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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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_082_五.一八 67

어디가서 하소연 하란 말인가?

2. 오늘은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기전에 페북 담벼락을 살피다가 유타에 살고 있는 뱀띠 광주댁(JiHyun Kim) 선생이 링크를 걸고는 "읽지 않는 게 좋을 뻔 했다. 가슴이 아린다. ㅠㅠ"라는 코멘트를 남긴 억울하게 20년간 옥살이 한 윤모씨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어린시절 한국에서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 쓰고 죽거나 감옥살이 한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니라서 사실 그리 특별난 기사는 아니었다. 우리나이때 한국인들은 하다못해 선생들은 초등학교시절 시험문제 하나 틀렸다고 고사리손에 파랏고 빨간줄이가고 뚱뚱 붇도록 때렸고 월사금.육성회비 못냈다고 마대자루로 두들겨 패기를 밥먹듯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 내 인생에서 대학시절을 제외하면, 그리 억울하여 분통터지는 경험이 별로 없는것 같다. 하..

[대한민국을 망친 사람들]

유교가 조선을 망친 게 아니라신안동김씨가 조선을 망쳤다.. 성리학을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은 '유교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불성설인 주장입니다. 어느 세상에 유교 성리학을 한 국가 철학으로 그것도 한 왕조를 600년 이상 이어온 역사가 이 세상천지에 조선 말고 또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 이성계가 정도전이 주창한 경국전을 중심으로 유교 사상의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붕괴시키고 조선을 1392년에 건국했습니다. 정조가 집권하던 1800년 이전까지는 유교이상국가는 나름 잘 유지가 되었습니다. . 사리사욕 세도정치에 빌미를 제공한 홍국영 . 1780년 외척인 홍국영이 유교지도이념에 대한 투쟁과 공정한 언로 확보를 위한 사상적이고 도의적인 정치를 명분으로 세도(世道)정치..

[우수인재 국적회복신청 관련 결과 등 안내]

. 안녕하세요. 이상원 선생님 . 법무부 국적과 특별귀화 담당자 000 주무관입니다. . 선생님께서 2018.4.9. LA총영사관(SF총영사관을 LA총영사관으로 착각)을 통해 신청한 우수인재 국적회복 신청과 관련하여 진행경과 및 결과를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 ㅁ 그 간의 진행경과 . - 2019. 3. 29. 국적심의위원회 심의안건으로 상정, 위원회에서 우수인재 평가기준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하다고 판단하여 결정보류 후 재심의 . - 2019. 6. 28. 국적심의위원회에 재상정, 우수인재 평가기준을 갖추지 아니하다고 판단하여 불인정 결정 . 다만, 위원장이 5.18. 민주화 유공자와 관련하여, 국적법 제7조 제1항 제2호에 해당되는지 재검토 의견 . - 5.18. 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지원위원회 측에..

노태우의 죽어 마땅한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참회를 했다는 면에서는 그 참회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살인마‬ ‪#‎전두환‬ 을 처형(處刑)하라! 한 손엔 몽둥이 한 손엔 짱돌을 움켜쥐고 연희동(延禧洞)으로 몰려가 살인마(殺人魔) 전두환(全斗煥)을 주살(誅殺)하라!!!].노재현 군이 제 아비 노태우를 대신하여 5.18묘역에 무릎을 굵고 참회를 했다. 만시지탄이다. 5.18 피해자의 한사람으..

[보안사 박땡땡 사무관(준위?)에게]

1980년 5월 17일 자정, 전북대 학생회관 3층에서 전단지 복사를 하다 금마7공수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이세종 선배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 참혹한 공포 속에 잡혀가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받고 풀려난 이후 나의 19살 이후의 삶은 끔찍하게 뒤틀렸다. .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서울집에 가니 내 아버지 지인이라며 등장한 박땡땡. 내 아버지 방원 이성찬 선생은 부천 원예농장이 도시화로 붕괴한 후 정신줄을 놓아 인사동 한량으로 옥산 옥전 동양화가들과 교류하며 잡기에 화투를 치며 가산을 탕진 중이었다. . 장안의 동양화 가격은 방원선생이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는 농을 들을 정도로 인사동 동양화가 뒤치다꺼리에 남은 인생을 거셨다. 그러다 보니 방원선생 주변에는 유명 화가와 서예가의 그림과 서화를 공짜나 저렴한 가격..

5.18 민주화 유공자가 된 배경 진술서

[결과보고: 지난주 유타출장중에 5.18유공자 자격을 유지할 우수인재 복수국적 심사 결과를 통보받앗습니다. 일단 저는 우수인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승복합니다. 저를 불상하게 여겨 유공자격에 대해 특별귀화로 복수국적인정을 해보겠다고는 하나 5.18당시 수많은 분들이 저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도 많아 기대하지는 않치만 진술서는 제출하여 두고자 합니다. 그동안 살인마 전두환을 처형하자는 과격한 주장에 공감을 표해주신 페이스북 인연분들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 000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2003년 당시 제출서류라는게 불법체포 구금 당한 사실에 대한 인의보증이 저는 미국에 있고 한국에서 함께 고생했던 분들이 만들어 제출했던거여서 제가 가지고 있는..

2018년 3월 미국적보유를 이유로 5.18유공자격을 박탈당한 이상원

올해도 어김없이 5.18이 가까워지면 5.18을 일깨워주는 분들이 있다. 바로 언론종사자분들의 취재요청이다. 나이도 먹어가고 해마다 나와 5.18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가는 것에 비례하여 취재요청은 줄어간다. 올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매체 포함 6곳, 그중에서 자신들의 편집 의도가 다..

[1980518 나와 소년시민군 강용주와 고 김영국]

1980년 5월 17일 자정 저는 대학 1학년의 나이로 농학과 2학년 이세종 선배의 죽음을 보며 금마 7공수에 잡혀가 길고 긴 죽음과도 같은 감금과 고문과 두려움을 돌아 나온 80518 생존자 중에 한 명입니다. 그래도 살다 보니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을 보니 대학 1학년 19살의 나이가 자기 앞가림조차 벅찬 얼마나 어리고 연약한 나이인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 그런데 그 처절한 80518의 와중에 총을 들고 살인마 전두환과 맞서 싸운 소년시민군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비분강개함만 가지고 살인마 전두환 반란군 저격병의 총알과 헬기 기총소사를 피해 살아난 어린 전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강용주와 김영국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강용주 서울 대림동 안아파의원 원장으로의 삶을 사는 강용주 . 80년..

[5. 5.18민주화유공자 이상원 입니다. 저를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5. 저는 1980년 5월 17일 예비검속에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이세종 열사의 죽엄 앞에서 7공수에게 잡혀간 5.18민주화유공자 이상원 입니다. 저를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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