신화, 1, 2, 몽테를랑, 또는 혐오의 , D.H.로렌스, 또는 팔루스의 자존심, 클로텔과 주님의 여종, 브르통, 또는 , 스탕달, 또는 진실의 로마네스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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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체험, 서론, 형성, 유년기, 젊은 처녀, 성에 입문, 동성애 여자, 상황, 결혼한 여성, 어머니, 사교 생활, 매춘부와 ,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여자의 상황과 성격, 정당화, 나르시시즘의 여자, 연애하는 여자, 신비주의 여성, 해방을 위하여, 독립한 여성,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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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의 핵심 내용을  문장으로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의 여성운동이 아래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책은 그야말로 오늘날의 페미니즘의 알파에서 오메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라고   있습니다.
남성이 주체요, 본질이요, 1 성이요, 지배하는 우월한 존재이고, 여성이 객체요, 비본질이요, 2 성이요, 예속된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은, 남녀의 본질적 측면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사회적으로 만들어져  것입니다. 여성의 삶이 이처럼 열등하게  것은 고금을 통틀어 보더라도 여성들 본인들이 자기타자화를 통해 남성중심적 사회에 예속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여성들 본인들이 일어나서  억압적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하며,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 역시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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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사실과 신화(Les faits et les myt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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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적으로 보부아르는 제일 먼저 여성의 조건에 대해 기존에 관념적으로 공유되던 생각인 "여성의 본질" 대해 논박하는 것으로 1,000페이지에 달하는  에세이를 시작합니다. 남성은 원래, 당연히, 어쩔  없이 주체가 되고, 여성은 원래, 당연히, 어쩔  없이 객체가 된다는 생각은  자체로 하나의 신화이며, 이는 현대에 각광받는 생물학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뒷받침되거나 혹은 방조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때에도, 여성들은 어느 순간부터 타자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유목사회, 농경사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계몽주의, 프랑스 대혁명,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남성-주체, 여성-객체의 구도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의심할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많은 저술가들과 작가들, 문필가들의 저작들에서는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이를 종류별로 강조하기 위하여 보부아르는 당대 유명한 인물 다섯 명을 골라서 그들의 저술 활동 속에 녹아 있는 젠더 감수성의 현주소를 고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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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1. 여성의 본질: 태생적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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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본질이 어떻게 열등한 것으로 정의될  있을지에 대해서, 보부아르는 당시 인기를 끌던  가지 관점으로부터의 예상 답변을 각각 정리하고, 이에 대한 논박을 시도하였습니다. 첫째로,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열등한 성별(sex)로서의 여성이 본질적으로 규정될  있다는 주장입니다. 보부아르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 즉 어류, 곤충, 포유류에서 난자와 정자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녀는 생식의 관점에서 종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설명하고 남성과 여성의 생리학을 비교하며 가치는 생리학에 기반할  없으며 생물학의 사실은 존재론적, 경제적, 사회적  생리학적 맥락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여러 디테일한 부분은 생략하고 보부아르의 반론만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자웅이체와 유성생식이  자웅동체나 무성생식보다 '우월' 하다고  수는 없으며, 이는 진화론의 관점과도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자연주의의 오류라고   있습니다. 2) 또한 1940년대까지의 연구로 미루어 보건대, 동물계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열등' 하다고   있는 학문적 근거는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3) 이에 더해, 여성의 본질은 자궁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여성들은 초경부터 폐경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자신의 신체가 객체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암컷의 굴욕감'  느끼기는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부단히 스스로를 창조하며 실존하려는 존재이므로, 자신에게 자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이 열위로서의 여성성을 기꺼이 인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에게 주어진 이러한 생물학적 조건만으로는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종속적 위치를 정당화하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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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여성의 열등함이 학문적 근거를 갖출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보부아르의 반론만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신분석학은 여성의 성욕, 리비도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성 담론에서의 나름의 의의를 갖지만, 남성의 리비도를 규범으로 규정하고 여성의 리비도는 일탈로 치부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2) 정신분석학은 남성을 원형으로 삼습니다. 여성이 자신을 '성기가 잘려나간 남성'으로 자각한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은 철저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입니다. 왜냐하면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남성의 성기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은 5 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것도 동경이 아닌, 단순히 호기심이나 징그러운 느낌, 연약해 보이는 느낌만을 가질 뿐이며, 그걸 동경이라고 엉뚱하게 해석하는  잘못입니다. 마찬가지로 딸이 아버지를 선망하는  역시 남근선망 따위가 아니라, 아버지가 갖는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가부장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선망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3) 성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실존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부모의 수유와의 분리 이후 상실감을 경험한 유아는 주체성을 회복할 기회를 모색하는데, 남성은 자신의 성기를 주체화함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지만, 여성은 다른 무언가를 자기 몸에서 발견할  없기에 자기 자신을 객체로 정의한다는 식의 설명이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여성이 남성의 생식기 구조와 자신의 몸을 비교하는  그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를 가지고 여성의 열등함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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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의 유무를 두고 여성의 사회적 운명이 결정된다는  비약입니다. 셋째로, 엥겔스의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여성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현실이라는 엥겔스의 관점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원시공산주의에서는 남녀가 평등했지만 잉여가치와 사유재산의 출현으로 여성이 종속당했으며, 계급투쟁을 통해 평등을 회복할  있다" 가족의 기원 역시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1884년 엥겔스가 그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의 위대한 역사적 패배" 청동의 발명과 사유재산의 출현의 결과라고 주장만 했지  주장을 뒷받침한 게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유재산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이행되고 정착될  있었는가? 