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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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 883

要識梅花無盡藏(요식매화무진장)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서화 작품

아직도 내 부친 방원 선생 서화보따리 유품에는 정리해야 할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 요세미티 캠핑에서 돌아오면서 샌츠럴 밸리 아몬드 농장에 만개한 아몬드 꽃속을 거닐면서 지운 김철수 선생이 남긴 이 작품이 생각났다. . 要識梅花無盡藏(요식매화무진장) – 매화가 무진장함을 아니 人人襟袖帶香歸(인인금수대향귀) – 사람마다 옷깃과 소매에 향기를 띠고 돌아간다네 . 사회주의 운동가로 살다간 지운 김철수 선생도 매화밭에 만개한 매화 속을 거닐며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것 같다. .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馬太福音 第十章第二十八節 (마태복음 제십장제이십팔절) 서화 작품]

那殺身體不能殺靈魂的(나살신체불능살령혼적)、不要怕他們(불요파타문).惟有能把身體和靈魂都滅在地獄裡的(유유능파신체화령혼도멸재지옥리적)、正要怕他(정요파타) 。 馬太福音 第十章第二十八節 (마태복음 제십장제이십팔절) 八十九翁 遲耘(팔십구세옹 지운)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장28절 98세 늙은이 지운 . 마태복음 10장은 예수가 12제자(弟子)를 불러서 권능(權能)을 주고 전도(傳道)를 명(命)하며 제자들이 박해(迫害)를 받을 것이라 알렸다. 그러면서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할 분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 그 말씀이 10장 28절이다. "...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靈魂)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摩訶般若波羅蜜多⼼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서화 작품]

摩訶般若波羅蜜多⼼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在菩薩 ⾏深般若波羅密多時 照⾒ 五蘊皆空 度⼀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가지[색(⾊)ᆞ수(受)ᆞ상(想)ᆞ행(⾏)ᆞ식(識)]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 . 舍利⼦ ⾊不異空 空不異⾊ ⾊卽是空 空卽是⾊ 受想⾏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불이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고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행동과 의식 또한 그러하 느니라. . 舍利⼦ 是諸法空相 不⽣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불이여! 모든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陳子昻(진자앙)의 登幽州臺歌(등유주대가)' 서화 작품]

前不見古人(전불견고인): 앞선 옛사람 보이지 않고 後不見來者(후불견래자): 뒤에 올 사람도 보지 못하여 念大地之悠悠(염대지지유유): 천지의 유구함을 생각하자니 獨愴然而涕下(독창연이체하): 홀로 슬픔에 겨워 눈물이 흐른다 . 이 서화도 지운 선생이 내 큰형 泰遠君을 위해 남기신 거다. 내 큰형 집이 크기는 하지만 누가 표구나 부를 해서 주어도 더는 늘어서 놀 자리가 없을 듯하다. 내가 잘 보관했다가 부나 족자나 표구를 해서 선물로 주던가 아니면 박물관을 만들어 보관해 보도록 해야겠다. 함께 올린 그림은 인터넷 서치로 찾은 건데 오래전 어느 중국 작가가 잘 표현한 것 같아 모셔온 거다. 아무튼 화딱지를 이 정도로 장엄하게 표현하다니 陳子昻(진자앙)은 대인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陳子昻(진자앙)을 본받고자 한..

어머니 윤선 이춘연 여사 전여고(1회) 시절 사진들 ...

원래 내 모친은 음력 1932년 6월 10일 생이다. 그런데 호적에는 1933년 10월 10일로 신고가 되었다고 한다. 전주여고가 1926년 4년제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설립되었다가 1951년 9월 25일에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정식 전주여자고등학교로 학제가 변했다. 그래서 1952년(단기4265년) 3월 25일 전주여자고등학교 3년제가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했고 그때 졸업을 하셨다. 동기동창으로는 가수 이문세 선생의 장모이신 고 #육완순(陸完順, 1933년 6월 16일~2021년 7월 23일) 전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서양화가 오승우 선생 부인이신 고 정금자(1932~2020년 8월 2일) 여사, 이화여대 통일교 결혼식 사건의 주역으로 숙명여대로 편입해 졸업하여 평생 문선명 목사를 도와 ..

