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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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 883

[국공합작(國共合作)의 원조(元祖) 성재(誠齋) 대자유(大自由)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1935년 1월 31일) 선생]

https://youtu.be/qVfp1QEiP6g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고려인들이 코민테른의 혁명자금만 노리는 분파와 분열만 획책하는 혁명화 대상의 적성 민족으로 각인시키는 비극의 실마리 제공 . 러시아 조선인들은 레닌을 도와 1917년 러시아혁명을 성공한다. 1918년 이동휘 선생은 러시아 한인사회당을 만들고 1919년 레닌의 측근 박진순(朴鎭淳, 1898~1938) 선생을 코민테른에 파견한다. 하지만 한인사회당의 부실한 조직력과 사회주의 정강의 미숙함을 들어 코민테른 국제당 승인과 지원을 보류한다. . 이동휘 선생은 조직력 강화를 목적으로 국공합작(國共合作)을 단행한다. 1919년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에 참여하며 국무총리에 취임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강 요건을 맞추지 못하자 코민테른에서는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8폭, 4폭 병풍 ⼈問寒⼭道(인문한산도) 작품]

청말(淸末) 화가 육회(陸恢)의 '한산행려(寒山行旅)' - ⼈問寒⼭道(인문한산도) . 人問寒山道(인문한산도) : 사람들은 한산 가는 길 묻지만 寒山路不通(한산로불통) : 한산 가는 길은 통하지 않는다오 夏天氷未釋(하천빙미석) : 여름날에도 얼음이 녹지 않고 日出霧朦朦(일출무몽몽) : 해가 떠도 안개가 자욱하다오 似我何由屆(사아하유계) : 내 흉내 내려도 어찌 그렇게 하나 與君心不同(여군심부동) : 그대와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을 君心若似我(군심약사아) : 그대의 마음이 나와 같다면 還得到其中(환득도기중) : 그 가운데에 있을 수 있으련만 . 한산(寒山)이란 인명(人名)임과 동시에 산 이름(山名)이기도 하고 또한 수행을 통해 도달해야 할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산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

[지운 선생과 방원 선생]

1945년 해방되던 해 1927년생 내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1927~2018) 선생은 경성원예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왕직에서 운영하던 창경궁 식물원 원장으로 취직했다. 말이 원장이지 혼자 서구식 유리온실을 관리하는 막일꾼이었을 거다. 만 18세 청년으로 그 창경궁 식물원은 사회에 첫걸음을 걷는 직업이었다. 1893년생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은 해방을 맞아 공주감옥에서 출옥하여 서울에서 장안파들과 남북으로 갈려질 조국의 운명에 노심초사하며 좌우익을 설득하여 분단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서로 우두머리가 되어야겠다고 치사하고 야비한 음모나 꾸미는 좌우익 정치가들을 대하며 얼마나 골머리를 썩여야 했을까? 지운 선생에게 창경궁 식물원은 그나마 머리를 식힐 곳..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해방이후 서찰 1/2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이 해방이후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1927~2018)선생에게 보낸 서찰 1/2 1945~1955 서울 종로구 종로1가 신신백화점 화원 1956~1965 서울 용산구 한남동 544번지 식물원 1966~1973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조종리 199-2번지 방산식물원 1974~1977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199-2번지 방원식물원 이어서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이 해방이후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1927~2018)선생에게 보낸 서찰 2/2 로

[芮春浩 (예춘호 1927~2020) 선생 작품 - 柳宗元(유종원) 江雪(강설)]

방원 선생 유품 중에 1969년 4월 15일 3선개헌에 반대한 4 · 8항명 공화당 국회의원 중에 한분인 목촌(牧邨) 예춘호(芮春浩, 1927년 2월 7일 ~ 2020년 7월 22일) 선생의 쓰신 柳宗元(유종원)의 詩句 江雪 (강설) 서화도 눈에 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때도 고생을 하신 분으로 부산 동아대 출신 ... . 千山 鳥飛絶 (천산 조비절)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逕 人蹤滅 (만경 인종멸) 길에는 사람 자취도 끊어졌네 孤舟 簔笠翁 (고주 사립옹) 도롱이에 삿갓차림 늙은이, 한 척 배 띄워놓고 獨釣 寒江雪 (독조 한강설) 눈 내리는 겨울 강에 홀로 낚시를 하고 있네. 柳宗元 詩句 (유종원 시구) 癸未新春 (2003년 계미신춘) 芮春浩 (예춘호) . +++ Kyzbma Yan..