여성의 종속 문제를   정치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설명해야만 하는가? 이는 프로이트의 성적 관점과 같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지 않는가? 결국  관점 역시 보부아르를 만족시킬 만큼 정당화될  있는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보부아르가 거부하는 견해를 가진 저자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알프레드 애들러(Alfred Adler),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짚어본 보부아르는 자신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활용하여, 여성 문제를 "존재하는 자가 실존의 근거를 보여주기 위해 자기를 초월하여 주체성을 모색하는 과정"  비추어 접근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 열등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실존주의의 인식의 렌즈를 활용한 주체와 객체의 논리를 대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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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 인류 역사와 여성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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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에서 보부아르의 목표는 선사학  민속학의 성과를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재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역사   어떤 때에도 여성은   번도 1 성이 되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기창조를  나가는 존재라는 실존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이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합니다. , 여성의 자기초월과 실존은 생식 출산이라는 숙명에 의해 좌절된 반면, 남성의 자기초월과 실존은 생명을 빼앗는 힘을 통해 달성되었으며  결과 생명을 재생산하는 여성을 종속시켰다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유목사회와 농경사회에 대해 보부아르가 고찰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목사회에서 남성의 우월성은 제도적으로 공인되지 않았기에 아직 약했지만, 농경사회에서는 가부장적 제도를 통해 남성의 우월성이 공인되었습니다. 레비스트로스의 관점을 빌어, 보부아르는 "대지와 자연을 여성으로  초기 농경사회"  흔히 알려진 것처럼 여성의 황금시대라는 생각을 반박했습니다. 이것은 모성에 대한 숭배일 , 여전히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는 남성들이 도구의 제작과 자연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 등을 통해 점점  농경의 우연성을 제거하기 시작하면서 가속화되었습니다. 노동이 남성의 삶에서 점점  중요해지면서, 여성은 점차 남성에게 신비적 권위를 잃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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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은 여성의 열위를 주장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들이 정립한 체제 속에 여성을 편입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다음으로 국가사회  여성의 위치에 대해 보부아르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고대 국가사회에서 여성은 상속물로서 취급되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아버지의 재산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남편의 재산이었습니다. 보부아르의 표현에 따르면 "여성들은 영원히 미성년자" 였습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 극작가 메난드로스(Menandros) 같은 인물들이 공공연히 여성을 멸시하는 언급을 했고, 로마 시대에는 법률적으로는 여성에게 오히려 상당한 권위를 주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중세시대에 들어, 기독교 이념은 여성을 압제하는  기여했습니다. 봉건제도는 여성을 남편에게 종속시키는 것과 동시에 봉토에도 종속시켰습니다. 중세 무훈시의 귀부인과 궁정 여인들의 우아한 이야기는 이제는 그저 껍데기만 남은 도덕의 보상에 불과했습니다. 상황은 르네상스가 되어도 나아지지 않아서,  시기에 여성들의 입지는 일견 개선된  보이나, 여전히 특권계급의 일부 귀족 여성들에게만 허용되었을 뿐이었습니다. 17세기, 살롱 위주의 사교계 활동을 통해 여성들은 상당한 자유를 누렸으나, 실상 이는 세계의 발전의 흐름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담소를 나누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계몽주의 시기에도 백과전서파와 같은 일부 남성들은 남녀평등과 유사한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이것이 여성의 성취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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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 속에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함으로써, 이번에도 여성들은 어떤 성취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제정된 여성인권의 법률은 군국독재 시절에 제정되었고, 나폴레옹 법전은 프랑스 여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이후 콩트  생시몽(Comte de Saint-Simon)이나 클레르 바자르(Claire Bazard),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등의 인물들이 나타나서 여성해방적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전부 이상화된 여성에 대한 감상주의적 태도에 그쳤을 뿐이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산업혁명 이후, 여성은 생산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나은 입지를 누렸지만 -가정 양립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여성들은 언제나 그랬듯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이는 체념과 복종이라는 전통적인 여성성에 기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낙태와 산아제한은  늦게 이루어진 근래의 일이었습니다. 보부아르는 역사 전체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위의 항을 차지해  것에 대해서 "여성들이 가부장적 권력에 아첨해 왔기 때문" 이라고 지적합니다. 남성들은 분명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추상적 권리를 보장하며 그나마 달래어 왔지만, 이는 구체적 현실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에게 명목적으로 부여된 추상적 권리가 구체적 현실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여성 본인들이 자기초월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실존하는 주체로서의 삶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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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3. 여성성에 대한 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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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이브인 동시에 성모 마리아입니다. 여성은 우상이자 하녀이며, 생명의 원천이자 암흑의 세력이다. 진리의 소박한 침묵인가 하면 기이하고 교묘하기도 하며, 수다이기도 하며 거짓말이기도 하다. 여성은 의사이며 마술사이다. 여성은 남성의 먹이이며, 남성이 파멸하는 씨앗이다. 여성은 남성에게는 없으며 남성이 갖고 싶어하는 전부이며, 남성의 부정이고, 남성의 존재 이유이다. – 2  1 

보부아르는 이제 여성성에 대한 숭배로서의 여성신화를 지적합니다. 여기서 신화란, 의식이 아무리 파악하려 해도 끝까지 도피하려 하는 초월적 이념으로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여성들의 모습을 어떠한 영원한 형태의 모습으로 환원시킬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사회는 여성들에 대해서 특정한 허상의 이미지를 투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견고히 합니다.  기원은 창세기의 이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미지는 모순적이고 해석하기에 종잡을  없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남성에게 여성은 두려움의 대상이기에 미화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에 대해 남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씌워 놓은 거짓 이미지들은 다음의 것들이 있습니다. 생명수태와 재생산에 관련된 허상: 여성은 생명을 품고 창조하는 존재인가?  미슐레(Jules Michelet),  프란체스코 등이 숭배하고 찬양한 여성성은 인간의 근원, 양육자, 생산자로서의 여성이며 자연  자체입니다. 그래서 여성을 대지에 비유할 , 남성은 종종 '밭을 갈고 씨앗을 심는' 농부에 비유됩니다. 하지만 생명의 상징은 죽음의 상징을 연상시키고, 그와 동시에 여성은 혼돈과 암흑, 불결의 속성도 갖습니다. 남성들은 여성의 생산력을 찬양할  외경심을 갖고 찬양하며,  찬양을 통해 여성의 역할을 좁히고 위치를 특정하여 소유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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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3.