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반응형

0. 韓山李氏/_082_五.一八 82

[보안사 박땡땡 사무관(준위?)에게]

1980년 5월 17일 자정, 전북대 학생회관 3층에서 전단지 복사를 하다 금마7공수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이세종 선배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 참혹한 공포 속에 잡혀가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받고 풀려난 이후 나의 19살 이후의 삶은 끔찍하게 뒤틀렸다. .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서울집에 가니 내 아버지 지인이라며 등장한 박땡땡. 내 아버지 방원 이성찬 선생은 부천 원예농장이 도시화로 붕괴한 후 정신줄을 놓아 인사동 한량으로 옥산 옥전 동양화가들과 교류하며 잡기에 화투를 치며 가산을 탕진 중이었다. . 장안의 동양화 가격은 방원선생이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는 농을 들을 정도로 인사동 동양화가 뒤치다꺼리에 남은 인생을 거셨다. 그러다 보니 방원선생 주변에는 유명 화가와 서예가의 그림과 서화를 공짜나 저렴한 가격..

5.18 민주화 유공자가 된 배경 진술서

[결과보고: 지난주 유타출장중에 5.18유공자 자격을 유지할 우수인재 복수국적 심사 결과를 통보받앗습니다. 일단 저는 우수인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승복합니다. 저를 불상하게 여겨 유공자격에 대해 특별귀화로 복수국적인정을 해보겠다고는 하나 5.18당시 수많은 분들이 저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도 많아 기대하지는 않치만 진술서는 제출하여 두고자 합니다. 그동안 살인마 전두환을 처형하자는 과격한 주장에 공감을 표해주신 페이스북 인연분들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 000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2003년 당시 제출서류라는게 불법체포 구금 당한 사실에 대한 인의보증이 저는 미국에 있고 한국에서 함께 고생했던 분들이 만들어 제출했던거여서 제가 가지고 있는..

2018년 3월 미국적보유를 이유로 5.18유공자격을 박탈당한 이상원

올해도 어김없이 5.18이 가까워지면 5.18을 일깨워주는 분들이 있다. 바로 언론종사자분들의 취재요청이다. 나이도 먹어가고 해마다 나와 5.18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가는 것에 비례하여 취재요청은 줄어간다. 올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매체 포함 6곳, 그중에서 자신들의 편집 의도가 다..

[1980518 나와 소년시민군 강용주와 고 김영국]

1980년 5월 17일 자정 저는 대학 1학년의 나이로 농학과 2학년 이세종 선배의 죽음을 보며 금마 7공수에 잡혀가 길고 긴 죽음과도 같은 감금과 고문과 두려움을 돌아 나온 80518 생존자 중에 한 명입니다. 그래도 살다 보니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을 보니 대학 1학년 19살의 나이가 자기 앞가림조차 벅찬 얼마나 어리고 연약한 나이인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 그런데 그 처절한 80518의 와중에 총을 들고 살인마 전두환과 맞서 싸운 소년시민군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비분강개함만 가지고 살인마 전두환 반란군 저격병의 총알과 헬기 기총소사를 피해 살아난 어린 전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강용주와 김영국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강용주 서울 대림동 안아파의원 원장으로의 삶을 사는 강용주 . 80년..

[5. 5.18민주화유공자 이상원 입니다. 저를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5. 저는 1980년 5월 17일 예비검속에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이세종 열사의 죽엄 앞에서 7공수에게 잡혀간 5.18민주화유공자 이상원 입니다. 저를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