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반응형

0. 韓山李氏 882

한산이씨 (韓山李氏) 10세 망월암공 이축

한산이씨 호장공계 10세 선조이자 목은4세(牧隱4世)이신 망월암공 #望越庵公李蓄 #한산이씨 . (10世) 9代孫(목은4세,牧隱3代孫) 망월암공 (望越庵公) 이 축 (李 蓄, 1402년태종2년~1473성종4, 묘소: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은지)은 광목공 이숙야의 1남2녀중 외아들로 자는 윤보(潤甫)입니다. 부인은 이천서씨로 밀직사를 지낸 서원의 손녀이며 형조판서를 지낸 공도공 해화당 서선의 따님입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셨습니다. 1417년, 16세에 계성전직 제수되고 사선주부 거쳐 광주판관, 사헌부감찰, 호조좌랑 및 정랑, 전농시소윤, 사헌부장령, 지사간원사, 판선공감사, 봉상시사,첨지중추부사 겸 지병조사, 이조참의를 지냈습니다. 1453년(단종1) 황해도 관찰사,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수양대군이 정권을..

한산이씨 (韓山李氏) 9세 광목공(光牧公) 이숙야(李叔野)

한산이씨 #韓山李氏 9世 8代孫(목은3세,牧隱2代孫) #光牧公李叔野 묘소: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월하능마을)선조님은 #麟齋公李鍾學 선조님의 6남1녀중 장남입니다. 부인은 계성판윤과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봉유인의 딸인 강화봉씨 #江華奉氏 입니다. 광목공 선조님은 사헌부, 사간원을 거처 정3품 광주목사 #光州牧使 를 지내셨습니다. . 우암 송시열이 지은 [광주 목사공 휘 숙야묘표] 승정 횡예엄무년 (1862년)중춘에 은진 송시열 지음. "우리나라가 개국하고 나서 고려조의 대가댁 자손 중에 어질고 뛰어난 자를 뽑아 등용하니,공이 문보에 적을 두지 않고 사헌부, 사간원을 차례로 거처 광주 목사의 벼슬에 이르렀다.부인은 봉씨이니, 합장 하였다. 지금 10대손인 안사 수언이 추모하여 묘석을 세웠으나 워낙먼 조..

한산이씨(韓山李氏) 8세 인재공 이종학

https://youtu.be/BA2fmqPD3rU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8월 23일 임신 2번째기사 -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인재공 이종학 졸기 . 種學字仲文, 韓山伯 穡之次子, 天性英豪。 恭愍甲寅年十四, 中成均試, 僞朝丙辰, 中同進士, 遂拜長興庫使, 積官至密直司知申事。 戊辰, 掌成均試, 陞僉書密直司事。 己巳, 同知貢擧。 時李穡當國, 種學連歲掌試, 人頗譏之。 恭讓君立, 李穡見劾, 種學亦貶。 庚午, 尹彛、李初之獄作, 父子俱在淸州逮中, 以水災, 俱得蒙宥。 壬申, 又貶咸昌。 至是, 興宗至雞林, 欲行脊杖, 門生金汝知方爲判官, 陰戒吏不得行法外刑, 因是僅活。 移置長沙縣, 興宗遣人, 追至茂村驛, 乘夜縊之, 年三十二。 子六人: 叔野、叔畦、叔當、叔畝、叔福、叔畤。 . 종학(種學)의 자는 중문(仲文)이니..

한산이씨(韓山李氏) 5세 광정대부 도첨의 찬성사 이자성

이자성 선조님은 정읍감무를 지내시던 1310년에 4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한살 아래인 울산출신 흥례이씨와 1278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세아들 배(培), 축(蓄), 곡(穀)과 따님 한분을 두셨습니다. 맏아들인 배는 과거에 올라 벼슬이 사복서승에 이르렀습니다. 둘째 아들 축은 일찍 죽었으며, 셋째 아들인 곡은 국가시험 수재과와 황조제과에 급제하였습니다. 따님은 장씨에게 출가했는데 어머니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남편인 정읍감무 이자성 선조가 죽은 다음 40년간 과부로 절개를 지켰습니다. 자질이 영리 민첩하고 자상하면서도 엄하여, 두 아들의 과거 공부를 뒷바라지해서 모두 출세하도록 하였습니다. 자식 이곡과 손자 이색의 공으로 말미암아 정읍감무 이자성 선조는 고려에서는 도첨의찬성사 원나라에서는 비서감승으로 ..

