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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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이명직 13

[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

어제 컴퓨터를 켜니 "노작 홍사용 문학 기념사업회 이사장 홍일선입니다."라는 이메일이 한 통 도착해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올렸던 '노작 홍사용과 성우 이명직 어른'에 대한 게시글을 보고 '농부 시인 홍일선(洪一善)' 선생님이 보내오신 이메일입니다. 외롭게 조상의 흔적을 찾아 정리한 보람이라고 생각하니 바쁜 일과였지만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 인터넷 서치를 해보니 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은 1950년 경기도 화성 동탄면 석우리 돌모루에서 태어나 1980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쑥꽃」 외 5편으로 등단한 중견 작가입니다. 홍일선 시인의 아버님이 노작 홍사용 선생님의 6촌 형제이니 홍일선 시인은 노작 홍사용 선생님의 7촌 조카로 민법상 8촌 이내에 해당하니 일가친척입니다. . 오래전 한국을..

02. 성우 이명직 대감이 이성구 선생의 조부였으며 방원 이성찬 선생의 증조부였는지 모른체 다들 작고하셨습니다.

https://youtu.be/YtVKffR2v0Q 언제나 패권쟁취에 골몰한 백범 김구의 임시정부나 김사국의 서울파나 화요파나 엠엘파나 김재봉 박헌영의 일츠크파에 '지는 것'을 택했던 상해파 호남아(好男兒)들 - 앞줄 좌로부터 읍민(揖民) 현정건(玄鼎健, 1887년 6월 29일~1932년 12월 30일, 소설가 현진건의 형) 선생, 고려공산당대표 겸 임시정부 국무총리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1935년 1월 31일) 선생, 레닌의 혁명동지이자 외교주역 박진순(朴鎭淳, 1898~1938) 선생, 자금담당 중앙위원 일세(一洗) 김립(金立, 본명 金翼容, 가명 楊春山 1880년~1922년 2월 6일) 선생, 뒷줄 좌 고려공산당 자금당당 중앙위원 지운(遲耘) 김철수(金綴洙, ..

[코민테른 유학장학생, 이극로, 나용균, 장덕수 ... ]

지운 선생은 맹자의 ⼀樂也, ⼆樂也를 건너뛰고 '得天下英才⽽敎育之, 三樂也'를 ⼀樂也라 쓰신 이유는 영재를 교육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거다. 지운 선생은 서당의 서택환 훈장이 보여준 성우 이명직 대감이 돌린 '조선 천지에 똑똑한 젊은이는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구라파로 로시야로 하다못해 일본으로라도 유학을 가서 신식문물을 배워 미래를 대비하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일본으로 유학을 나왔다. 그리고 1915년 성우 이명직 대감이 동탄 자택에서 일제에 독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독립투쟁의 길에 떨쳐나섰다. 1921년 코민테른 군자금을 받아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조선의 영재들을 미국으로 구라파로 유학을 보내는 일이었다. . 더구나 이동휘 선생이 레닌과 독대할 때 조선의 철도와 철도망을 물어볼 때 꿀 먹은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176~200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서화가 처음에는 대충 천몇백점인줄 알았는데 그 몇배는 되는것 같다. 화선지가 압축되었다가 풀어 펼치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 모금을 해야 할 판이다. 아무튼. . 근대사의 인물들 - 1916년 일본와세다대학 유학인사들 . 앞줄 중앙 지운 김철수 선생은 나의 고조부 이명직 선생의 '망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유학을 나가라!'는 사발통문에 감화되어 한학을 접고 일본유학을 결행한다. 나의 고조부 이명직 선생이 친일파에 암살당한 1915년, 그소식을 듣고 지운 김철수 선생은 귀곡단을 조직하고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선다. 아래의 사진은 내 부모님의 중매를 했던 인연으로 내가 지운 김철수 선생을 친할아버지 이상으로 접했던 연고로 보관하게 되었다. . 맨 뒤줄 좌에서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51~75

같은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뒤집는 ‘우의 삼각형(U’s Triangle)’을 1935년에 발표해 ‘종의 합성’의 시작을 알린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는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한국농업에 큰 기여를 했다. 민비(명성황후 추증) 살해를 돕고 일본으로 도망간 역적 우범선의 아들이 자신의 부친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국말도 모르면서 죽을때까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장춘을 조국에 헌신하도록 의식화시킨 사람이 바로 조선운동권의 시조 지운 김철수 선생임을 알리며 그분의 서화작품 25점을 연이어 소개한다. .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을 중심으로] . 부안이 배출한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은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돌린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선진국 유학이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1..

