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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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교 공로목사 장희진

1990년에 발간된 한신대학 50년사 106 페이지 제3편 수유리 캠퍼스 시절의 신장(1958-1980)에 "1957년 2월의 이회 실행위원회는 본관 건물의 설계와 시공책임자로서 본교 제1회 졸업생인 장희진 목사를 임명하였다."고 나옵니다. 한국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한국기독교장로교의 요람 한국신학대학의 본관신축을 서울 조선신학교 (한신대) 1회 졸업생인 장희진 목사님이 총책임을 맡아 캐나다 장로교단의 지원을 받아 건축했습니다..장희진 목사님은 1904년 7월 18일 함경북도 부령군 형제리에서 아버지 장윤식 선생과 어머니 이임칠 여사 사이에서 9남매중 다섯째로 출생하셨습니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만주 용정중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한 후 동생과 함께 만주를 오가며 무역업을 하였으나 적성에..

1980년 5월 26일 광주학살 항의전보와 1981년 1월 28일 전두환 방미반대시위

https://omn.kr/24mwv 1981년 전두환 방미 당시 LA에서 일어난 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민주인사 장주암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 www.ohmynews.com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장주암 선생님의 첫 번째 이야기 . 올초 버섯에 관심있는 미국 하이킹 모임에 참석했다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거주하시는 한국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중 한분이 장주암 (1948년~) 선생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공로목사였던 고 장희진 (1904년~2010년) 목사님의 자제분으로 형님 장소암 (1945년~) 선생님과 더불어 북미주지역 민주화인사로 한국의 군사독재시절 한국의 민주세력을 물심양면 도와주셨던 분입니다. 기회되면 살아오신 여정을 인터뷰해보겠다고 부탁도 드렸습니다. . .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단독발굴] 1981년 1월 28일 교육자출신 LA 민주화인사 시사평론가 은호기 선생님의 전두환 암살 미수 사건의 전모

https://youtu.be/ZM19bGHE590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장주암 선생님의 두 번째 이야기 .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장주암 선생님의 두번째 이야기는 장주암 선생님이 친형 장소암 선생님과 함께 1981년 1월 28일 LA를 방문하여 한인타운 올림픽 블러바드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전두환의 차를 헌트에서 견고한 유리가 금이갈 정도로 몽둥이로 내리쳐 카퍼레이드를 하던 전두환이 카퍼레이드를 중단하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했던 이야기입니다. . 1981년 1월 새해 들어 LA총영사관의 박민수 총영사를 포함 전공관원들은 무척이나 바빴습니다. 당시 서슬이 시퍼런 신군부의 수장 전두환이 2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방미의 첫 기착지가 LA였기에 ‘대통령 초청 교민 간담회’ 등등의 준..

172. Reinhardt Redwood Regional Park, Huckleberry, Sibley Volcanic Regional Preserve, Okland, CA

https://youtu.be/y7_-3Fn1pdk Dr. Aurelia Reinhardt Redwood Regional Park (formerly known as Redwood Regional Park) is a part of the East Bay Regional Parks District (EBRPD) in the San Francisco Bay Area. It is located in the hills east of Oakland. The park contains the largest remaining natural stand of coast redwood (Sequoia sempervirens) found in the East Bay. The park is part of a historical ..

광주 시민 학살을 중단하고 군사 독재자가 아닌 한국을 지원하십시오. (STOP KILLING KWANGJU CITIZENS, SUPPORT KOREA NOT MILITARY DICTATOR.)

https://youtu.be/ZM19bGHE590 장주암과 지미 카터 .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장주암 선생님의 첫 번째 이야기 . 올초 버섯에 관심있는 하이킹 모임에 참석했다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거주하시는 한국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중 한분이 장주암 선생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공로목사였던 고 장희진 목사님의 자제분으로 형님 장소암 선생님과 더불어 북미주지역 민주화인사로 한국의 군사독재시절 한국의 민주세력을 물심양면 도와주셨던 분입니다. 기회되면 살아오신 여정을 인터뷰해보겠다고 부탁도 드렸습니다.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장주암 선생님의 첫 이야기는 1980년 5월 26일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에게 군부독재자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멈추게하고 지원을 중단하라는 전보를 보낸 이야기입니다. 그 전..

후암동 관북학사 신우학사, 캐나다 선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교

1950년 후암동 언덕에 캐나다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관북학사 초대사감을 한신대 3회 졸업생 난곡 조향록 (1920~2010) 목사가 맡아서 했었다. 김형숙 (1893~1961) 목사는 일제말기 함흥에서 캐나다 선교사들을 도와서 협력하셨던 분이고 또 일제말기 캐나다 선교사가 한국에서 일본인들에게 추방되어 간 이후 그 선교부의 모든 재산과 선교사들의 가재도구까지 책임져서 보관하고 지켜 주었던 분이다. 8·15해방이 된 이후 캐나다 선교사들이 북한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김목사도 고당 조만식 (1883~1950) 선생이 이끄셨던 조선민주당 함경남도 도당위원장까지 맡아 반공투쟁을 하다가 결국 남하하고 만 것이다. 서울에서 옛 친구들인 캐나다 선교사들을 맞아 이북에서 남하한 학생들을 도와주려고 캐나다 선교부의..

