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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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_091 지운서화 81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398~410

지운 선생의 서화 작품 해설이 돌팔이가 왈가왈부 할 사안이 아니다. 주변에 한문 공부 좀 했다는 일본 중국 대만 친구들 조차 돌팔이 내 한문실력(?)에 감탄 할 정도로 한국이 한문실력의 종주국이긴 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한문에 한소식 하신 분들의 댓글 재능기부에 맞기고자 한다. 난 내 기억과 지운 선생이 사사로이 내 부친에게 보냈던 서찰 내용 중에 한국정신문화원 간 '지운 김철수' 증언집에 거론된 내용을 중심으로 비사형태로 남겨보고자 한다. . [코민테른 군자금의 행방과 지운 김철수] . 증언집에는 코민테른에서 받은 군자금의 내용(200만루브르, 100만루브르 금괘)도 나름 나온다. 지운 선생은 그 엄청난 공로조차 증언집에서는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동지들에게 돌린다. 사회혁명당과 러시아 한인사회당이 박진..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귀거래사(歸去來辭)' 8폭 병풍 2점 서화 작품 357~382

지운 할아버지 서화 속에서 배접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너덜거리는 내 큰엉아 결혼 축하 '천지기념 장수가복(天地記今 長守嘉福)' 휘호를 발견했다. 이어서 8폭 '도연명 귀거래사(陶淵明 歸去來辭)' 병풍용 서화도 발견했다. 또 따로 큰형에게 주는 귀거래사 소병풍용 8폭짜리 서화도 나왔다. 지운 선생의 큰형 화혼 축하 서화이니 잘 보관하다 한국가면 배접이라도 해서 선물로 줘야겠다. 아니면 나중에 박물관 만들어 전시하던가 ... . +++ 1. 이태원 박사 결혼 축하 휘호와 8폭 귀거래사 병풍용 서화 2. 陶淵明(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 五斗米 때문에 鄕吏에게 허리 굽혀 알랑거리지 않겠노라! . 陶淵明은 中國 東晋사람으로 中國의 代表的인 詩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陶淵明의 여러..

[지운(遲耘) 김철수(金錣洙, 1893-1986) 선생과 자임(子任) 모택동(毛澤東, 1893-1976) 주석과의 인연] 386-395

지운 선생이 일본 유학 당시인 1916년에 결성한 신아동맹단에는 조선인 10명, 대만인 10명, 중국인 20명이 가담했다. 참여 인사들의 일부 성함은 한국정신문화원 간 '遲耘 金錣洙'에 나와있다. 지운 선생이 주축된 조선 유학생들은 1920년 조선에서 사회혁명당을 창당한다. 또 중국측 참여인사들은 중국에서 대동단을 결성한다. 그 대동단은 1921년 상해에서 중국공산당 결성의 핵심이 되었고 결성방식은 지운 선생의 조직결성 방식을 따랐다. 훗날 지운 선생이 중국과 러시아를 오갈때 동갑인 모택동을 친구로 삼을수 있는 바탕이 될수 있었다. 1976년 9월 9일 모 주석 사망시 그의 죽음을 애도한 지운 선생의 '만모동지(挽毛同志)' 휘호도 이 서화 보따리에서 수십편 찾았다. . 생전에 중국과 러시아에서 모 주석과..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272~285

십여년전 강현 구들연구소를 방문했을때 무운 김효명 선생이 읽어보라고 주신 두꺼운 책이 몇권있다. 한국구들의 기법을 정리한 무운 선생의 책과 함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99년에 발간한 '芝雲 金綴洙'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내 부친 유품 속에도 있어 내가 두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시간날때 마다 쭉 읽어 보았는데 내용이 어릴때부터 두달에 한번씩 대수리에서 올라오셔서 내방에서 주무시면서 들려주셨던 사회주의 관련 이야기들이었다. . 그 책에는 지운 선생의 장손주 김소중 선생과 고 백산고 이사장 고산 정진석 선생 그리고 무운 김효명 선생이 소장했던 녹음테이프를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사회주의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빨갱이타령하던 한국사회에서 저절로 작용했던 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251~271