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금기: 여성은 보호받고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몸을 지닌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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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외부 성기를 사회가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길 꺼리는 것은 여성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회의 공포입니다. 여성은 관계 시에 수동적이지만, 남성의 성기를 상징적으로 '죽인다'  점에서 여성의 성기가 공포스럽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타자가 가공할 힘을 갖고 있을 , 남성은 무조건적 억압이 아닌 '길들임' 통해 타자를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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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3. 성모 마리아/어머니/하녀의 허상: 여성은 헌신적이고 자애롭기에 거룩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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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여성성의 찬미는 우선적으로  여성이 종속적 역할을 수락하는 선언을 해야만 가능합니다. 여성들은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남성들이 수여하는 권리를 회복합니다. 남성들은 이런 여성들에게 순종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지배를 획득합니다. 어머니가 갖는 여성성은  신비스러운 힘마저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거룩한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남성들이 장모(丈母)에게는 그런 숭배를 하지 않음을 들어 모성혐오 역시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녀들 역시 '아이처럼 상냥하고, 자상하고, 자애롭고, 순박하며, 헌신적인' 이미지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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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3. 얌전한 소유물로서의 허상: 여성은 남성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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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남성들에게 있어 여성은 부드러운 반죽과도 같습니다. 남성의 손길이 가는 대로 얌전하게 빚어지는 동안, 남성은  여성을 온전하고 철저하게 소유함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너무 쉽게 뜻대로 빚어지는 재료보다는 다소간의 저항이 있는 재료를  선호합니다. 그것이 남성들의 정복욕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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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3. 남성을 인정하는 여성으로서의 허상: 여성은 남성의 강함을 확인해 주어야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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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자신들을 인정해 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행동과 판단에 대한 가치평가를 여성이 내려주기를 바라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가치와 무게를 확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여성들은 흔히 신과도 같은 판단자가 됩니다. 자신의 강함을 확인해  여성을 남성들은 '만들어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을 감히 평가할  있을 만큼 강한 여성이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여성에게 강한 측면과 약한 측면을 모순되게 요구하는 경향은 마침내 '정숙하고도 요염한 아내'  같은 허상으로 나타나고, 이를 여성이 받아들였을  남성들은 도리어 여성이 신비스럽고 변덕스러운 존재라고 결론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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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상, 신비는 여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입니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남녀 모두가 신비를 갖고 있으며 원래 변덕스럽고 양면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이를 여성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것은 남성중심적인 사고입니다. 보부아르는 "만일 여성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특권을 갖고 있는 사회라면  신비가 역전되어 남성의 것이  수도 있음"  언급하면서 신비가 특정 성별에 필연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전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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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4. 작가들과 지식인들의 여성 비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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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보부아르는 당시 유명세를 얻고 있던 다섯 명의 작가들의 저작들을 논의하면서, 이들이 그려내는 여성이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는지,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어떤 해석과 설명이 가능한지를 논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다섯   스탕달을 제외한 나머지  명은 모두 남성중심적 사회의 풍조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으나, 저마다의 관점의 차이는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스탕달은 보부아르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울 만큼 여성에 대한 타자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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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몽테를랑(Henry Montherlant) 영웅호색, 남성우월주의적 영웅주의, 남성은 초월자이자 비상하는 존재, 여성은 남성의  밑에서 구르는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적일 따름이며, 애인은 그저 노예근성에 빠진 기생충으로 표현했습니다. 여성의 가치는 그저 육체  자체로서만이 의미가 있으나, 남성이 설혹 여성의 육체를 탐한다 해도 이는 남성의 우월함을 증명할 뿐이며 노리개 놀음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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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는 양자대립, 양극 사이의 균형 잡힌 타자화,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지배할 수도 없으며 순종할 수도 없다는 것이  사람이 바라보는 남녀관입니다. 이상적인 관계는 자기타자화가 만연한 관계처럼 묘사했습니다.  갈등은 상대방을 무리하게 정복하려   발생하며, 남성과 여성이 연결되는 유일한 기회는 남성의 성기가 여성에게 삽입될 때뿐입니다. 생명의 상징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 주어진다는 것도 그의 특징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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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델(Paul Claudel)은 열위로서의 여성에 대한 유신론적 옹호로 가부장제  신론(神論) 같은 주어진 질서 내에서 여성은 긍정되고 정당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여성은 신의 피조물이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여성이 가치를 갖는 이유는 가족 내에서 남편에게 해야  도리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위 항을 차지하는  역시 긍정되고  나아가 신성화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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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은 중개자로서의 여성, 여성은 남성이 진리와 소통하는 통로로서 작용하며, () 추구하는 남성이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는 계기라고 합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세상의 경이와 만날  있게 하는 블랙박스일 따름입니다. 브르통은 여성이란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도구적인 여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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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Standhal)은 모범사례, 여성에 대한 일체의 타자화가 없습니다. 여성을 어떤 이미지에도 밀어넣지 않으며,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창조하며 실존하는 여성관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성과 여성  관계는 동등한 자유와 자유가 만난 상호성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더불어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양성 간의 생산적인 관계를 그려내어, 남성들의 경험이 위협되지 않을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스탕달은 보부아르가 인증한 사실상의 "페미니스트"  분류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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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요약해보면, 여성 상태의 진화를 설명하는  가지 요소는 생산 참여와 생식 노예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보부아르는 모성이 여성을 동물처럼 "여성의 몸에 고정"시켰고 남성이 여성과 자연을 지배할  있게 만들었다고 썼습니다. 