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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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 허백련 15

[8/11 - 지운 선생과 의재 허백련 화백과의 우정]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8/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8번째 작품 [지운 선생과 의재 허백련 화백과의 우정]이다. 양금섭 교수님께서 "서예로 박사학위를 가진 전주의 臨池堂 이은혁 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해설을 해주셨다. 두 분께 감사드리며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하자. . 朝陽通穴來 白矢射中壁 出入風千里 浮游塵萬石 . 百世誰曾看 億金吾不易 但恨此豪觀 與君未共席 . 아침 볕이 구멍 통해 들어 흰 화살 벽 가운데로 쏘도다. 바람은 천 리에 드나들고 떠도는 먼지는 일만 섬쯤. . 인간사에서 누가 일찍이 보았을까? 내, 억만금과 바꾸지 않는 것을. 다만 ..

[5/11 -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인연]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5/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5번째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인연]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大雨初收 萬壑淸 奇花晩發 四隣明 羨子光山 今日在 稱來無等 不虛名 . 큰비 처음 그치니 만 골짜기 말끔하고 기이한 꽃 늦게 피니 사방이 훤하네. 그대의 광주에 오늘이 있게 된 것 부러우니 전해오던 무등산 허명이 아니었네. *無等 : 견줄 바 없음 . 右甲寅秋 往訪無等山春雪軒 關以博士學位受否問題議論紛紛然 許百鍊博士學位狀已O? 全南大學事勢難處 故余亦力勸受而祝賀之 芝雲 ..

[金盤露積珠襦重 玉佩風生翠帶長]

난 아바지 사랑 받는 자식이 아닌 줄 알았다. 교육감상을 받고 졸업한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내 아바지는 없었다. 대신 설대 의대를 합격한 내 큰 엉아가 참석해서 내 졸업식은 내 졸업 축하가 아니라 내 큰 엉아 설대 의대 합격 축하식을 방불케 했다. .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석사 졸업식때는 내 부친은 커녕 집안 식구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에서 녹화사업 받다 무릎연골이 작살이 나서 통합병원에 장장 6개월을 입원했어도 집안 식구 아무도 면회 한번 없었다. . 작은 엉아는 한술 더 떠서 남들 다 하는 군생활 꾀병부려 병원에서 편하게 군대생활 한다고 소문을 낼 정도로 사랑받지 않는 군 식구였다. . 그런데 그런 아바지가 딱 한번 졸업식에 참석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박사학위 졸업식때다. . 부친 방..

구당(九堂) 이범재(李範載, 1910~1993) 선생 작품

생전 부친 방원 선생과의 친분으로 보아 구당 선생의 작품이 제법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부친의 유품 보따리에서 얼마나 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훌터본바로는 지운 선생 서화가 대부분일듯 하다. 부친이 소장하셨던 작품이 액자나 족자 하다못해 부를 해두셨기에 구당선생의 작품은 나의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잘 챙겨 두었을 것이라 믿어본다. . 구당 선생은 1910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광주로 올라와 살면서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선생으로부터 묵화를 사사 받았다. 1938년 연진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고, 1945년 해방이 되자 인민위원회 보성읍위원장에 그리고 4.19혁명 뒤엔 보성읍장에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자 읍장을 그만두..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51~75

같은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뒤집는 ‘우의 삼각형(U’s Triangle)’을 1935년에 발표해 ‘종의 합성’의 시작을 알린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는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한국농업에 큰 기여를 했다. 민비(명성황후 추증) 살해를 돕고 일본으로 도망간 역적 우범선의 아들이 자신의 부친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국말도 모르면서 죽을때까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장춘을 조국에 헌신하도록 의식화시킨 사람이 바로 조선운동권의 시조 지운 김철수 선생임을 알리며 그분의 서화작품 25점을 연이어 소개한다. .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을 중심으로] . 부안이 배출한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은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돌린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선진국 유학이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1..

계산(谿山) 장찬홍(張賛洪, 1944~) 선생 작품

방원 선생 유품보따리엔 계산(谿山) 장찬홍(張賛洪) 선생 작품도 눈에 띈다. 계산 선생은 1944년 장흥에서 출생하여 1963년 20세 약관의 나이로 붓을 들기 시작해 이듬해 호남 남화의 거목 의재 허백련 선생 문하에 들어 의재 선생이 1977년 작고 할때까지 평생을 오로지 의재 선생 곁에서 무등산방을 지킨 의리의 사나이 돌쇠다. . 주로 무등산을 비롯한 억불산, 월출산, 한라산 등이 주가 된 산수와 봄꽃 만발한 시절에 맞춰 화사한 봄풍경들, 새봄의 물이 오른 연한 가지들을 늘어뜨린 수양버들과 제비 한쌍, 한가로운 날의 여유를 만끽하는 고양이, 수련과 목련, 엉겅퀴 등 주변의 화훼 소재들까지 다양한 화제들을 보여준다. . 무등산 자락 아래 청계재(淸溪齋)와 소요당(逍遙堂)에서 평생을 지내온 처사 같은 화..