[단독 발굴]서찰을 통해 본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 독립지사

1916년 일본에서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과 1920년 조선에서 사회혁명당을 만들었고 1921년 성재 이동휘 선생과 함께 상해 고려공산당 창당의 주역이며 1926년 6월 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3000명 이상의 조직원이 일경에 체포되어 조선공산당이 해체된후 2차 후반기 조선공산당과 1926년 9월 3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1927년 스탈린을 독대하여 코민테른에 조선공산당을 추인받고 특별혁명군자금을 수령했던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遲耘) 김철수(金錣洙) 선생, 그는 무슨 이유로 북조선의 건국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한의 시골에 칩거하며 여생을 마처야 했을까요? 2018년 4월 한국에서 허겁지겁 급작스레 작고하신 내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의 상을 치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10월에 휴가를..

애국지사 이철규, 그는 누구인가? / 사람과사회™ 2018 겨울 2019 봄

사람과사회™2018 겨울 2019 봄제2권 제3호 통권 제8·9호2635-876X 84People & Column기고애국지사 이철규, 그는 누구인가?이상원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검사관수자원에너지 전문가이자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검사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상원 박사가 증조부인 애국지사 이철..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화백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영원한 우정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을 중심으로] . 부안이 배출한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은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돌린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선진국 유학이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1912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실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일제에 독살되던 1915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 . 1915년에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울자며 ‘귀곡단’과 ‘열지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1916년에는 한국 대만 중국 유학생을 모아 ‘신아동맹단’을 결성하여 독립지사의 길에 들어섰다. 지운 김철수 선생님은 해방되어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14년을 옥살이했다. (2) . 초기 조선공산당 3차 전당대회 전반기 책임비서로 러시아의 코민테른에 참가하여 거액의 군자금을 받아..

[1956년부터 1986년까지 지운 김철수 선생과 방원 이성찬 선생이 주고받은 서찰을 통해 본 근대사]

위키백과에 의하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3월 16일) 선생은 조선공산당 3차 집행부 책임비서로 전북 부안 백산에서 태어난 뒤 1912년 젊은이들의 유학을 독려하는 독립지사 성우 이명직 대감이 돌린 사발통문을 보고 감화되어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유학하였고 19..

'눈물의 왕'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과 노작의 외숙부 성우(性祐) 이명직(李命稙) 선생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에서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고 ‘토월회’와 신극 운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가며 사그라져 가는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던 민족시인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은 1900년 5월 17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였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홍철유(洪哲裕)이며,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홍사용은 생후 100일 만에 서울 ..

4대(고조-증조-조-부모)봉사 - 지방쓰는 방법과 제사 지내는 방법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제사나 차례, 하지만 지금은 목숨 바쳐 지금의 대한민국과 나를 있도록 한 조상 할아버지들의 처절한 삶이 고개가 숙어지고 제사와 차례에 정성을 다하여야 후손된 도리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잘난 체 하지 말고 서로서로 상의하면서 지방 하나라도 제대로 쓸 수..

고종황제 죽음의 비밀과 나의 증조부 이철규(李喆珪)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19代孫(호장공26世, 호장공25代孫, 목은20세)

https://youtu.be/MtDKyGOmdOg [나의 증조부 이철규 (李喆珪)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목은 牧隱19代孫(호장공26世, 호장공25代孫, 목은20세) ] 대한제국(大韓帝國)과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까지 농공상부 금광국(農商工部 金鑛局)에 근무하던 이철규 기수(李喆珪 技手)는 1887년 11월 22일 수원군 동탄면 돌머루(석우리)에서 성우 이명직(性祐 李命稙) 선생과 전주 최씨(全州 崔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철규 기수는 대한제국 시절에는 농공상부 금광국 기수로서 해외 열강의 조선 잠식이 시작되던 그 혼란기에 조선의 금광 등을 관리 하는 중책을 맡고 노심초사했고 경술국치 이후에는 국권 회복을 위해 동료들과 결사하였습니다. 1919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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