[忍齋書巢(인재서소)]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이 내게 내린 휘호 '忍齋(인재)'와 '忍齋書巢(인재서소), 인재의 작은 책방'이다. '忍齋'라는 호는 내 초등학교 시절, 동네 오학진 국회의원 흉내를 내며 연설을 하고 초등학교 어린이회장에 출마하여 4, 5, 6 학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보시곤 3형제 호를 지어 주신다며 내린 호다. 기억에 큰형은 신재, 작은형은 노재, 나는 인재다. 언젠가 작은형 집에 가보니 액자를 만들어 잘 간직한 걸 보았다. 어린 시절 위아래 가리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려 드는 내 모습을 보시고 참을 忍자를 생각하며 살라고 지어 주셨지만 난 지운 선생과 의재 선생의 그 깊은 뜻을 받아 담을 그릇이 없었다. . 1. 참을 忍자를 명심하고 살았다면 고등학교 1학년 ..

[질투(嫉妬)가 지배하는 파멸(破滅)로 가는 소인배(小人輩)의 나라]

https://youtu.be/dwI4WVvi1ok 러시아 내 20만 고려인에 대한 스탈린의 강제이주의 이유 - 자유시 참사까지 유발하며 패권 쟁탈에만 골몰하는 종파 분자에 미국과 일본의 첩자가 많은 혁명화 대상 민족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서찰 등을 일별하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은 '질투(嫉妬)가 지배하는 파멸(破滅)로 가는 소인배(小人輩)의 나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분열(分裂)과 자멸(自滅)을 막는 길은 수신(修身)일 겁니다. 바로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한국인의 인식을 바꿔야'만 한다는 거지요. . 1917년 박진순 선생,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 선생 등이 레닌과 함께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한 민족적 ..

[식분(識分) - 자기 분수를 알라! -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한국인의 인식을 바꿔야']

https://youtu.be/dwI4WVvi1ok 백낙천 시에 '식분지족(識分知足) 외무구언(外無求焉)'이라고 '자기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 알면 밖에서 또 뭘 구하리요'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불교도인 동정 선생은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식분(識分)' 휘호로 방원(芳園) 선생의 중년 시절 호인 방산(芳山)을 위해 남기셨다. 미천한 입장에서 그 심오한 뜻은 뒤로하고 '자기 분수를 알라'는 확실한 거 같다.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서찰 등을 일별하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은 '질투(嫉妬)가 지배하는 파멸(破滅)로 가는 소인배(小人輩)의 나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분열(分裂)과 자멸(自滅)을 막는 길은 수신(修身)일 거다. 바로 '배고픈 건..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 1925~1975)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중에 동정 박세림 선생의 작품도 있다.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1925~1975) 선생은 1925년 4월 강화도 내가면 황청리에서 부친 밀양 박씨 동관(東觀) 박헌용(朴憲用) 선생과 어머니 유(柳) 씨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 동정 선생은 6세 때 한문과 궁체에 조예가 깊은 할머니 밀양 변(卞)(1862~1932) 씨로부터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웠다. 변(卞) 씨 할머니가 동정 선생에게는 첫 스승이었다. 2년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동정 선생은 부친으로부터 직접 서예를 배웠다. . 동정 선생의 부친 동관(東觀) 박헌용(朴憲用)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강화도 역사책인 강도지(江都誌)를 간행한 문필가였다. 동정 선생의 서예에 있어 가학(家學)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

[우경희(禹慶熙, 1924-2000)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중에 소품들이 제법 있는데 삽화 같은 연하장들이 또 엄청 있다. 그중에 우경희 선생의 삽화가 눈에 띈다. 방원 선생이 창경궁 식물원, 청량리 원예연구소 분소, 경무대 온실, 한남동 식물원, 부천 소사의 식물원 등 꽃 속에서 사셨으니 그림을 그리는 친구분들이 어쩔 수 없이 많을 수밖에는 없었다. . 언제나 식물원 구석구석에는 스케치하는 화가분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중에 우경희 선생도 있었다. 우경희(禹慶熙, 1924-2000) 선생은 1924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경기중과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분이다. 개성에서 중학교 미술 교사를 하다가 개성에 있던 미군 문화원(USIS)에 스카우트되어 선전 선동 포스터를 그리다 한국전쟁이 터져 서울로 피난 나왔다. . 그때 만화가 유용하다는..