여성은 고대 그리스의 여성 상황을 로마와 비교합니다. 그리스에서는 스파르타만 제외하고 여성은 거의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로마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주인이었기 때문에 여성이  많은 권리를 누렸지만 여전히 성별에 따라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공허한 자유만 누릴  있었습니다. 기독교와  성직자들이 여성을 종속시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보부아르는 또한 매춘과 12 세기경에 발생한 궁정식 사랑이 가져온 역학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보부아르는 15세기 초부터 "위대한 이탈리아 여성과 창녀" 묘사하고, 아빌라의 스페인 테레사를 "자신을 남자만큼 높이" 성공적으로 키운 것으로 골라냅니다. 어떤 남성은 자신의 일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도왔습니다. 보부아르는 나폴레옹 법전의 잘못을 발견했고, 오귀스트 콩트와 오노레  발자크를 비판하고,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을 반페미니스트로 묘사했습니다. 19세기의 산업 혁명은 여성에게 집에서 탈출할 기회를 주었지만 일에 대한 보수는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보부아르는 노동 조합의 성장과 여성의 참여를 추적합니다. 그녀는 피임 방법의 확산과 낙태의 역사를 조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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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여성 참정권  역사를 언급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마리 퀴리 같은 여성들을 통해 여성의 우수함을 입증합니다. 보부아르는 대부분 남성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여성에 대한 "영원한 실망"을 설명합니다. 보부아르는 성교, 결혼, 모성, 매춘을 포함한 여성 월경, 순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룬다 . "여성 생식력의 공포" 대한 남성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보부아르는 영국 의학 협회 회원이  1878 영국 의학 저널을 인용합니다. 앙리 몽테를랑(Henry Montherlant), 데이비드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클로델(Paul Claudel),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스탕달(Standhal) 작업을 검토하면서 보부아르는 이러한 예는 위대한 집단 신화가  단일 작가에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여성적 헌신은 몬테를랑과 로렌스에 의해 의무로 요구됩니다.  오만했던 클로델, 브르타뉴, 스탕달은 그것을 관대한 선택으로 칭찬 합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신화에서 "미스터리" 두드러진다고 썼습니다. 그녀  또한 미스터리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모든 노예와 관련이 있다고 썼습니다. 그녀는 남성이 여성을 동료로 간주한 18세기 동안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남성이 그녀에게 자유를   언젠가 여성이 완전한 인간이   있기를 바라는 아서 랭보(Arthur Rimbaud) 말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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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체험(L'expérience véc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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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양상들 속에서 만들어져 가게 되는지를 막대한 분량을 할애하여 기술했습니다. 특정 여성 개인의 체험인 것은 아니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어지간한 여성들이라면  번쯤은 어느 정도는 겪어 보았을 일들을 통해서 여성이 어떻게 열위 항으로서의 위치를 받아들이며 사회화가 진행되는지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레즈비언에 대해서 주체-객체의 실존주의적 논리를 들어 평가하는 것도 독특한 점입니다. 이후로 보부아르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처지를 애써 정당화하려 하는지  가지의 가능한 경우를 들어 논의하고, 마지막으로 여성을 열등하게 '만들어 가는' 사회를 어떻게 하면 바꿀  있을지에 대해서도 제안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전체 규모가 1,000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에세이에서 유독 문제에 대한 처방에 해당하는 최종장이 불과 50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아쉬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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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1. 전생애에 걸쳐 만들어지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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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형성되는' 것이라는 보부아르의 젠더 개념에 따르면, 여성의 삶은 자기초월과 창조의 과정이 아니라, 그저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예정되어 있는 수순을 하나씩 때가 됨에 따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여성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열등함을 받아들이고, 실존적 주체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면서도, 심지어 이를 씁쓸한 마음으로 기뻐하도록 사회화됩니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보부아르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여성이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경험들의 공통적 측면들을 강조합니다. 먼저 유년기의 경우, 어린이가 부모의 수유를 마치고 분리된 이후 부모를 기쁘게 하고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후천적 속성으로서의 여성성의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소년들은 자주와 독립을 교육받으며 그것이 자신의 우월성의 원천임을 확인하나, 소녀들은 의존과 연약함이 허용되는 양육을 받습니다. 소년들은 주체의 일부인 성기에 자기를 투사하지만, 소녀들은 객체의  종류인 인형에 자기를 투사합니다.  인형놀이는 소녀들이 스스로를 객체화해야 인정 받고 행복해질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체계적 교육을 통해, 소녀들은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기다려라"  메시지를 배워 갑니다. 이후 사춘기의 경우, 소년들이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반면, 소녀들은 대개 자긍심보다는 공포에 질려서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이는 섹스와 출산에 대한 공포,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남성에 대한 공포 등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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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은 초경의 경험을 자신이 더럽혀진다는 위험 신호처럼 느끼고, 섹스를 상상할 때에는 소년들이 흔히 갖는 정복감의 환상이 아니라 "뚫림, 찢김" 같은 파괴적 이미지의 공포를 경험합니다. 여성이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남성은 성숙한 신체를 통하여 자기초월과 성취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세계를 향해 주체적, 능동적인 태도를 유지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수동성을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 속에서 혼란과 압박,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객체로서의 가치를 깨닫기 위한 일환으로써 몸치장을 하고 남성에게  보이려 애쓰게 됩니다.  외에 여성은 다른 방법으로 나르시시즘에의 탐닉, 노인 남성과의 사랑, 동성 간의 사랑, 자신의 여성성을 거부하는 자해, 인간 사회로부터의 도피 등을 시도할  있지만, 이는 모두 주체가  용기가 없는 자신에 대한 기만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보부아르의 평가입니다. 여성의  성경험은 보부아르의 분석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축에 속합니다. 성욕의 해소가 주체로서의 자기에 모순되지 않는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첫경험은 대체로 폭행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침대는 군사 용어가 난무하는 전쟁터가 되고, 제압하는 자와 제압당하는 자가 존재하는 투기장이 됩니다. 남성은 섹스에 있어서 매우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며, 여성은 남성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로 첫경험에 임합니다. 남성은 첫경험을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여성은 걱정과 불안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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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섹스가 시작되면 여성은 자신이 걱정해 왔던 객체로서의 수치를 자신의 몸으로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이로써 여성은 첫경험 이전까지의 자신의 모든 삶으로부터 급격하고 격렬한 방식으로 '단절' 되며, 완전히 새로운 자신으로서 유리되고 맙니다. 그리고 남성들은 이를 꿈에도 모르는  자신의 애인에게 있어 첫경험이 몹시 황홀한 시간이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보기에 남녀 간의 원만한 섹스는, 남성중심적이고 작위적인 기교가 아니라 남녀에게서 자연히 드러나는 매력을 바탕으로  상호적 관용에서 시작합니다. “여성의 질은 남자가 개입해야만 성적 욕구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개입은 일종의 폭행의 성격을 띤다. 그녀를 처녀에서 여자로 바꾸는 것은 폭력이다. 그래서 처녀성을 '빼앗는다' 느니 처녀의 꽃을 '꺾는다' 느니 하는 말이 있다. 이런 처녀성의 상실은 계속해서 발전하는 원만한 결말이 아닌 과거와 급격하게 단절하는 것이며, 새로운 과정의 시작이다.” – 2  2 
