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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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 이성찬 111

남계(嵐溪) 박진주(朴鎭柱, 1929~2004)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유품인 지운 김철수 선생 서화 보따리에는 고 남계(嵐溪) 박진주(朴鎭柱, 1929~2004) 선생의 작품도 몇점 눈에 들어온다. 남계 선생은 동양화가이자 서예가이며 고화 감정사로 1929년 (1931년생이라는 설도 있으나 본인이 29년생이라고 생전에 말씀하셨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서 밀양박씨 청재공파 중의 장파집 박선(朴宣)의 후손으로 아버지 박천배(朴天培)와 어머니 진주하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조옥희여사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진도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를 중퇴한 남계 선생은 목재(木齋) 허행면(許行冕, 1906~1966, 의재 선생의 4째아우),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 소전(素荃) 손재형(孫在馨, 190..

지운 김철수 선생의 생전 서화보따리

주말에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중에 둘둘말아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생전 서화보따리를 풀어 더이상 서화가 상하지 않도록 바인더에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2폭 4폭 7폭 8폭 12폭 병풍용 서화포함 300여점까지 숫자를 세다가 포기를 했다. . 지운이라는 호를 쓰지 않고 김철수라 실명을 서화에 쓰기시작할때부터 모인 서화이니 족히 천점이 넘어가는 것 같다. 그중에 신문 스크랩도 하나 있다. 내 부친은 1989년 11월 24일자 한겨레신문 13면에 실린 이종찬 기자가 작성한 지운 김철수 선생의 전면기사를 오려 놓았다. . 수많은 지운선생 서화중에는 작고한 분들로는 의제, 남농, 구당, 석파, 옥산 선생 등과 나눈 서찰과 서화가 더러있고, 생존하는 분들로는 옥전, 동곡, 향설당, 등등 그분들의 서화도 더러 포함되어..

방원 이성찬 선생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증조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 - 시계

한국뉴스가 미국 가쉽잡지에서나 볼만한 기사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중에 하나가 신천지교주의 시계사진이다. 박근혜가 새누리국회의원들에게 주었다는 금장시계다. 그게 정말 기사거릴까? 너무 보도가 선정적이고 선동적이고 이것저것 추측과 추론을 늘어놓는다..지난 12월, 난 내 증조부가 문성금광을 했다는 눈이 소복하게 싸인 충주 금방산(국망산)을 내 각시와 오르고 있었다. 700고지의 산이 제법 가파르고 군대 군대 암벽에 밧줄로 이어진 곳도 있었다. 버려진 나무를 지팡이 삼아 눈싸인 밑에 낙엽싸인 길을 오르고 있었다..갑자기 지팡이 끝에 뭔가 툭하고 튀겼다. 시계였다. 제법 근사한 스위스제 티소트 시계로 백불정도 하는거였다. 아직도 열심히 초침이 돌고 있었고 상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날짜는 20여일이 앞섰으니 누..

[단독 발굴]서찰을 통해 본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 독립지사

1916년 일본에서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과 1920년 조선에서 사회혁명당을 만들었고 1921년 성재 이동휘 선생과 함께 상해 고려공산당 창당의 주역이며 1926년 6월 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3000명 이상의 조직원이 일경에 체포되어 조선공산당이 해체된후 2차 후반기 조선공산당과 1926년 9월 3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1927년 스탈린을 독대하여 코민테른에 조선공산당을 추인받고 특별혁명군자금을 수령했던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遲耘) 김철수(金錣洙) 선생, 그는 무슨 이유로 북조선의 건국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한의 시골에 칩거하며 여생을 마처야 했을까요? 2018년 4월 한국에서 허겁지겁 급작스레 작고하신 내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의 상을 치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10월에 휴가를..

애국지사 이철규, 그는 누구인가? / 사람과사회™ 2018 겨울 2019 봄

사람과사회™2018 겨울 2019 봄제2권 제3호 통권 제8·9호2635-876X 84People & Column기고애국지사 이철규, 그는 누구인가?이상원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검사관수자원에너지 전문가이자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검사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상원 박사가 증조부인 애국지사 이철..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화백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영원한 우정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을 중심으로] . 부안이 배출한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은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돌린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선진국 유학이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1912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실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성우 이명직 대감님이 일제에 독살되던 1915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 . 1915년에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울자며 ‘귀곡단’과 ‘열지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1916년에는 한국 대만 중국 유학생을 모아 ‘신아동맹단’을 결성하여 독립지사의 길에 들어섰다. 지운 김철수 선생님은 해방되어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14년을 옥살이했다. (2) . 초기 조선공산당 3차 전당대회 전반기 책임비서로 러시아의 코민테른에 참가하여 거액의 군자금을 받아..