지운 선생에 대한 나의 기억도 완전할수는 없다. 또 지운 선생이 40여년에 걸쳐 내 부친 방원 선생에게 보내신 엽서에서도 사사로운 내용 중에 역사적인 사실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수도 없다. 하여 지방 언론 매체에 지운 선생에 대한 기고문을 여러편 올리신 사학을 전공한 전 백산고 정재철 교감 선생의 기고문들을 모아 보기로 했다. . 이번엔 2003년 01월 20일자 부안21에 올려진 정재철 선생의 "[김철수] 민족의 해방과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을 소개한다. . 민족의 해방과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 . 정재철(전 백산고등학교 교감) . 작년(2002년) 4월 24일에는 부안에서 지운 김철수 선생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遲耘 金철洙』자료집이 출판되면서, 그의 탄생 1..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2폭 소병풍 2점 서화 작품 327~332

전 백산고 교감을 지낸 정재철(鄭在喆, 1955-)선생은 지운 선생과 관련된 기고문을 여러편 남기셨다. 지운 선생이 기거하던 대수리가 백산중고와 지척이고 1949년 백산중고를 설립한 고산(孤山) 정진석(鄭振奭, 1920-2005) 선생이 지운 선생 막내 동생인 김복수(金福洙) 선생과 함께 청년시절 부안군 공산주의 청년동맹을 결성한 인연이 있을 정도로 지운 선생과 백산중고는 인연이 깊기도 하다. 정재철 선생은 1955년 8월 1일 부안군 주산면 화정에서 주산지서 경찰공무원 정득술 선생과 전주 이씨 어머니 사이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백산중고를 나와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니 나에게는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88년 전교조 이전의 전교협 활동부터 시작했던 민주인사이기도 하다...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 소병풍 서화 작품 312~324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 소병풍 서화 작품 312~324 . 지운 선생의 서화를 정리하면서 나름데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지운 김철수'도 읽어보고 또 지운 선생을 소재로 한 학위논문 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분히 소설처럼 쓰인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그나마 나름 사실에 부합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김경민 전 부안독립신문 대표이사가 2010년 7월 28일자 부안독립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운 선생이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활동한 상황을 정리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가 되다조국의 광복과 통일 - 스러진 혁명의 꿈 - 지운 김철수 / 김경민(부안독립신문 전 대표이사)] . 조선공산당에 참여하다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 병풍 서화 작품 299~309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 병풍 서화 작품 299~309 . 지운 선생의 서화를 정리하면서 나름데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지운 김철수'도 읽어보고 또 지운 선생을 소재로 한 학위논문 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분히 소설처럼 쓰인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그나마 나름 사실에 부합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김경민 전 부안독립신문 대표이사가 2010년 7월 28일자 부안독립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운 선생이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활동한 상황을 정리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가 되다조국의 광복과 통일 - 스러진 혁명의 꿈 - 지운 김철수 / 김경민(부안독립신문 전 대표이사)] . 조선공산당에 참여하다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222~235