일부 여성들은 이러한 폭력적인 섹스를 걱정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동성애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관점을 따라, 보부아르는 동성애가 선천적이라고 믿지 않으며, 생리적 조건은 그저 하나의 상황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객체로서의 수치 없이 사랑을 구현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며, 남성에 의한 숙명적 지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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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일견 남성적으로 보이는 것은 남성에 대한 동경이나 모방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성에 대한 거부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보기에, 이들은 동성애를 선택하고도 남성과의 관계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합니다. 레즈비언 간의 섹스는 거울상의 형태를 가지며, 지배나 제압이 아닌 상호적 관조의 양상을 띠게 됩니다. 종합적으로 레즈비언은 여성이 내린 하나의 '선택의 결과'  따름이며, 숙명적이라거나 태생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음으로 여성들이 결혼하여 아내가 되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보부아르가 보기에 결혼은 주체로서의 남성과 객체로서의 여성을 고착화시키는 나쁜 제도입니다. 결혼을 통해 여성은 남성에게 '주어지지만' 그와 동시에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받게 됩니다. 여성에게 결혼이 행복이 아님이 자명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편을 가능한  까다롭게 고르려 하지만, 어차피 누구와 결혼해도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자유가 없으면 사랑도 없지만, 여성들은 허울만 좋은 '사랑'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남성에게 예속되는 길을 선택하고, 관습으로서의 결혼은 결코 사랑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많은 아내들이 단지 연극 내지는 의무방어전으로서의 섹스만을 하게 됩니다. 아내가 주체가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영역이 가사노동이지만, 실상 이는 자기초월과는 무관한 시시포스의 형벌이요,  빠진 독에  붓기일 뿐입니다. 결혼의 비극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의 문제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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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어머니가 되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녀 출산이 여성에게 가장  기쁨이라는 주류 사회의 생각과는 달리, 보부아르는 계급적 범죄 로서의 낙태를 합법화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보부아르가 보기에 남성들은 낙태 합법화를 반대할  생명의 가치를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의 여성에게는 낙태를 권유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임신의 경우,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향유할 기회를 얻지만 그와 함께 거북함과 수치심을 함께 경험합니다. 분만 중의 고통에 대해 주류 사회가 모성의 근원으로 추앙하는 것과 달리, 보부아르는 무통분만에 찬성했습니다. 모성애 역시 본능적인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시선은 매우 복합적이고 기묘하기에, 심지어 보부아르는 때로 어머니는 자녀에게 위험한 존재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모성애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지도, 자녀를 기쁘게 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지는, 자녀 양육은 어머니 한쪽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중차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꾸린 여성들의 사회생활은 전업주부로서 여성들이 나름대로의 주체가 되려는 노력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점차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키고 사물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화장은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있다는 기만적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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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불륜과 간통은 물론 불신과 파국을 낳는 심각한 범죄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 , 여성이 추구하는 자유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일부 여성들은 성매매의 길로 접어들기도 합니다. 매춘은 주류 사회에서 "정숙한 여성이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난잡한 여성이 필요하다" 논리 하에 허용되어 왔습니다. 매춘과 결혼은 여성의 굴종이라는 점에서 매춘은 결혼보다도 끔찍한 제도인데, 매춘은 최소한의 사람 취급도  받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매춘부들은 본인의 욕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부조리와 혼란, 그리고 빈곤 문제 때문에  길에 빠져들었다고 평가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대중매체의 스타 연예인에서부터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마치 주체가  것처럼 보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적이듯, 이들 역시 누군가 대중에게 의존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첩의  종류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런 첩들은 실존하는 주체로서의 자기초월의 가망조차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의 노년기의 경우,  이야기는 결국 배드 엔딩으로 흐릅니다. 여성은 그리 늙지 않았을  이미 그나마의 존재의 의의인 성적 매력을 상실하여 생애의 남은 절반을 어떠한 희망도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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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은 때로 월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늙어간다는 공포감을 심어 줍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후회와 비탄을 느끼고, 마침내 40-50대에는 남성에 대한 격렬한 성욕을 보임으로써 자신을 구제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수태력을 상실하고 나서야 여성은 비로소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유를 얻으나, 이미 어떠한 권리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라 이런 자유는 무의미할 따름입니다. 아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마음 역시 며느리의 존재로 좌절되며, 손자녀의 출생은 할머니의 죽음과도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노인이  여성은 삶의 어느 국면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무용지물이라는  깨달을 뿐이며, 회한과 아쉬움 속에 죽어갈 뿐입니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다수의 여성들이  속에서 순차적으로 마주하는 다양한 삶의 양상들을 복합적으로 겹쳐서 구성했다는 , 여성이  속에서 성취해야  일들이 그저 연령에 맞추어져서 사회로부터 강요되기 십상이라는 점은, 언제나 사회적 시계(social clock) 여전히 여성들에게 강력한 효과를 갖고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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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2. 여성들의 자기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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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억압적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들은 자기방어  자기정당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보부아르는 이런 방법들  대표적인 것으로 나르시시즘, 사랑, 그리고 종교적 신비에 대한 탐닉을 들고 있습니다. 