월간조선 2016년 9월호 - “우장춘 박사는 찰스 다윈에 비견될 만한 세계적인 석학”

문갑식의 하드보일드우장춘 박사 알리기 나선 세계적 육종학자 한상기“우장춘 박사는 찰스 다윈에 비견될 만한 세계적인 석학” 월간조선 2016년 9월호글·사진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명성황후 시해 가담한 우범선의 아들⊙ 홀어머니 밑에서 온갖 차별 겪으며 유전육종학 연구⊙ ..

[1956년부터 1986년까지 지운 김철수 선생과 방원 이성찬 선생이 주고받은 서찰을 통해 본 근대사]

위키백과에 의하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3월 16일) 선생은 조선공산당 3차 집행부 책임비서로 전북 부안 백산에서 태어난 뒤 1912년 젊은이들의 유학을 독려하는 독립지사 성우 이명직 대감이 돌린 사발통문을 보고 감화되어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유학하였고 19..

방원 이성찬 선생이 총괄 진행한 꽃씨 날리기 행사 - 1962년 4월 8일 14시

부친 방원(芳園) 선생의 유품 중에 나온 포스터입니다. 방원 선생은 수많은 사회활동과 봉사를 아끼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활동 중의 하나는 1962년 4월 8일 국제친선 꽃씨협회 꽃클럽 주최로 한국 최초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꽃씨 날리기 행사를 주도적으로 개..

[4. 제 부친 전쟁영웅 방원 이성찬 선생님을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한량 노릇 하러 다니시던 내 아버님을 무척 미워했습니다. 군사독재의 탄압도 피했지만 능력 없는 부모에게서 탈출도 겸해서 미국으로 연구 조교 자리를 구해 도망을 쳤습니다. 어느 날 내 아들이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고 그 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훌륭한 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식 덕분에 철이 들었고 한량으로 잡기에만 빠져 사신 내 아버지 방원 선생의 삶을 공부했습니다.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의 조교를 지냈고 창경원 초대식물원장을 지냈고 625 한국동란 때 6사단에서 수류탄부상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도 죽음을 넘어 구사일..

나의 조부 이성구(李成求)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0代孫(호장공27世, 호장공26代孫, 목은21세)

https://youtu.be/tVlDRGSl1eA - YouTube www.youtube.com 서울농대 전신인 수원농림학교를 나와 만주국 흥농부 미곡검사관을 지낸 내 조부 이성구 선생의 빛바랜 사진 나의 조부 이성구(李成求)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0代孫(호장공27世, 호장공26代孫, 목은21세) 이성구 (李成求, 1908년 9월 18일~1981년 11월 23일) 선생님은 경기도 수원군 동탄면 석우리에서 농공상부 금광국 이철규 기수의 2남 중 장남으로 출생하셨습니다. 생모이신 영일 정 씨께서는 산후조리가 잘못되어 이성구 선생님이 태어나신 지 1년이 체 못되어 돌아가십니다. 1915년에 7살에는 할아버지 성우 이명직 선생이 일제에 사주를 받고 사랑 체에 장기간 유숙한 일본인 호..

월남 이상재 선생님, 이명직 목사님 그리고 이봉준 사장님

애국에 불타오르는 사람들은 35년의 일제강점기 동안, 핍박과 수탈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려 외국으로 망명하든가, 아니면 싸우다가 죽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굴종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

4대(고조-증조-조-부모)봉사 - 지방쓰는 방법과 제사 지내는 방법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제사나 차례, 하지만 지금은 목숨 바쳐 지금의 대한민국과 나를 있도록 한 조상 할아버지들의 처절한 삶이 고개가 숙어지고 제사와 차례에 정성을 다하여야 후손된 도리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잘난 체 하지 말고 서로서로 상의하면서 지방 하나라도 제대로 쓸 수..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9] 방원 이성찬 선생과 김백봉 선생

한국시간 2023년 4월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하신 김백봉 선생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님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방원 선생님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시절부터 안막 안제승 형제분들과 친구인 인연으로 오랜세월 안제승 선생님의 부인으로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 선생님과 꽃클럽 활동도 함께하시며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님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김백봉 선생님의 가족분들이 새 알러지에 아들 안병철, 딸 안병주와 안나경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저희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습니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6] 방원 이성찬 선생과 정용재 박사

고 우석(愚石) 정용재(鄭瑢載, 1925~2013) 박사님은 1925년 전남 진도 지산면 가치리에서 출생하였다. 별칭은 정만흔이다. 1950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1963년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대학원에서 유전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7년 이화여대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67년 교수로 임명되어 1975년 교육대학원장,1978년 학무처장,1985년 한국생활과학연구소장,1986년 사범대학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도 명예교수로 활동했다. 방원 선생과의 인연은 방원 선생의 절친 이영노 박사가 이화여대 생물과 교수로 봉직하면서 정용재 박사와의 친분으로 자연스럽게 절친이 되었다. 작교하기 전까지 아래 보인 서신처럼 끈끈한 친분을 유지했다. 생전에 하은생물학상과 다수의 논저를 남겼다. 슬하에 연대 원주의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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