[滿洲(만주) 吉林省(길림성) 前郭期(전곽기)]

내 조부 고 이성구 선생은 8살(1915년) 때 할아버지(성우 이명직 대감)가 고종 측근 제거할 때 일제에 독살당하고 11살(1919년) 때 아버지(이철규 금광국기수, 평북 동 면장, 충주문성금광주)가 고종 독살 의문에 항의하자 일본 헌병에 척살 당하고 혈혈단신 수원태광보통학교와 수원농림을 졸업하고 만주에서 미곡수집회사에 근무하다 만주국이 들어서자 만주국 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만주 길림 전곽기에서 미곡검사관으로 근무했다. . 이곳에서 지운 김철수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를 오갈 때 안전한 은신처와 군자금을 조달했다. 지운 김철수 선생은 이곳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를 개최하고 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한다. 그런 인연으로 해방 후 지운 김철수 선생은 창경궁 식물원을 책임지고 있던 그 아들인 방원 이성찬 선생..

[昌德宮 祕苑과 昌慶宮 植物園]

내 父親 芳園 李盛粲 先生이 昌慶宮 植物園에 勤務할 때 寫眞들이 書畫보따리 屬에서 나왔다. 昌德宮 祕苑은 一般人이 함부로 들락날락하지 못할 때다. 昌慶宮 植物園에 勤務한 㥁으로 祕苑 이곳저곳에서 恨 것 멋을 내어 寫眞으로 남기셨나 본데 寫眞 크기가 旅券 寫眞 크기 程度로 작고 빛이 바랬다. . 元來 昌慶宮 植物園에 있는 雄壯한 琉璃 溫室은 日帝强占期 때 有名한 獨逸의 建築家가 設計하고 建築했다고 한다. 解放後 美軍政 時節에 琉璃가 많이 깨지고 構造物이 망가졌다. 어찌 補修해야 할지 苦悶을 했는데 芳園 先生이 혼자서 原來 模襲으로 감쪽같이 補修했다고 한다. . 그 以後로 이곳저곳의 琉璃 溫室은 芳園 先生이 다 施設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에 外國 孫吟이 오면 꼭 구경시키는 名所가 되었고 다들 韓國에도 西歐..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선생의 서화 작품

一言不中千語無用 (일언부중천어무용) - 한 마디의 간단한 말이 (이치理致와 도리道理에) 맞지(적중的中,適中하지) 않으면 천 가지(수없이 많은) 말이 소용(所用,쓸모,효과,믿음)이 없게 된다. 즉 한 마디 말이 맞지(옳지) 않으면 천 가지 말이 쓸데가(소용所用이) 없는 것이다. . 명심보감 언어편에 나오는 말이다. 족자로 되어있는 월남 이상재 할아버지의 서화다. 난닝구 바람의 내 부친 방원 선생이 생전 거실에 걸어놓고 감상하던 작품 중에 하나다. 필경 두형이나 누나 또는 여동생이 챙겨서 잘 보관할 것이다. 집안 한산이문의 어르신의 서화니 그분의 가르침을 명심하고자 챙겼을거다. . 마침 내부친 서화보따리 속에 사진이 있어 사진으로라도 남겨두고자 이곳에 소개를 한다. 늘 집에서도 의복을 잘 가추고 계셨는데 날..

동양화가 일호(一湖) 이수표(레오) 선생 작품

일호 이수표 선생은 내 부친 방원 선생의 어린 시절 친구로 내가 1988년 12월 미국 유학을 떠나올 때까지 나도 자주 뵙던 분이다. 나는 수표 아저씨라 불렀다. 내 부친 방원 선생을 비롯해 방원 선생의 친구분들은 다들 기골이 장대하고 큰아기들도 눈을 멈추게 만드는 미남에다 멋쟁이들이었다. 수표 아저씨도 그랬다. . 수표 아저씨는 내 어린 시절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판매하셨는데 덕분에 우리 집에도 한 질이 구비되어 방원 선생의 친구분 이종익 선생의 신구문화사 아동문학 전집, 한국문학 전집, 세계문학 전집과 더불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내가 심심하면 들추어 보던 책들이었다. . 워낙 기인이셔서 책 팔아서 번 돈을 섬에다 별장을 짓겠다고 배 한 척 없이 인천 앞바다의 어느 섬을 하나 사셨는데 후일담을 들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求者得之(구자득지) 서화 작품]

李後白(이후백)의 求者得之(구자득지) . 맹자(孟子)의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 3번째 첫 구절에 ‘孟子曰求則得之(맹자왈구즉득지)’가 나온다. 지운 선생이 고작 선문답처럼 성경 구절처럼 ‘구즉득지(求則得之)*, 구하면 얻을 것이다’라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 같은 휘호를 남겼을 리 없다. . 지운의 생전 말씀이나 품성으로 볼 때, 이는 栗谷(율곡) 李珥(이이)의 石潭日記(석담일기)에 나오는 이후백(李後白)의 이야기를 하시고자 함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求者得之(구자득지)’로 압축하셨을 거다. 석담일기는 율곡 선생이 관직 생활 중에서 보고 들은 것과 경연에서 강론한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한 일기다. 석담일기에는 당대를 이끌어간 적지 않은 인물이 나오는데, 대부분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혹..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이 바라 본 해방후 남과 북]