한산이씨(韓山李氏) 7세 한산부원군 목은 이색

고려 원나라 간섭기에 부친 가정 이곡 선생과 함께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토곤 테무르의 총애를 받았던 목은 이색 선생이 명나라의 등장으로 대국 명나라와 원나라 사이에서 권력투쟁에 골몰한 고려의 사림과 무림 속에서 양다리 외교술을 펼쳐 고려를 지켜내고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자신도 모진 고초를 치르면서 이성계의 5남 이방원이 장남과 차남의 참살함 지켜보기만 했지만 고려든 조선이든 대국의 속국은 만들지 않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이 행장을 통해서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외부의 적보다 사리사욕에 젖은 내부의 시기와 질투와 모함이 가장 큰 위험임을 역사는 언제나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목은 이색 선조의 36세까지의 행장을 살펴보았습니다. 목은 이색 선조의 37세이후의 행장을 살펴보았습니다.

한산이씨(韓山李氏) 6세 한산군 가정 이곡 - 원나라 고려공녀공출을 폐지시킨 주인공

가정 이곡 할아버님의 첫 유언은 "아지자손 백대지친 (我之子孫 白代之親), 내 자손들은 백대를 넘어 일가친척으로 화목하게 화합하고 지내라"였습니다. 이유는 고려에서 한산 백제의 유민으로 차별을 당하고 고려 거자과에 급제하고 수재과에 차석을 하여도 시기와 질시 그리고 차별로 미관말직을 벗어날 수 없었고 원나라의 과거에 차석 하여 고위직을 지내도 고려에만 오면 이구실 저구실로 관직을 깎아내리고 이 트집 저 트집을 잡아 귀양까지 보내는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한산이씨 후손들은 시기와 질시로 귀한 사람을 흠집 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고 한산이씨 후손 만큼은 서로 아끼고 화목하고 화합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위대한 학자의 유언치고는 참 유치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고려에서 천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지금..

한산이씨(韓山李氏) 1세 호장공 이윤경 -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한산이씨 호장공 묘지에 관한 전설

https://youtu.be/O8ty1-aCqIo 호장공 이윤경 묘소에 관한 전설의 허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고려시대의 행정조직상으로 한산은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는 곳으로 그곳의 유력가문의 장으로 지방관인 호장을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를 적용받는 곳이었습니다. 호장공 이윤경에 이어 2세 정조호장 이인간, 3세 봉헌대부비서랑 이효진, 4세 봉익대부판도판서 이창세, 5세 광정대부 도첨의 찬성사로 전북정읍감무를 지낸 이자성까지 5대에 걸처 호장직을 세습했습니다. 하여 전설 속 “고을의 관청에서 심부름”을 했다는 것은 근거없는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고려호장(高麗戶長)은 마을의 우두머리로 그 마을의 대지주의 역할을 하는 자리인데 “매우 가난하여 근근이 살아간다”는 가설 부터 잘못된 기술입니다. 이는 ..

미당문학상 폐지 유감 / Thu, Oct 4, 2018, 2:57 PM

2001년 중앙일보가 소설 분야 상금 5천만 원의 황순원 문학상과 함께 시 분야 상금 3천만 원의 미당 문학상을 만든 지 17년 만에 미당의 친일을 문제 삼아 폐지한다는 인터넷 문학뉴스를 보았다. . 서울 시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허여물그럼한 서울 사람으로 자란 큰형, 작은형, 누나와는 달리 나는 어린 시절 서울 근교 시골에서 원예 꽃 농장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꽃 속에서 태어나고 꽃 속에서 자랐다. . 의사를 하는 내 큰형은 언젠가 형제들 술자리에서 내가 꽃 농장에서 나고 자라 감수성이 풍부하여 문학가로 살아갈 줄 알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사생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기도 했으니 이루지 못한 그 기대는 나름으로 일리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 이런저런 시도 쓰고 산..

[은미희 신작 단편소설 '활착']

이 단편소설 '활착'은 '문학들 2021.여름 제64호'이라는 문학잡지에 실린 단편소설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우수문학잡지이고, 시, 소설, 동화, 평론 등을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입니다. . 중견 여류소설가 은미희 선생님께서 송구하고 영광스럽게도 부족한 저를 대상으로 '활착'이라는 단편소설을 문학잡지 '문학들 2021 여름 제 64호'에 내주셨습니다. 그 '활착'이라는 단편소설을 작가 은미희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공개합니다. 활착에 등장하는 노란 장미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한 감상평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에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은미희 작가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그리고 ... . 독자제위께. 작가님께서 제 블로그에 있는 저에 대한 논픽션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집..

[멸사봉공 (滅私奉公)이 멸사봉공(滅私俸公)이 된 이유]

멸사봉공(滅私奉公)은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힘쓴다는 말이다. 이 말의 출전은, 당나라 시인 원진(元稹)이 쓴 '최릉수상서호부시랑제(崔稜授尙書戶部侍郞制)'라는 글이다. 그 가운데 " 其職嚴而不殘. (기직엄이불잔) 辟名用物者逃無所入, (피명용물자도무소입) 滅私奉公者得以自明. (멸사봉공자득이자명) . 그 직책은 엄격하고 결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물건을 제멋대로 쓴자는 도망치다가도 들어갈 수 없으며,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변됨을 받드는 자만이 스스로 명백함을 얻을 수 있다 " 에 나온다. .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을 공(公)의 상징으로 삼아 전제왕정의 전체주의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도입한 국민수신(國民修身)의 원리가 멸사봉공(滅私奉公)이다 보니, 식민지를 거친 한국에..

