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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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07_芳園(李盛粲) 55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3] 방원 이성찬 선생과 운초 정영호 선생

좌로부터 2번째가 고 운초 정영호 선생, 3번째가 옥산 김옥진 화백, 그리고 오른쪽이 방원 이성찬 선생이다. 옥산선생의 개인전을 축하해주고 있다. 방원 이성찬 선생(http://blog.daum.net/enature/15852876)과 운초 정영호 선생은 만주국 미곡검사관으로 중국을 오가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독립자금..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을 살려준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6․25 전쟁 지원을 결정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16개국이 유엔의 기치아래 전투 부대를 파병하여 북한 침략군과 싸웠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인도적인 의료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덴마크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전쟁영웅] 나의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한동우(韓東羽) 아저씨

여든의 나이에 '안아락(安亞樂)'이라는 수상록을 출간한 한동우 아저씨는 나의 할머니 조 씨 집안의 외가 한 씨 집안 아저씨 벌 되는 분이다. 재무부 국고국장을 지냈고 전주제지 부사장, 동양증권 사장, 동해 종합금융 사장, 한솔 종합금융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낼 정도로 필력이 뛰어나 칼럼집 , 시사 콩트 . 수상록, , ,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동우 아저씨는 1980년 7월 살인마 전두환의 국보위에서 자행한 350명 행정관료 숙정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소문에 의하면, 국보위는 한동우 아저씨의 숙정 이유를 '현대아파트 6채 착복'으로 들었으나, 본인의 소명에 의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는 게 해직당하기 2년 전에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이 있어서 고위직 들이 큰 곤욕을 치렀는데..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1代孫(호장공28世, 호장공27代孫, 목은22세)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1代孫(호장공28世, 호장공27代孫, 목은22세)]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芳園 李 盛 粲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은 한국시간 2018년 4월 13일 20시 11분 6.25동란중 수류탄폭발로 인한 파편상(좌복부 파편창과 좌배부 맹관 파편창)과 외상성폐손상이 악화되어 흡인성폐렴으로 인하대학병원 11층 2호실에서 사망하셨습니다. 빈소는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2호실에서 젊은시절 창경궁(昌慶宮) 식물원(植物園)의 주임(主任)으로 근무하셨던 창경궁 식물원이 바라보이는 곳에 모셔서 5일장으로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발인은 2018년 4월 17일 9시 30분에 서울대학병원 영안실을 떠나 성남화장장에서 화장한후 명혼을 동일 16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봉안의식을 국군의장병의 의장행사를 통해 충혼당 314호실에 모셨습니다. 장지에서 돌아온 당일 저녁 혼란스런 영가께서 밝은 빛이 나는 곳..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2] 방원 이성찬 선생과 이영노 박사

식물학자 고 이영노 전 이화여대 교수 작고하신 이영노 박사님은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친구분이시기도 하지만 내 모친 이춘연 여사의 전주여고 은사이기도 하다. [2008.06.23 만물상] 식물학자 이영노 -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입력 : 2008.06.23 22:14 / 수정 : 2008.06.23 23:01 남한강 ..

운초 정영호 박사 미망인 박양숙 여사님의 선행

오늘 인터넷 신문에 낮익은 이름과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죽마고우였던 서울대 식물학과 교수를 지내신 고 운초 정영호 박사님의 미망인 박양숙 여사께서 거금을 유니세프에 쾌척하셨다는 군요. 2007년에도 고려대에 큰돈을 기부하셨다는데 반가운 마음에 제 블로그..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1] 방원 이성찬 선생과 우촌 이종익 선생

우촌 이종익 (于村 李鍾翊) [우촌 선생은 제 부친 방원 선생의 오랜 친구셨습니다. 제 부친께서 신구전문대 원예과와 식물원 건립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기억도 있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퍼온 글입니다.] 우촌 이종익 선생의 생전모습 우촌 이종익 선생은 1923년 계해생(癸亥生) 9월 4일생으로 파주읍봉루리학동(坡州邑鳳樓里鶴洞)에서 한학자 이면규공(李冕圭公)의 차남으로 태어나 타계할 때까지 이 나라 출판과 육영에 헌신했습니다. 우촌 선생은 고성이씨 용헌공파로 시조로부터 이십칠세손이며 사암공파(思菴公波)입니다. 우촌선생은 1933년 문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상업학교를 입학하였습니다. 1942년에는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소압(스카모)상업고등학교(日本巢鴨商業高等學校)를 다니며 일본 학예사라는 출판사에서 편집..

[스크랩] Re:Re:방원선생님과 대화한 한토막이 있어 올립니다.

저의 실수입니다. 방원선생께서는 항상 한자로 이름을 적어 보내오고 있습니다 붓글씨도 잘 쓰시고요 특히 세필글씨를 잘 쓰시고요 언제 인연이 닿으면 아버님과 지운선생의 만남/ 우장춘선생과의 대화/ 아버님의 전주하숙생활/ 강진에사시는 외조부님과 지운선생의 대화 그리고 중매..

[스크랩] Re:방원선생님과 대화한 한토막이 있어 올립니다.

창경원 식물원 원장과 우장춘박사 비서생활을 하셨던 방원(芳園 )이승찬선생께서 해방정국에 정치에 입문 할려고 하니 그의 선생 지운(제3차 공산당 당수)께서 '이승찬은 꽃당 당수여!, 이승찬은 꽃당 당수나 하지 그런 것 상관 할 것 없어' 라고 하시면서 꽃다울 방(芳), 동산 원(園)이란 ..

芳園 李 盛 粲

芳園 李 盛 粲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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