지운 선생이 북으로 가지 않은 이유가 몇가지 있지만 1950년 6.25 전쟁을 통해서 확인한 미국과 러시아의 심중을 확인한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 阿彌陀佛非聾漢(아미타불비롱한) 아미타불은 귀머거리가 아닌데 念念彌陀奈爾何(염염미타내이하) 미타를 외고 또 외니 그대를 어찌할거나 辛酉春(1981년 신유년 봄) 叕叟(철수) - [양금섭 선생님 해설] . 지운 김철수 선생은 1945년 해방정국에서 우익과 민족주의 세력 그리고 좌익 성향의 인사들이 일본강점기에 이어 미 군정하에서도 서로 패권 다툼에 혈안이 된 걸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함에도 지운 김철수 선생은 그 패권다툼의 아수라판에서 좌익의 박헌영과 우익의 이승만 간의 영수 회담을 주선하는 등 민족의 비극을 막아보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

동양의 피카소가 남긴 수묵화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 보따리 속에 畔影(반영)이라는 분의 설경 수묵화가 있다. 작은 강 건너 눈 덮인 초막 마당에 눈을 치우는 사람도 있다. 도무지 반영이라는 분이 누구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낡은 노란 종이 쪼가리에서 “東洋のピカソ(동양의 피카소)”를 발견했다. 바로 하반영(河畔影) 김구풍(金俱豊, 1918~2015) 선생의 작품인 것이다. . 반영 선생은 1918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부친의 직장을 따라 영동, 대전 등지로 옮겨 다니며 살다가 군산에 정착했다. 일곱 살 때 서예와 수묵화를 통해 처음 붓을 잡은 반영 선생은 1931년 철모르는 나이 13세 때 금릉 김영창(1910-1988) 선생의 강력한 추천과 권유로 조선총독부미술전람회에 ‘나팔꽃이 있는 정물’이란 유화 작품을 익명..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岳陽樓記(악양루기) 서화 작품]

大韓民國의 政治指導者는 勿論이고 上·下位 모든 公職者가 銘心해야 할 가르침 . 중국의 배꼽쯤 되는 중부의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岳陽市) 인근에는 중국말로 ‘뚱띵호’라고 경상도보다 크고 제주도 면적의 2배를 넘는 동정호(洞庭湖)가 있다. 원래 중국 최대의 담수호였는데 퇴적물이 싸여 파양호(洞庭湖)에게 1위를 넘겨주고 2번째로 큰 담수호가 되었다. 이 거대한 호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악양루(岳楊樓)다. 중국 북송(北宋) 시절인 인종 경력(慶曆) 4년(1044년), 范仲淹(범중엄, 989~1052)의 친구인 등자경(滕子京, 990-1047)이 파릉군(巴陵郡)의 태수로 좌천되었다. 이듬해인 1045년 악양루를 중수하였는데, 이때 범중엄을 초빙하여 글을 부탁했다. 범중엄이 1046년에 쓴 글이다.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樂山樂水(요산요수) 서화 작품]

樂山水以養志(요산수이양지) 吟風月而休神(음풍월이휴신) - 강산을 벗하여 의지를 굳건히 하고자 자연을 노래하며 정신을 안정시킨다. 원래 樂山樂水인데 댓구를 위해 뒤의 樂는 생략했다. [양금섭(Kyzbma Yang) 선생님 해설] . 論語集注(논어집주) 옹야 제6(雍也第六)편 21; 子曰(자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知者樂水(지자요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仁者樂山(인자요산).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知者動(지자동)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仁者靜(인자정)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知者樂(지자요)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仁者壽(인자수)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를 이야기 한 것이다. .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밝아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돌..

[비록 微視(미시)에서 패배하여도 巨視(거시)에서 승리하는 길]

지운 김철수 선생이 93세 되던 해이고 작고하시기 1년 전인 1985년 3월 청명절에 ‘동중서(蕫仲舒) 선생의 아래 시(詩)’를 남기셨다. “ 處世柔爲貴 (처세유위귀) 세상을 사는 데는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라 剛强是禍基 (강강시화기) 굳세고 강하기만 한 것이 재앙의 근원이니라 發言常欲訥 (발언상욕눌)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천천히 하려 하고 臨事當如癡 (임사당여치) 매사에 임할 때는 마땅히 어리석은 듯이 하라 . 急地尙(常?)思緩 (급지상사완) 급한 지경을 당하면 항상 천천히 생각해 보고 安時不忘危 (안시불망위) 평안할 때에도 위태롭던 때를 잊지 말지어다 一生從此計 (일생종차계) 한평생 이러한 인생의 계략을 잘 실행해 나간다면 眞個好男兒 (진개호남아) 진실로 호남아라 하리라 “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