04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 The Savage Mind by Claude Lévi-Strauss 1962

https://youtu.be/Do2cer2b-Tg . 야생의 사고는 '슬픈 열대'와 더불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대표작입니다. '야생의 사고'는 구조주의자로서의 레비스트로스의 문명론과 사회사상에 담긴 독창성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그는 ‘문명의 사고’와 ‘미개의 사고’의 이분법을 거부했습니다. 미개의 사고는 문명의 사고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은 야생의 사고입니다. 이 야생의 사고는 일관된 질서가 존재하는 ‘구체의 과학’이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류학자들이 즐겨 다루는 토테미즘은 신화적 사고로서의 야생의 사고가 갖는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토테미즘에는 사물들의 분류체계와 위계질서의 기초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토테미즘은 미개인의 종교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사유의 보편적 특성을 보여준..

카테고리 없음 2023.06.22

보빙사절의 보스톤· 뉴욕 시찰과 미 조야의 환영

제2장 보빙사의 미동부 시찰· 환대와 서구문명 수용의 두 유형 제2장 보빙사의 미동부 시찰· 환대와 서구문명 수용의 두 유형 1) 보빙사절의 보스톤· 뉴욕 시찰과 미 조야의 환영 국서 제정식이 끝난 후 사절일행은 뉴욕시와 센트럴 파크의 관광을 하고, 해군장관 체들러의 특별배려로 폴 리버 선 (Fall Rive Line) 기선회사의 브리스톨 (Bristol)호를 타고 오후 보스톤으로 떠났다. 이들의 보스턴 방문은 미국문화의 발상지와 미국산업의 시찰이 주목적이었다. 사절은 메이슨과 포크의 안내로 밤새도록 대서양 연안을 항행하여 9월 19일 새벽에 보스턴에 도착했다. 외구박람협의회의 사무총장 노튼(C.B. Norton) 장군과 벤담 호텔 주인 월코트 (J.W. Wolcott) 의 영접을 받았다. (Boston..

상항한국인교회 중심 국민회운동 주도한 이대위

3) 상항한국인교회를 중심으로 민족목회와 국민회운동을 주도한 이대위 1903년 하와이 노동이민이 아닌 선교와 유학으로 도미하여 건전한 기독교 신앙과 민족정신으로 목회를 하며 반일구국운동을 전개한 삼총사와도 같은 세 젊은이가 윤병구, 신흥우와 이대위다. 이들은 1903년 다 각기 하와이와 대륙에 도착하던 초기부터 교회와 한인의 애국단체를 형성하며 ‘민족목회’라 부를만큼 민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특히 이대위는 흔히 재미사회에서 4명의 지도자로 내세우는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박용만 등에 못지 않게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연합감리교회와 대한인국민회 등을 통해 눈부신 활약을 하였기에 저자는 ‘미국속의 한국인’에서 이대위 목사와 그의 국민회에서의 활약을 극구 칭송한 최봉윤 교수와 함께 이대위를 제..

LA교회서 목회중심 민족운동 전개한 신흥우

L.A. 교회의 신흥우와 하와이 교회 민찬호의 목회를 중심한 민족운동 1898년 한국에서 의료선교를 하다 지병으로 일찍 사망한 셔만 (Dr. Harry Sherman)의 아내 프로렌스 셔만 (Florence Sherman)이 “한국에서 총명한 기독청년으로 한국의 희망’이라 일컬을 만한 출중한 인물을 눈여겨 보고, 그녀가 LA 최초감리교회의 전신인 ‘한국선교회’(Korea Mission)에서 활동하며 그를 미 대륙으로 초청한 젊은이가 바로 1903년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유학하여 온 신흥우다. 그는 17세던 1899년에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1년 독일어학교 재학시 학생회장으로서 개화사상과 독립의식을 고취하다가 투옥되고, 옥중에서 이승만, 성낙준, 양의종 등과 옥중학교를 개설하여 옥중의 재소..