먼저 나르시시즘의 경우,  역시 여성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 선택의 결과라고 보아야 하지만, 그러나 자기타자화의 하나일 뿐임은 유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일견 자기 자신을 주체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이지만, 실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물체로서 욕망하는 것입니다. 남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으나, 여성은 물체로서의 자신의 신체를 우상화합니다. 다음으로 사랑의 경우, 남성에게 사랑이란 자기창조와 초월의 방편  하나이지만 여성에게는 삶의 전부이자 운명  자체로 간주됩니다. 이는 본질적 특성이 아니라,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이성을 대하기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월하고 강한 존재인 남성에게 예속되고 보호받는 가녀리고 무기력한 존재인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과정이 바로 보부아르가 말하는 사랑의 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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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은  다른 자기비하이고 객체화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은 남성이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상대방 남성을 신성화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함께 정당화합니다. 결국 여성은 사랑받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신비주의는 일명 '천국과의 혼례' 라고   있습니다. 종교활동과 초월적 신비에 대한 투신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구현해   있는 무언가를 탐색하는 것인데, 지상의 남성들  누구도 완벽하지 못하기에 신과의 관계를 통하여 완벽하게 강한 남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속성이 완벽하다는 것은 그만큼  신이 지고한 주체가 됨을 의미하며, 그런 신에게 투신한다는 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자기를 객체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늘  자체가 거울이 되는 것으로 결국  역시 진정한 주체가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보부아르가 판단하기에 여성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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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3. 여성해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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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가 진단하기에, 현대 프랑스에서 여성해방을 위해 투표권의 확대  많은 개선이 있어 왔으나, 경제적 독립이야말로 여성이 주체가 되기 위한 최우선의 조건이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상,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예속적 삶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갈등하게 되는 경험을 피할  없습니다. 교육의 불평등, 남성들의 적의, 사회적 지지의 부족, 스스로의 열등감 등이 여성들의 자기초월을 저해한다는 문제도 존재합니다. 일부 여성 예술가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주체성을 되찾기도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여성들은 객체로서 살아갑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성은 상황의 문제이며, 영원하지 않고, 본질적이지 않음을 힘주어 말합니다. 그녀는 남성의 억압과 여성의 예속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과도기적 현상이며, 여성에게는 반드시  밝은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고 낙관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선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저항에 대비하고, 여성들이 예속을 통해 얻는 달콤한 보상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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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의성의 세간의 반응 – Public Reaction of The Second 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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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많은 지식인들과 논객들이 공공연히   '2 ' 비판했으며 저자는 '1 '  속하는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훈계와 충고가 담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저자에게 성적 불만족을 치유하는 것이 당신의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진단' 했습니다. 정작 여성 독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사이다처럼 풀어내면서  이면의 문제를 철학적 근거를 통해 제시하는  책의 논리에 크게 공감했다는 데서 상당히 대조됩니다. 이때 주요 비판론자로는 프랑소와 모리악(Francois Mauriac), 알베르 카뮈 등이 있으며, 심지어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미성년자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책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이미 저자가 대립각을 세운  있듯이, 공산주의자들도 "여성해방은 계급해방에 의해 자연히 따라온다"  주장하며 보부아르를 비난했습니다. 2권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강조된 모성신화 비판론에 대해서는 보부아르 본인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때문에 "아이를 낳아  적이 없는 사람이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것인  떠들지 마라" 등의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각고의 노력으로, 프랑스에서 1975년에 낙태가 합법화되었습니다.  외에도 여성 진영에서는 여성문제에 대해 보부아르가 서술한 문체 자체가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한 태도로 의심될  있다고 지적했고,  제목이 현실개선의 의지보다는 현실긍정의 느낌을 준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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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독자들은  책이 비현실적으로 급진적인 제안을 한다고 주장했으며,  외의 비판으로는 지나치게   사르트르에게 의존하여 논리가 전개되는  같다는 등의 비판도 잇따랐습니다. 반면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같은 소수의 좌파 지식인들은 저자에게 적극 찬동하고 옹호했습니다.  책에 대한 긍정적인 서평은 초기의 반발이 다소 가라앉고  시점에 많아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전보다 침착한 평론은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으로 넘어간  미국의 논객들이 평론한 바가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역수입된 것에 크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는 미국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미국에서  책을 바탕으로 논의한 내용이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프랑스 지식인들도 뒤늦게  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의 래디컬 페미니즘에서는 2의 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래디컬 페미니즘 자체가  이전 세대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시작했고, 보브와르 역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혹은 후기 자유주의 페미니즘 계열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보부아르는 1946 년에서 1949 사이  14개월 동안  2의 성을 조사 하고 집필했습니다. 일부 장은 현대(Les Temps modernes)’잡지에 처음 선 보였습니다. 보부아르의 가장 유명한 책인 제2의 성은 페미니스트 철학의 시작으로 간주되며 2세대 페미니즘의 출발점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책에서 보부아르는 모든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처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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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치곤 사실상 페미니즘의 근원에 해당하는 이 제2의 성을 읽어본 사람이 의외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편이라는게 아이러니 중 하나입니다. 2권을 요약하면, 출생과 함께 시작되는 어린이의 삶을 제시하는 보부아르  소녀의 양육과 3~4세에 작은 남자라는 말을 듣는 소년의 양육을 대조합니다. 소녀는 여성이 되는 법을 배우고 그녀의 여성적인 운명은 사회에 의해 그녀에게 부과됩니다. 그녀는 타고난 모성 본능 없습니다. 소녀는 남자 신을 믿고 숭배하며 상상의 성인 연인을 만들어 냅니다. 섹스의 발견은 젖을 떼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현상이며 그녀는 그것을 혐오스럽게 봅니다. 그녀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자신에 대한 그녀의 의식을 엄청나게 수정합니다.” 월경의 시작, 소녀들이 남자와의 섹스를 상상하는 방식, 그녀는 10 후반의 소녀들이 자신의 "여성성"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가출, 역겨운 것에 대한 매혹, 자연을 따르거나 도둑질이 포함될  있습니다. 