지운 선생의 서화를 정리하면서 나름데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지운 김철수'도 읽어보고 또 지운 선생을 소재로 한 학위논문 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분히 소설처럼 쓰인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그나마 나름 사실에 부합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김경민 전 부안독립신문 대표이사가 2010년 7월 28일자 부안독립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운 선생이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활동한 상황을 정리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가 되다조국의 광복과 통일 - 스러진 혁명의 꿈 - 지운 김철수 / 김경민(부안독립신문 전 대표이사)] . 조선공산당에 참여하다 . 지운 선생은 국민대표회의에서 실망과 좌절을 안고 1923년 7월 조선으로 들어왔다. 동지들을..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176~200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서화가 처음에는 대충 천몇백점인줄 알았는데 그 몇배는 되는것 같다. 화선지가 압축되었다가 풀어 펼치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 모금을 해야 할 판이다. 아무튼. . 근대사의 인물들 - 1916년 일본와세다대학 유학인사들 . 앞줄 중앙 지운 김철수 선생은 나의 고조부 이명직 선생의 '망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유학을 나가라!'는 사발통문에 감화되어 한학을 접고 일본유학을 결행한다. 나의 고조부 이명직 선생이 친일파에 암살당한 1915년, 그소식을 듣고 지운 김철수 선생은 귀곡단을 조직하고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선다. 아래의 사진은 내 부모님의 중매를 했던 인연으로 내가 지운 김철수 선생을 친할아버지 이상으로 접했던 연고로 보관하게 되었다. . 맨 뒤줄 좌에서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중 서화 2폭 병풍 1300-1304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중 서화 2폭 병풍 1300-1304 나의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 유품보따리에는 이미 액자로 또 족자로 또 배접이 되어있는 작품들은 다른 분들이 잘 보관하기 위해 챙겨 놓으셨지만, 내가 정리하는 것은 쓰레기처럼 화선지가 비닐보따리에 휴지처럼 남겨져있던 것들이다. 어쩌면 쓰레기통에 버려져 영영 사라질 뻔한 것들을 다행스럽게 챙겨서 미국으로 가져온 것들이다. 나름 정리하여 소개하는 것이니 보관상태가 안타까워도 꾹 참고 감상하길 바란다. 내가 여유가 되고 형편이 되면 배접하여 잘 보관해 볼 방도를 찾아볼 예정이다. . 지금 소개하고 있는 지운 선생은 잘 알다시피 북으로 간 동생분들이나 자녀분들 중에는 철도부상을 지낸분도 있고 또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중 서화 2폭 병풍 236~239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중 서화 2폭 병풍 236~239 . [지운 김철수 선생 – 좌우익 소아병을 극복한 정치인이자 독립지사.] . 2005년 8.15 광복의날에 독립장을 추서 받은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 선생은 일찌기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고 실천에 옮긴 분이다. 지운 선생은 한중일 동양3국에서 가장 먼저 초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며 일본•러시아•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3년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분의 독특한 점은 1920년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까지 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지운 선생은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북조선을 택하지 않고 1986년 돌아가..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적벽부 서화 10폭 병풍 작품 240~250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적벽부 서화 10폭 병풍 작품 240~250 . [지운 김철수 선생 – 좌우익 소아병을 극복한 정치인이자 독립지사.] . 2005년 8.15 광복의날에 독립장을 추서 받은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 선생은 일찌기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고 실천에 옮긴 분이다. 지운 선생은 한중일 동양3국에서 가장 먼저 초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며 일본•러시아•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3년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분의 독특한 점은 1920년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까지 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지운 선생은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북조선을 택하지 않고 1986년 돌아가실때까지 남한 땅..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126~150

내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 지운 선생 서화보따리를 정리하여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리다 보니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격려하며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공부할수 있어 좋다는 메세지를 보내오셔서 보람을 느낀다. 헌데 꼭 무식하고 한심한 자신의 생각을 용감하게 전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당신도 빨갱이냐며 빨갱이 원조를 찬양하냐고 상스런 욕을 포함해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참으로 한심한 군상들이라 생각된다. 말로 섞기 싫어진다. . [지운 김철수 선생 – 좌우익 소아병을 극복한 정치인이자 독립지사.] . 2005년 8.15 광복의날에 독립장을 추서 받은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 선생은 일찌기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고 실천에 옮긴 분이다. 지운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101~125

방원 선생의 유품 보따리 중 지운 선생의 서화중에 세월의 부침에 헤지고 찢어진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 빛바랜 작품들을 접하니 지운 선생이 와세다대학 정치학 실과를 마치고 본과 진학을 포기하고 중국 대만 조선 유학생을 규합하여 신아동맹단, 곡귀단 등을 만들어 본격적인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연이 생각난다. . 지운 선생이 와세다대 유학시절인 1915년 9월 7일 화성 동탄 석우리(돌머루)에 칩거하며 전국에 똘똘한 자식들을 유학보내 나라 망할것에 대비하라며 사발통문을 돌려 본인 지운 선생과 많은 조선 청년들의 유학을 독려했던 나의 고조부 이명직(http://ko.wikipedia.org/wiki/이명직_(문신)) 선생이 친일세력에 의해 독살 당하여 돌아가신 소식을 접하자 이에 분연하게 일어나, 조국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76~100