[주역(周易) - 자질(資質)을 갖춘 大人의 위대(偉大)함]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중 지운 선생 서화에 與天地 合其德(여천지 합기덕) 與日月 合其明(여일월 합기명) 이 있다. . 분명 어딘가에 與四時 合其序(여사시 합기서) 與鬼神 合其吉凶(여귀신 합기길흉) 이 있을 거다. . 나오면 함께 올리려 했는데 이제 2시간 가까이 남은 신축 새해를 맞이하며 이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사효(九四⽘) 문언전(⽂⾔傳)에 나오는 夫大人者(부대인자), 자질(資質)을 갖춘 大人의 위대(偉大)함이 무엇인가 나누고자 한다. .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사효(九四⽘) 문언전(⽂⾔傳)에서는 易을 세 가지 시대로 분류하는데, 선천(先天)은 복희(伏羲)의 易이요, 후천(後天)은 주역(周易)이요, 중천(重天)은 정역(正易)이라고 한다. 周易의 乾卦 다섯 번째 효(⽘)에 대한 공자의 주석 일..

[설산(雪山) 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 선생에 대한 오해와 그 진실]

1921년 5월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년~1986년 3월 16일) 선생의 조선 사회혁명당과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1935년 1월 31일) 선생의 러시아 한인사회당이 연합하여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당했다. 고려공산당은 코민테른의 동양권 지도당으로서 공산혁명 자금을 집행하게 되었다. 자금 집행 중앙위원으로서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일세(一洗) 김립(金立, 본명 金翼容, 가명 楊春山 1880년~1922년 2월 6일) 선생은 1. 중국공산당 창당 지원, 2. 일본효민공산당 창당 지원, 3. 민족주의단체 포함 항일단체 자금지원, 4. 언론매체 창간지원, 5. 조선과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가 구미 유학 지원 등을 거침없이 집행하기 시작했다. . 이때 고려공산당의 대표 이동휘..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글픈 이야기]

지운 김철수 선생의 이야기를 페이스북, 블로그에 그분의 서화와 함께 소개하다 보니 별 인간들이 빨갱이라 비난하고 또 어떤 이는 잘못된 이야기라 항의하고 또 어떤 이는 소설 쓰지 말라며 비난한다. 아무튼, 아직 절반도 숙독하지 못하였으나 해방 이후부터 시간대별로 정리하여 주마간산 격으로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찰과 메모 등을 훑어보았다. . 해방 이후부터 지운 김철수 선생이 작고하던 1986년까지 일분일초도 남한 땅에서는 좌익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지운 선생이 조선의 사회주의 역사에 차지하는 부분의 무거움을 알고 수많은 관심자들이 몰려들어 물어보고 녹음하고 취재도 하여 언론 보도도 더러있었지만 지운 선생은 주변 지인들과 남아있는 식솔들을 위해 말을 아끼고 살수 밖에는 없었다. . 지운 선..

[독립운동을 망친 여운형과 박헌영 그리고 이루쿠츠크파(irkutsk派) '고려공산당']

박헌영(朴憲永, 1900~1956)은 1900년 5월 충남 예산에서 몰락한 양반·지주 영해(寧海)박씨 박현주(朴鉉柱)와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서자로 출생했다. 생모는 과부에서 재가한 이학규(李學圭)다. 대흥소학교 졸업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며 YMCA 활동을 했다. 미국 유학을 꿈꾸었고 일본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도 했다. 그러다 상해 고려공산당에서 구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1920년 11월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그 당시 중국 상해는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 ~ 1935년 1월 31일)의 러시아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과 지운(芝雲 혹은 遲耘)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3월 16일)의 조선 사회혁명당이 상해파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독립운동을 망친 여운형과 박헌영 그리고 이루쿠츠크파(irkutsk派) '고려공산당']

박헌영(朴憲永, 1900~1956)은 1900년 5월 충남 예산에서 몰락한 양반·지주 영해(寧海)박씨 박현주(朴鉉柱)와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서자로 출생했다. 생모는 과부에서 재가한 이학규(李學圭)다. 대흥소학교 졸업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며 YMCA 활동을 했다. 미국 유학을 꿈꾸었고 일본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도 했다. 그러다 상해 고려공산당에서 구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1920년 11월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그 당시 중국 상해는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 ~ 1935년 1월 31일)의 러시아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과 지운(芝雲 혹은 遲耘)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3월 16일)의 조선 사회혁명당이 상해파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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