보부아르는 남성과의 성적 관계를 설명하면서  번째 경험의 영향이 여성의  생애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보부아르는 여성과 여성의 성적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녀는 동성애는 치명적인 저주보다  이상 고의적 변태가 아니다"라고 썼습니다. 보부아르는 실제적, 사회적, 도덕적 유대로 묶인  배우자에게 평생 동안 서로를 성적으로 만족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순전히 부조리하다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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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집안 청소를 포함한 기혼 여성의 일을 설명하면서 "죽음을 멀리하면서도 삶을 거부한다" 적었습니다. 그녀는 "아내 종의 운명을 만족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녀를 일반적이고 비본질적인 사람에게 전적으로 파멸시키는 분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자신의 가신인 침대 "봉사" 가사 "봉사" 받아들일 때에만 자신의 존엄성을 발견한다고 썼습니다.  여성이 가족과 떨어져 있고 결혼식 다음  "실망" 합니다. 보부아르는 삼인조 관계에 있는 아내와 남편 사이의 다양한 불평등을 지적하고 그들이 사랑이 아니라 "부부 사랑"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결혼이 "거의 항상 여성을 파괴한다"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당신은 거기에 영원히 갇혀 있고 거기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라고  소피아 톨스토이를 인용합니다. 보부아르는 결혼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억압하는 왜곡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보부아르의 관점에서 의사가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낙태는 어머니에게 거의 위험이 없습니다. 그녀는 가톨릭 교회가 다른 교회의 가르침과 모순되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영혼이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낙태 문제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남성적 가학성" 문제라고 썼습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에게 선물이자 저주로 여겨지는 임신에 대해 설명합니다. 새로운 삶의  새로운 창조에서 여성은 자신을 " 이상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수동적인 도구" 생각하면서 자아를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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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모성가학피학증은 자신의 자녀에 대해 끝없이 가학피학증적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할 딸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주의적 자녀 양육 관행에 호소합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 여자 친구, 남자와의 관계를 묘사합니다. 그녀는 "결혼은 여성의 성적인 만족을 좌절시켜 여성의 감정의 자유와 개성을 부정하고 간통으로 몰아간다" 썼습니다. 보부아르는 매춘부와 포주  다른 여성과의 관계,  헤타에라스(hetaeras) 설명합니다. 매춘부와 달리 헤타에라스는 개인으로 인정받을  있으며 성공하면  높은 목표를 달성하고 공개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있습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폐경 경로를 여성의 동성애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있습니다. 보부아르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늙어가기로 동의하면 성인 생활의 절반이 남은  노인이 됩니다. 여성은 자녀, 종종 아들이나 손자를 통해 살기로 선택할  있지만 고독, 후회, 권태 직면합니다. 그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녀는 쓸데없는 "여성의 수공예품", 수채화, 음악 또는 독서에 참여하거나 자선 단체에 가입할  있습니다. 몇몇 드문 여성들이 대의에 헌신하고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보부아르는 "여성 기생충이 가질  있는 최고의 자유는 금욕적인 반항이나 회의적인 아이러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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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만큼 능동적이고 효과적이며 침묵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녀의 상황은 그녀를 유용하게 유지하고 음식,   숙박을 준비합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고, 불평하고, 울고, 자살하겠다고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항의하지만 그녀의 몫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캐서린 맨스필드가 설명한 것처럼 "조화" ""에서 행복을 얻을  있습니다. 보부아르  여성이 우월한지 열등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남성의 상황이 "무한히  낫다" 것은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여성에게는 그녀의 해방을 위해 일하는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썼습니다. 보부아르는 거울과 극장에서 자신을 발견할  있는 나르시시스트 여성과 결혼 안팎의 여성을 체념에서가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묘사합니다. 사랑은 그녀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  것입니다. 보부아르는 여러 여성의 삶에 대해 논의하며 그중 일부는 성흔(stigmata) 개발했습니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비현실적인 : 그녀의 이중성 또는 신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있거나, 그녀는 실제 존재와 비현실적인 관계를 만듭니다."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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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또한 사디즘과 마조히즘에서 벗어날  있는 경력을 가진 여성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소수  여성들이 성공적으로 평등한 상태에 이르렀고, 보부아르는 각주에서 클라라와 로베르트 슈만을 예로 들었습니다. 보부아르는 아내의 목표가 압도적일  있다고 말합니다. 독립을 쟁취할  있는 여배우, 무용수, 가수 뽑았습니다. 작가 중에서 보부아르는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 울프(Woolf) 및 메리 웹(Mary Webb)  선택했습니다. 콜레트(Colette) 맨스필드(Mansfield) "비인간적인 자유" 자연에 접근하려고 노력한 사람들  하나입니다. 그런 다음 보부아르는 여성이 인간 조건에 도전하지 않으며 소수의 위인 비교할  여성은 보통으로 나오고  오랫동안  수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은 빈센트  고흐나 프란츠 카프카가   없었습니다. 보부아르는 아마도 모든 여성 중에서 세인트 테레사(Saint Teresa)만이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여성이 자기 자신의 기회를 잡을  있도록 남겨진” “적절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결론에서 보부아르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미래,  소련 혁명이 약속했지만 실현하지 못한 미래를 기대합니다. 그녀는  최고의 승리를 수행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타고난 차이를 넘어 그들의 형제애를 명백히 확인해야 한다 결론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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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성의  번째 프랑스 간행물은 일주일에  22,000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이후 40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바티칸   책을 금지 도서 목록  올렸습니다. 섹스 연구자 알프레드 킨제이(Alfred Kinsey) 2의성이 흥미로운 문학 작품이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중요한 원본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1960 년에 보부아르는 2의성이 "여성의 상황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녀가 세상의 기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유"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썼습니다. 2의성의 정신 분석에 대한 공격은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 1963),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t) 성적 정치(Sexual Politics, 1969), 저메인 그리어(Germaine Greer) 여성 내시(The Female Eunuch, 1970) 포함하여 정신 분석에 대한 후속 페미니스트 주장을 고무시키는  도움이되었습니다. 밀레트(Millett) 1989년에 그녀가 성적 정치(Sexual Politics) 썼을  보부아르에게 어느 정도 빚을 졌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된다 보부아르의 공식이 섹스 젠더라는 용어를 구별한다고 썼습니다. 보드(Borde) 말로바니 슈발리에(Malovany-Chevallier) 완전한 영어 버전에서  공식을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된다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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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개인이나 집단의  사람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하나의 구성물이나 아이디어로서의 여성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버틀러는  책이 젠더 점진적으로 획득되는 정체성의  측면임을 시사한다고 썼습니다. 