초기 유학생들의 목회와 이승만 이대위

1905년 8월 일본 저지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난 윤병구와 이승만 이민 초기 유학생들의 목회와 이승만 이대위 하와이에 1903년 1월 정규 노동이민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던 이민시기에 정규 이민이 아닌 망명이나 유학 등의 목적으로 들어오는 동포들이 상당했다. 이민 초기 선교와 유학을 목적으로 1903년 윤병구, 신흥우, 이대위 등이 도미하고 1904년에는 이승만, 1905년엔 박용만, 민찬호, 정한경, 유일한, 그 외에도 신성구, 백일규, 이원익, 강영승. 강영대, 차의석, 송헌주. 임정구, 양주삼 등과 그 밖의 40명 정도나 되며 이들의 대학졸업율도 75%나 됐다. 이들 대부분은 한일합방으로 귀국하지 못하여 미국에 거주하며 활동했다. (김원용, 재미한인 50년사 .p.36) 이들 중 상당수가 초기 ..

2008년 9월 2일, 125주년 재미한인의 날<재미한인이민사> 1883년, 고종이 보낸 보빙사절단 미국 도착일

재미한인이 기억할 두 날이 있다. 1902년 1월 13일 한인들이 노동 이민자로 미국의 하와이 섬에 처음 도착한 날이다. 게릭호를 타고 입항, 검역을 마치고 하와이 땅을 밟은 첫 한인들은 93명이었다. 이후 일본의 강압으로 숙원의 이민이 막혀버린 1905년까지 3년여에 걸쳐 입국한 한인 수는 65차의 선편으로 들어온 6.965명 이었다. 이들은 하와이의 여러 농장으로 나뉘어 뜨거운 뙤약 볕에서 고달픈 농장 노동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응당 기억할 이 날 재미동포들은 2003년 1월 13일을 전후하여 이민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했고 미국 정부도 합께 축하해 주었다. 당연하고 경하할 일이었다. 또 하나는 1883년 9월 2일 한미수호조약과 미국의 푸트 주한미국전권공사를 한국에 파송한 답례로서, 고종이 민..

<제6장> 1886년 이후 재미한인의 잡다한 양상

이민 전기 1883년부터의 재미한인들 1) 도주망명 변수일행의 기구한 신세 1861년 역관과 의관의 중인 가문 변진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변수는 부친의 친구 시인이며 개화사상가인 강위에게 수학하며 김옥균과 교분을 맺는다. 한국은 1876년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고 미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일본의 국정을 살피며 차관도 얻으려 1881년 12월 김옥균을 파견하며 서광범 강위와 함께 변수도 대표단에 참여했다. 변수는 일본의 발전에 놀라며 특히 농업문제에 관심이 많아 실업학교에 입학 양잠술과 화학 등의 공부에 몰두했다.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의 여러 공장 시설을 시찰하며 뉴저지 뉴왁에 있는 죤커터쓰 John D. Cutters 견직공장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이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에, 뉴욕타임스 11/1..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2〉중인들이 쓰는 갓 쓰고 차관 임명장 받은 윤치호

월간조선 11 2015 MAGAZINE 글 : 윤경남 譯述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2〉 중인들이 쓰는 갓 쓰고 차관 임명장 받은 윤치호 尹慶男 ⊙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캐나다 토론토 거주. ⊙ 저서: 《부부의 십계명》 《노년학을 배웁시다》 《유니스의 지구촌 여행》 《성지의 향기(The Fragrance of the Holy Land)》 《고독》 《꿈꾸는 어른》(역서)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역서)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역술서) 《윤치호 일기 제4권에 나타난 역사의 흐름》(역술서). ⊙ 現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한국번역가협회 회원,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회 이사. 1부 (1895~1896년)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1895년 3월에 일어난 일들 ● 윤치호는 부모님..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1〉“썩어빠진 조선사회에 넌더리가 난다”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1〉 월간조선 0 2015 MAGAZINE 글 : 윤경남 譯述 [편집자 주]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애국가 작사자로 알려진 윤치호(尹致昊) 선생 서거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에 맞춰 학계에서도 윤치호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윤치호가 일기로 기록한 1883~1943년의 시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기였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李泰鎭) 서울대 명예교수는, 윤치호 일기가 60년간 쓰였다는 점에서 예를 찾기 어려운 것일 뿐만 아니라 각 시기마다 국가적, 사회적 현안에 대한 소견이 실려 있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했습니다. 《월간조선》은 윤치호 영문 일기의 사료적 가치에 주목, 그의 친일 시비와는 별개라는 인식하에 그의 일기를 국..

윤치호 영문일기 2편 에모리대학 소장본 H

YUN, CH‘I-HO, 1865-1945. Yun Ch‘i-ho papers, 1883-1943 Emory University Stuart A. Rose Manuscript, Archives, and Rare Book Library Atlanta, GA 30322 404-727-6887 rose.library@emory.edu Digital Material Available in this Collection Descriptive Summary Creator: Yun, Ch‘i-ho, 1865-1945. Title: Yun Ch‘i-ho papers, 1883-1943 Call Number: Manuscript Collection No. 754 Extent: 10.75 linear ft. (21 bo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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