욕조 - 이산하

. 어렸을 때는 겨울 저수지에 빠져 간신히 죽다가 살았고 젊었을 때는 욕조에 빠져 평생 먹을 물을 하루에 다 먹은 적이 있었다. 헌법이 태어난 넓이 107x60cm, 깊이 50cm 그 이후 이 세상은 작은 욕조였고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도 욕조였다. .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 모조품 노점상에서 내 영혼이 감전될 것 같은 게 눈에 띄었다. 금방이라도 표면이 심연임을 증명할 것 같은 자코메티의 조각상 ‘걷는 사람’이었는데 난 얼른 운구해 빈 욕조 안으로 입관했다. 그때부터 욕조가 봉쇄수도원으로 바뀌었다. . - 《악의 평범성》, 이산하(Lee Sanha) 시집, 창비시선 453, 중에서. . 19살 전북대 1학년생이었을 때인 1980년 5월부터 9월 1일까지 11대 체육관 대통령 전두환이 국민화합 대사면..

실리콘벨리 서울 문고 - 이산하 시인의 시집 ‘악의 평범성’

최근 한국에서는 눈길을 잡는 시집이 출간됐다. 이산하 (Sanha Lee) 시인의 시집 ‘악의 평범성’이다. 이산하 시인은 내가 한국을 떠나던 1988년 말 나에게 굵은 각인을 남겨준 분이다. . 미국에서도 한국 온라인 서점을 통해 한국 서적의 구매가 가능하다. 이산하(이상백) 시인이 ’한라산’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새롭게 낸 시집 ‘악의 평범성’을 주문하려다 제법 높은 학벌의 한인이 밀집한 이곳 실리콘 밸리 지역 한인들이 쉽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산타 크라라 한인촌에 있는 서울문고(1082 E El Camino Real, Sunnyvale, CA 94087, 1-408-246-2300)가 떠올랐다. 이곳 교민들이 한국장을 보러와서 서울문고를 들러 직접 가서 사 볼 수 있도록 이야..

역사를 위한 클린-컷(Clean-Cut)

루마니아는 1989년 3백만 인민들이 봉기하여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유 루마니아를 만들었습니다. 제 루마니아 친구 중에는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한 역사의 산증인도 있습니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하에 절어있던 루마니아 인민들은 목숨을 걸고 스스로 봉기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 그런데 미국 CIA와 러시아의 KGB 요원들이 각기 영향력 있는 루마니아 사람들을 포섭하여 항쟁 지도부를 만들고 교육하였습니다. 제 루마니아 친구는 미국 쪽에서 구성한 항쟁지도부에 속하였습니다. 그들은 루마니아 인민으로 위장하여 군중 집회에서 폭음탄을 터트려 민중봉기를 이끌었습니다. . 그 과정에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에 등을 돌린 군인들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체포했습니다. 그때 항쟁에 참여한 인민들은 독재자를..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를 통해 본 봄]

명나라 초기를 대표하는 시인 高啓(고계, 1336~1374)는 벼슬에서 물러난 자유인으로서, 아름다운 강남 땅을 배경으로 구슬과도 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하지만 高啓가 지은 시문이 천자의 비위를 거스르는 바람에, 高啓는 수도로 끌려가서 허리가 잘리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형벌을 당했다. 예술의 꽃이라는 시가 공포와 광란의 도끼로 돌변하기도 한 대표적인 경우가 高啓에게 있었다. . 지운 선생이 애송한 高啓의 尋胡隱君(심호은군-은군자를 찾아서)은 피비린내 나는 高啓의 최후와 달리,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봄바람 부는 강 길을 가니 집에 이른 줄도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봄을 읊은 詩로 포근하고 환한 봄날의 아름다운 개나리 꽃같은 시다. . 渡水復渡水(도수부도수) 물을 건너고 또 물을 건너 看花還看花(간화환..

要識梅花無盡藏(요식매화무진장)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서화 작품

아직도 내 부친 방원 선생 서화보따리 유품에는 정리해야 할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 요세미티 캠핑에서 돌아오면서 샌츠럴 밸리 아몬드 농장에 만개한 아몬드 꽃속을 거닐면서 지운 김철수 선생이 남긴 이 작품이 생각났다. . 要識梅花無盡藏(요식매화무진장) – 매화가 무진장함을 아니 人人襟袖帶香歸(인인금수대향귀) – 사람마다 옷깃과 소매에 향기를 띠고 돌아간다네 . 사회주의 운동가로 살다간 지운 김철수 선생도 매화밭에 만개한 매화 속을 거닐며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것 같다. .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