옥전(沃田) 강지주(姜智周, 1936 ~)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 속에 합죽선과 부채를 보니 한국화가로는 산수화에 능한 옥산 옥전 주봉 그리고 묵화의 대가 구당 상산 선생의 그림들이 보인다. . 이어 생전에 부친이 인사동에서 매일이다시피 어울리셨던 옥전 강지주 선생의 작품을 소개한다. . 옥전 강지주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과 옥산 김옥진 선생에게서 사사하였다. 서라벌예대 동양화과와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내가 유학오기전 종로에 직장이 있었는데 옥전 선생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홍길동처럼 나타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정적이고 정열적인 분으로 기억한다. . +++

옥산(沃山) 김옥진(金玉振, 1927 ~ 2017)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옥산 김옥진 선생의 작품도 있다. 액자나 족자로 보관되어 있던것들은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챙겨가고 남은 것들이다. . 내가 박사학위를 받았을때 오랜 친구분인 옥산 김옥진 화백에게 받아 놓으셨던 축하 水仙花(수선화) 부가 있다. 재작년에 내 누나가 액자 족자를 행기다가 찾았다고 알려주었던 그 그림이다. . 金盤露積珠襦重(금반로적주유중) 금반에 이슬이 쌓이니 구슬져 고리가 무겁고 . 玉佩風生翠帶長(옥패풍생취대장) 옥매에 바람이 생기니 푸른 띄가 길도다 . 아마도 날 주려고 받아두셨다가 깜박하고 잊어버리셨거나, 그 사이에 부친에게 치매가 찾아왔나 보다. 이제 학위 받은지도 많은 세월이 흘러 가물거리는데 내 아바지 방원 선생이 미국까지 와서 많이 기뻐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

석란(石蘭) 장금순(張金順, 1933~) 선생 작품

방원 선생 유품인 서화보따리 속에 또 눈에 보이는 석란(石蘭) 장금순(張金順, 1933~) 선생의 10군자 병풍용 묵화가 있다. 석란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에게 사사하였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국전에 5회 입선하고 한차례 특선을 했다. 그리고 전남도전에 특선 5회, 유네스코 백일장 장원을 했다. 석란 선생은 연진회원이고 한국미협회원이다. . +++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1927~2018)선생 작품 1

내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은 한산이씨 목은 선생의 21대손으로 1927년 종로구 계동 13번지에서 이성구 선생과 순창 조씨 조언례 여사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출생한다. 일본강점기에 수원 농림을 나와 만주국 농림국 미곡검사관(滿洲國 農林局 米穀檢査官)을 지내던 부친 이성구 선생을 따라 만주에서 소학교를 다니다 경성의 봉래 고등 소학교로 유학을 나왔다. . 해방이 나던 1945년 3월 방원(芳園) 선생은 경성원예학교를 졸업하며 바로 초대 창경궁 식물원 원장에 취임한다. 그리고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식물원이 전라북도 전주로 옮겨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근무를 한다. 그해 후학을 양성할 작정으로 전주 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치지만 6.25 전쟁으로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녹설(綠雪) 이상재(李常宰, 1930~1989)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유품인 지운 김철수 선생 서화 보따리에는 고 녹설(綠雪) 이상재(李常宰, 1930~1989) 선생 작품도 눈에 보인다. 녹설 선생은 1930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여 주로 전남 광주에서 활동한 근현대 한국화가이다. 1952년 국민대학교 2년을 수료했고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에게 남종화를 배웠다. 연진회 회원이었으며, 1956년부터 1979년까지 매년 국전(國展)에 작품을 출품하여 2회 특선 및 20회 입선하였다. 1962년에 김옥진, 천경자 등과 함께 를 만들어 활동했다. 1984년에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80년에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현대 한국화전에 참여했고 1982년부터 1987년 사이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남계(嵐溪) 박진주(朴鎭柱, 1929~2004)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유품인 지운 김철수 선생 서화 보따리에는 고 남계(嵐溪) 박진주(朴鎭柱, 1929~2004) 선생의 작품도 몇점 눈에 들어온다. 남계 선생은 동양화가이자 서예가이며 고화 감정사로 1929년 (1931년생이라는 설도 있으나 본인이 29년생이라고 생전에 말씀하셨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서 밀양박씨 청재공파 중의 장파집 박선(朴宣)의 후손으로 아버지 박천배(朴天培)와 어머니 진주하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조옥희여사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진도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를 중퇴한 남계 선생은 목재(木齋) 허행면(許行冕, 1906~1966, 의재 선생의 4째아우),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 소전(素荃) 손재형(孫在馨, 190..

구당 이범재 九堂 李範載Lee BeomJae. 1910 ~ 1993. 한국화가

작가약력 1964 국전 특선 1984 개인전(세종문화회관) 1986 개인전(백악미술관) 1989 개인전(월드아트미술관) 1994 유작전(금호문화회관) 등 경력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심사위원장 연진회장 아시아미술문화협회 운영위원 전남미술대전 추천작가 등 작가 소개 전남 보성 출신으로 광주·전남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어렸을 때 광주로 올라와 살면서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으로부터 묵화를 사사 받았다. 1938년 연진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고, 1945년 해방이 되자 인민위원회 보성읍위원장에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이 일어나자 읍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서울에 올라가 1964년 제 13회 국전에서 서예부문 특선을 하였으며, 1965년과 1966년 국전에서 입선하였다. 1965년 전남도전 초대 추..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화백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영원한 우정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을 중심으로] . 부안이 배출한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은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돌린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선진국 유학이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1912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실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일제에 독살되던 1915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 . 1915년에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울자며 ‘귀곡단’과 ‘열지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1916년에는 한국 대만 중국 유학생을 모아 ‘신아동맹단’을 결성하여 독립지사의 길에 들어섰다. 지운 김철수 선생님은 해방되어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14년을 옥살이했다. (2) . 초기 조선공산당 3차 전당대회 전반기 책임비서로 러시아의 코민테른에 참가하여 거액의 군자금을 받아..

[조용헌의 백가기행]의재 허백련 선생의 무등산 춘설헌/행복이 가득한 집

[조용헌의 백가기행]의재 허백련 선생의 무등산 춘설헌/행복이 가득한 집 예인의 풍류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집 전남 무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춘설헌은 한국 근대사에서 호남 제일의 살롱이었다. 의재 허백련 선생이 머물렀던 이곳에 호남 제일의 예인들과 사상가들의 발길이 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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