지운 선생은 생전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많은 지운 선생의 한문 서화 보따리를 정리하다보니 그중에서도 재미있게 들었던 러시아 코민테른 공산대학에 만났던 모택동 호지명 같은 분들과 서로 밤을 세워 한문으로 필답을 나누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더군다나 모택동과는 동갑으로 더 정감이 갔고 모택동의 글이 흠잡을때 없는 명문들이었다고 하셨다. .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지운 선생의 증손주 이야기다. 잘 알다시피 북으로 간 동생분들이나 자녀분들 중에는 철도부상을 지낸분도 있고 또 중국으로 러시아로 혁명유자녀 자격으로 유학하여 북한 정권에 기여한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남한에 남은 자식과 식솔들은 가난과 정부의 감시에 힘들게 살아갈수 밖에는 없었다. . 장손주였던 김소중 선생은 배우지 못했지만 기품이 있는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51~75

같은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뒤집는 ‘우의 삼각형(U’s Triangle)’을 1935년에 발표해 ‘종의 합성’의 시작을 알린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는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한국농업에 큰 기여를 했다. 민비(명성황후 추증) 살해를 돕고 일본으로 도망간 역적 우범선의 아들이 자신의 부친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국말도 모르면서 죽을때까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장춘을 조국에 헌신하도록 의식화시킨 사람이 바로 조선운동권의 시조 지운 김철수 선생임을 알리며 그분의 서화작품 25점을 연이어 소개한다. .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을 중심으로] . 부안이 배출한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은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돌린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선진국 유학이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1..

지운 김철수 선생과 울릉도 '고고고고(古枯孤高)' 201~221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방원 선생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시절부터 오랜세월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1) 선생과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새 알러지에 큰아들 안병철, 딸 안병준과 안병헌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습니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러해동안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벗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 1972년 어느날, 부안 백산에서 지운 선생이 종다리 여러쌍을 들고 오셨습니다. 지운 선생 말씀이 몇년전 신문에 보니 울릉도에 종다리와 진달래가 없어서 종..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26~50

'조선공산당' 2차후반기와 3차 집행부 책임비서'를 지내고 또 스탈린을 만나 조선공산당에 대한 코민테른의 승인과 동양공산혁명자금을 직접 수령했던 지운 김철수. 한중일 동양3국중, 1920년 조선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당의 강령을 갖춘 '사회혁명당'을 창당했으며 1921년 레닌의 자문으로 이동휘의 러시아 '한인사회당'과 결합하여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만든 지운 김철수. 그런 지운 김철수 선생은 북으로 가지 못하여 정작 북한의 공산정권 창립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과 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제가 여러분의 그 의문을 풀어 주겠습니다. . [지운 김철수 선생이 북으로 가지 못한 이유] . 초기 조선의 공산당 창설..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1~25

위키백과에 의하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3월 16일) 선생은 조선공산당 3차 집행부 책임비서로 전북 부안 백산에서 태어난 뒤 1912년 젊은이들의 유학을 독려하는 독립지사 성우 이명직 대감이 돌린 사발통문을 보고 감화되어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유학하였고 1915년 9월 7일 이명직 대감이 일제에 독살 당한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에 투신 1915년 '열지동맹(裂指同盟)' 1916년 '곡귀단(哭鬼團)'과 '신아동맹단(新亞同盟團)'을 조직하였다. 우범선의 아들 우장춘에게 한국을 선택하도록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의식화 시킨 장본인 이다. 일본과 러시아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활동을 벌였다. 특히 코민테른에서 지급한 거액의 군자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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