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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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07_芳園(李盛粲) 55

방원 이성찬 선생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다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이 지난 2018년 4월 17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꽃비가 날리는 좋은 철에 평소 좋아하시던 꽃들과 함께 영면하셨습니다.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 소평전(小評傳)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방원 이성찬 선생 동작동 현충원에 봉안

바쁘신 중에도 저의 부친상에 조의를 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어제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꽃비가 날리는 좋은 철에 평소 좋아하시던 꽃들과 함께 영면하실 수 있었습니다.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예의이나 황망한 중에 우선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불효자 이상원 배상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

[4. 제 부친 전쟁영웅 방원 이성찬 선생님을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한량 노릇 하러 다니시던 내 아버님을 무척 미워했습니다. 군사독재의 탄압도 피했지만 능력 없는 부모에게서 탈출도 겸해서 미국으로 연구 조교 자리를 구해 도망을 쳤습니다. 어느 날 내 아들이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고 그 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훌륭한 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식 덕분에 철이 들었고 한량으로 잡기에만 빠져 사신 내 아버지 방원 선생의 삶을 공부했습니다.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의 조교를 지냈고 창경원 초대식물원장을 지냈고 625 한국동란 때 6사단에서 수류탄부상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도 죽음을 넘어 구사일..

단군성전 건립주역(檀君聖殿 建立主役, PEOPLE) -이숙봉 여사와 세자매

단군성전 건립사(檀君聖殿 建立史, HISTORY) 영상 자료 -1968년 신축한 단군성전 및 사직기념관 낙성봉축제 2. 출처 : 대한뉴스 제 692호 - 단군 성전 및 사직기념관에 낙성봉축제 (단군성전 건립 기념 경축 제전) - 1968년9월14일 보도 단군 성전 및 사직 기념관에 낙성 봉축제 ( 이숙봉 여사,이희..

대한민국을 망친 이승만

내 부친이 경무대에 조경담당관으로 근무할 때, 이승만 박사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꽃 화분을 잘 배치한다고 따로 불러 꽃 화분 남는 건 내다 팔아 애들 분윳값에 보태라고 했단다. 꽃 화분 살만한 국민이 일천했던 시절, 나라 사정도 모르는 이런 영감이 대통령이란 게 참 걱정되더란다. 이런 독대가 있고 나면 특무대 김창룡이 부하들이 불러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냐고 온종일 닦달을 하더란다. 결국, 나의 부친은 이 구실 저 구실을 붙여 경무대에서 도망 나오셨단다. 4.19가 일어나기 한참전에…. [[진실은 불편합니다. 불편해도 이만 저만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실을 직면했을때 도망가고 싶고 외면해 버리고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진실을 가리는 악마들에게 비굴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 [대한민국을 망친 ..

4대(고조-증조-조-부모)봉사 - 지방쓰는 방법과 제사 지내는 방법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제사나 차례, 하지만 지금은 목숨 바쳐 지금의 대한민국과 나를 있도록 한 조상 할아버지들의 처절한 삶이 고개가 숙어지고 제사와 차례에 정성을 다하여야 후손된 도리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잘난 체 하지 말고 서로서로 상의하면서 지방 하나라도 제대로 쓸 수..

이승만 정권의 필요에 따라 가려진 김종오 장군의 춘천대첩

[나의 부친 방원 선생은 이 6사단에서 6.25를 치루시다 페를 관통하는 수류탄 부상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상의용사시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은 탱크가 없어서 수세에 몰렸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이승만 정권이 사라질때까지 춘천대첩을 은폐하고 숨기기에 혈안이었다. 마땅히 무공훈장..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9] 방원 이성찬 선생과 김백봉 선생

한국시간 2023년 4월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하신 김백봉 선생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님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방원 선생님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시절부터 안막 안제승 형제분들과 친구인 인연으로 오랜세월 안제승 선생님의 부인으로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 선생님과 꽃클럽 활동도 함께하시며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님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김백봉 선생님의 가족분들이 새 알러지에 아들 안병철, 딸 안병주와 안나경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저희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습니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8] 방원 이성찬 선생과 조동화 선생

고 조동화 1세대 무용평론가 춤 잡지발행인 [명복을 빕니다]국내 첫 무용 전문 월간지 ‘춤’ 창간 조동화 선생동아일보입력 2014-04-25무용 비평 기틀 다진 한국 무용계 큰별 1976년 ‘춤’을 창간해 국내 무용평론의 토대를 마련한 고 조동화 선생. 동아일보DB 한국 무용평론계의 대부이자 ..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7] 방원 이성찬 선생과 엄규백 박사

양정의숙 이사장 엄규백 박사 2020년 10월 22일 별세하셨습니다. 엄규백(88) 양정의숙 명예이사장이 2020년 10월 22일 숙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양정의숙 설립자 엄주익(1872~1931) 선생의 손자인 엄 이사장은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1973년 양정고 5대 교장으로 취임해 2007년 퇴임할 때까지 35년간 학교 현장을 지켜 ‘한국 중등 교육의 산증인’으로 불렸습니다. 2001년 인촌상(교육 부문), 2008년 올해의 천원교육상, 201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유족으로 아내 안재수씨와 아들 엄대호씨, 딸 엄인경·미경·문경씨가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이었고, 발인 2020년 10월 25일 7시였습니다. 엄규백 이사장, 佛 레지옹 도뇌르 ..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6] 방원 이성찬 선생과 정용재 박사

고 우석(愚石) 정용재(鄭瑢載, 1925~2013) 박사님은 1925년 전남 진도 지산면 가치리에서 출생하였다. 별칭은 정만흔이다. 1950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1963년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대학원에서 유전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7년 이화여대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67년 교수로 임명되어 1975년 교육대학원장,1978년 학무처장,1985년 한국생활과학연구소장,1986년 사범대학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도 명예교수로 활동했다. 방원 선생과의 인연은 방원 선생의 절친 이영노 박사가 이화여대 생물과 교수로 봉직하면서 정용재 박사와의 친분으로 자연스럽게 절친이 되었다. 작교하기 전까지 아래 보인 서신처럼 끈끈한 친분을 유지했다. 생전에 하은생물학상과 다수의 논저를 남겼다. 슬하에 연대 원주의대 산..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5] 방원 이성찬 선생과 전병규 장군

2014년 5월 30일 전병규씨 (전 육군 제33사단장) 별세 #살인마 #전두환 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게엄전국확대를 기화로 5.16쿠테타의 2인자 김종필도 잡아다 봉변을 가했다. 그 관련 회고록을 보다가 내 부친 방원 선생도 김종필과 같은 육사8기가 될뻔했다고 이야기하신게 기억이 났다. 죽마고..

방원 이성찬 선생 평전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4] 방원 이성찬 선생과 옥산 김옥진 화백

김옥진 Kim Ok Jin 沃山 金玉振 좌로부터 2번째가 고 운초 정영호 선생, 3번째가 옥산 김옥진 화백, 그리고 오른쪽이 방원 이성찬 선생이다. 옥산선생의 개인전을 축하해주고 있다. 방원 이성찬 선생(http://blog.daum.net/enature/15852876)과 옥산 김옥진 화백은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제 허백련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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