[己未回羊(기미회양) - 지운 선생과 2.8독립선언서]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己未回羊(기미회양)' 작품 지운 선생의 이 작품은 '기미회양(己未回羊)'이다. 지운 선생이 일본 유학시절 유학생 동지들과 함께 1919년 동경 YMCA에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할때가 1919년 기미(己未)년이었다. 다시 기미년이 돌아온건 1979년이다. 60갑자의 기미년을 다시 맞이하신 1979년이 의미가 크셨을 거다. 그러니 '기미회양(己未回羊)'을 여러장 남기셨다. . 생전에 지운 선생은 용서하기 힘든 미운 놈 하나를 들라면 정읍의 나용균(羅容均)이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나용균은 함께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는데 인간이 되어 동지로 사귀었다고 한다. 미적거리는 춘원 이광수도 달래고 또 나용균도 달래서 2.8독립선언도 함께했다. 글 잘..

[한길 일로(一路) 김종기(金鍾起, 1911~1984) 선생의 작품]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 작품 속에 한길 일로(一路) 김종기(金鍾起, 1911~1984) 선생의 작품들이 있다. 아마도 방원 선생이 남농 허건 선생과 친하게 지내신 인연으로 김일로(金一路) 선생과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김일로(金一路) 선생 49세때인 1959년 3월 1일 부터 3월 10일까지 남농(南農) 허건 선생과 김일로(金 一路) 선생의 시화전을 목포 여정다실에서 개최할 정도로 남농 선생과는 절친했다. 당시 동양화의 화제(畵題)를 한글시로 대체한 최초의 한글시 부제시화전(副題詩畵展)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었다. . 생전에 호에 성을 붙여 김일로(金一路)를 사용하셔서 많은 이들이 김일로(金一路)를 성함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김일로(金一路) 선생은 전남 장성에서 1911년에 출생하여 전남과 광주의 아동..

[先從隗始(선종외시) - 허헌(許憲, 1885~1951) 선생]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先從隗始(선종외시)' 작품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서화 휘호 선종외시(先從隗始)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재상 곽외는 죽은 말의 뼈를 천금으로 살 정도로 천리마(千里馬)를 귀하게 구했다는 매사마골(買死馬骨)처럼 인재를 모을 때는 곽외부터 먼저 시작하여 인재를 모으라는 뜻이다. . 참고로 양금섭 선생님의 새김 순서를 보면 '먼저[先] 외[隗]로부터[從*전치사 from] 시작하소서[始]'로 의미는 '모수자천(毛遂自薦)과도 같은 훌륭한 인재를 구하시려거든 보잘것없는 사람, 즉 자신인 외와 같은 사람을 등용 시켜 천하에 소문부터 내라는 뜻'이다. . 지운 선생이 허헌(許憲, 1885~1951) 선생을 만난 게 19..

[堅持直操(견지직조) - 金立 선생의 삶]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堅持直操(견지직조)' 작품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서화 휘호 중에는 '堅持直操(견지직조)'도 많이 보인다. 원래 堅持雅操(견지아조)라고 '굳게 맑은 지조를 간직하라'는 뜻으로 중용(中庸)에 "군자는 편안하게 거처하며 명을 기다리지만(居易以俟命) 소인은 험한 짓을 일삼으며 요행을 구한다(行險以行)"고 하고 '좋은 벼슬이 저절로 얽혀든다'는 호작자미(好爵自縻)가 후구로 쓰인다. 하지만 지운 선생은 우아할 아(雅) 대신 곧을 직(直)을 사용했다. 군자는 그 지조가 확고부동(確固不動)하여 항구한 덕이 있는 반면, 소인은 그 마음이 표리부동(表裏不同)하여 수시로 변덕을 부린다. 그러니 올바른 지조(志操)를 굳고 곧게(直)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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