버틀러(Butler) 2의성이 잠재적으로 젠더에 대한 급진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기 작가 디어드리 베어(Deirdre Bair) 1989 그녀의 "빈티지 에디션 소개(Introduction to the Vintage Edition)"에서 "가장 지속적인 비판  하나" 보부아르가 "무의식적인 여성혐오에 대한 유죄"이며, 그녀가 여성에 대해 글을 쓰는 동안 여성과 분리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어(Bair) 프랑스 작가 프랜시스 장손(Francis Jeanson) 영국 시인 스티비 스미스(Stevie Smith) 비슷한 비판을 했다고 썼습니다. ‘여자니까라는 베어(Bair) 또한 보부아르가 여성을 자신의 색으로 그린 ​​라는 영국 학자 CB 래드포드(Radford) 견해를 인용합니다. 주로 중산층 문서로, 자전적 영향으로 왜곡되어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가 여성성에 대한 논의에서 과장된 중요성을 가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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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학자 데이비드 M. 할페린(David M. Halperin) 보부아르가 2의성에서 여성 간의 성적 관계에 대한 이상화된 설명을 제공하며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특징짓는 에로틱한 반응의 상호성을 특히 명확하게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비평가 카밀 파글리아(Camille Paglia) 2의성을 "훌륭하고" "현대 페미니즘의 최고 작품"이라고 칭찬했습니다 . 파글리아는 대부분의 현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작업이 보부아르의 주장을 단순히 반복하거나 제한한 정도를 깨닫지 못한다고 썼습니다. 자유 여성, 자유 남성(2017) 파글리아는 16  보부아르의 오만 하고 권위 있는 어조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야심  휩쓸기에 놀랐다 썼습니다. 2의성의 스페인어 번역본이 아르헨티나에서 인쇄되었지만 1955 프랑코치하의 스페인에서 금서가 되었습니다. 2의성의 전체 스페인어 번역본은 1998년에서야 출판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바티칸에 기반을  지도부는 2의성을 비난하고 금지 도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  책을 추가했습니다.  책은 금지 정책 자체가 1966년에 폐지될 때까지 금지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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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의성의 문화적 영향 – Cultural Influence of The Second 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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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2의성에서 영감을 받은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 의해 미국에서  번째 물결 페미니즘의 부상  유럽 여성의 삶에 도달하고 영향을 미치는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2의성이 1949년에 출판되었고 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 출판 되었지만1963년에 출판된 프랑스인들은 가족 문제를 포함하도록 평등을 확대하는 것이 프랑스 도덕에 해롭다고 우려했습니다. 1966 유럽에서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었고 피임법은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합법화가 "남성에게서 '자신의 정력에 대한 자랑스러운 의식' 빼앗고 여성을 '살아난 풍만함의 대상에 지나지 않게' 만들 " 두려워했습니다. 1967 프랑스 의회는 피임을 합법화하기로 결정했지만 엄격한 자격 조건 하에서만 가능했습니다. 사회적 페미니스트들은  나아가 여성은 "심리학  생리학에서 남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주장했으며 단순히 평등보다는 성별 차이를 강조하면서 여성이 집에 머물면서 가족을 부양할  있는 선택권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원할 경우, 천주교가 주창하는 재정 수당 발행에 의해, 또는 노동력에 들어가고 국가 기금 어린이집 시설  육아 휴직과 같은 정부 의무 프로그램을 통해 육아 지원을 받을  있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맥락은 "남자의 척도에 맞춘 사회는 여자에게 불리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해친다"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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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공 프로그램 추진의 결과로 유럽 여성들은 정치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미국보다 6~7  많은 입법부 의석을 확보하여 여성과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 과정에 영향을 미칠  있게 되었습니다. 보부아르의 2 성은 페미니즘 역사의 기초가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보부아르는 페미니스트임을 여러  부인했지만 결국 페미니즘 세계에서 2 성이 중요해진 이후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인정했습니다.  작업은 미국, 캐나다, 호주   세계 에서  번째 물결 페미니즘의 길을 열어 심오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보부아르는 "나를 가두어 일종의 페미니스트 콘크리트 블록에 완전히 고정시킬 것이기 때문에 약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불합리한 요구가 있습니다."라고 인용했습니다. 페미니즘에 관한 그녀의 작업은 미래의 모든 페미니스트를 위한 길을 닦았습니다.  번째 물결의 창시자들은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줄리엣 미첼,  오클리, 저메인 그리어를 포함하여 2 성을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프랑스에서 그녀를 방문하고, 중요한 순간에 그녀와 상담하고, 그녀에게 작품을 바치는  보부아르에게 깊은 빚을 졌다고 모두가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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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63 저서 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 종종 미국에서 2물결 페미니즘의 서막을 여는 것으로 간주되며, 나중에1950년대 초에 2 성을 읽음으로써 "내가 기여할  있었던 여성의 존재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으로 나를 이끌었다"고 여성 운동과  독특한 정치에 대해 나는 철학적이고 지적인 권위를 위해 시몬  보부아르를 찾았다."고 발켰습니다. 70년대  어느 시점에 보부아르는 프랑스 사회에서 성차별주의에 맞서 싸우고 캠페인을 벌이는 수단으로 프랑스 여성권리연맹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보부아르의 영향력은 2 물결 창시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넘어 문학 비평, 역사, 철학, 신학, 과학적 담론에 대한 비판, 심리 치료를 포함한 페미니즘의 여러 측면으로 확장 됩니다. 보부아르가 처음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을  그녀의 목표  하나는 낙태 합법화였습니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중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젠더의 모든 현대 페미니스트적 의미는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하나가 된다'라는 시몬  보부아르의 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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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 문장"  모니크 위티(Monique Wittig) 1981 에세이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One Is Not Born a Woman)’ 제목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개념을  단계  발전시켜 보부아르의 be 동사 선택, She He를 사용하는게 아닌 The를 사용하는 젠더 변화가 되는 하나의 과정이며 주변 문화와 개인 선택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에서 지속적으로 갱신된다는 것을시사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파리의   사르트르에 시몬  보부아르 광장(Place Jean-Paul-Sartre-et-Simone-de-Beauvoir) 보부아르의 유산이 살아있는 광장입니다. 공식적으로 부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리의   되는 광장  하나입니다.  부부은 서로 각각 42  보나파르트(42 rue Bonaparte) 광장 근처에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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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성(The Second Sex)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2의성(The Second Sex)’에서 인류에게 페미니즘의 서막과 인간의 절반인 여성을 인간의 반열에 올려놓아 명실상부 남녀평등 세상의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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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44번째  인문학 부문 14번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49년에 출간한 2의성(The Second Sex)” 마칩니다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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