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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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 이성찬 111

회정(褱亭) 정문경(鄭文卿, 1922~2008) 선생 작품

방원 선생 유품 보따리에서 또 하나의 보물이 보인다. 바로 회정(褱亭) 정문경(鄭文卿) 선생의 전각 작품이다. 회정 선생은 1922년 충남 청양(靑陽)에서 태어났다. 서울의전(醫專)을 졸업한 의사인 선생은 의사로서의 부귀한 삶도 내던지고 일찍부터 전각에 심취하여 전각예술에 몰입한 사연으로 유명하다. . 생전에 회정 선생이 전각에 뛰어든 사연을 설명하시기를 6.25 부산피난시절에 우연히 구한 제백석 인보를 보면서 시작되었는데, 제백석에게 직접 지도를 받지 못했으나 평생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 정신적으로 사숙(私淑)하여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하셨다. 회정 선생이 백석(白石)의 인예(印藝)에 얼마나 심취해 있었던지 어느 날 밤 꿈속에 백석 노인을 만났는데 그가 손수 그림 한 폭을 그려서 도장을 찍어 ..

열림 필방 강권진 선생 작품

방원 선생 유품 보따리에는 인사동에서 열림필방을 운영하는 열림 강권진 선생의 한글 서예가 눈에 띈다. 강권진 선생은 조선대 법학과 졸업했고 현재 75세 청춘의 나이로 서예는 7세 때부터 시작했다. 한국미술대전, 신미술대전, 한국미술연구회전 창작미술상, 국제미술대전평화통일문화제상, 일본미일전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20년 작업을 목표로 18년 째 성경을 한지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병풍의 길이가 총 5~6Km나 될 것으로 예상돼 기네스북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동양화가 서예가 치고 열림필방에서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구입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터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 +++

방원 선생과 한일작가 전시회 4

오래전 언제인가 동경대 교수를 하는 친구가 일본 한일 국제전시회장에서 내 부친 방원 선생도 뵙고 내 부친의 작품도 보았다고 하면서 워낙 유창하게 일본말을 구사하셔서 일본작가인줄 알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평소 자신의 작품을 어디에 전시하는걸 창피해 하신걸로 보아 그 친구의 뻥이나 기억 착오 정도로 넘긴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이 사실일수도 있겠다는 서찰을 발견했다. 친구분 옥산 선생등을 이끌고 한일전시회를 열었고 내 부친 방원 선생에게 감사한다는 일본 작가의 편지가 아닌가? 내 부친 방원 선생은 내가 알았던 것보다 귀한 재주가 많았던 분인게 확실하다. . +++

왕산(旺山) 박윤오(朴潤五, 1941~2018) 선생 작품

방원 선생 유품 중에 합죽선을 펼칠때마다 놀라움을 금할길 없다. 아니 이 작품은 왕산(旺山) 박윤오(朴潤五) 선생의 작품이 아닌가? 보통 작가들이 평생을 전업작가로 살아온 반면 왕산 선생은 교육청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신 분이다. 퇴직후에 자갈치시장 근처에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적인 서예실로 운영해 오셨다. 죽농 서동균 선생을 사사했다. . 방원 선생이 지운 선생의 영향으로 의재 남농 이당 등 많은 호남과 기호작가들과 친분을 나누셨지만 좋은 작품이 있다면 천지사방으로 출입하셨다. 아무튼 왕산 선생은 방원 선생의 흔치않은 영남 인연중에 한분이다. 아쉽게도 방원 선생 작고하던 해인 2018년 9월 4일 부고를 접했다. . +++

효천(曉泉) 조정숙(趙貞淑, 1954~) 선생 전각 작품

방원 선생 유품 중에 낙관(落款)이 제법 있었고 또 유명한 전각작가의 작품들이 있어서 한국에 갔을때 어디있나 찾아보았는데 필경 두형 누나 여동생이 챙겨간 모양이다. 한점도 내 차례는 없었다. 부친의 낙관은 없지만 서화보따리에는 전각작가들의 전각을 화선지에 찍은 작품들이 보인다. 그 중에 효천(曉泉) 조정숙(趙貞淑) 선생이 부친 방원 선생에게 보낸 작품이 있다. . 전각(篆刻)이란 서화(書畵)에 찍는 낙관(落款)을 새기는 것인데, 주로 전서체(篆書體)로 새기기 때문에 전각이라 한다. 그 재료로는 돌, 상아, 뿔, 금속, 옥 등 다양하고 새기는 방법과 쓰임도 다양하다. 성명인은 음각으로 새겨 찍으며 글자 부분이 희게 나타나므로 ‘백문(白文)’이라 한다. 이와 반대로 호인은 양각으로 새겨 찍으며 글씨에 인주가..

심제(心齊) 이상대(李相大, 1925~)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 보따리에서 아직 심제 선생 서화를 분류하지는 못했지만 여러편의 작품이 있다. 그런데 합죽선과 부채를 정리하다 보니 내 박사학위를 축하해 주신 작품이 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 양금섭(Kyzbma Yang) 교수님 해설: 水流華開: 물이 흘러 꽃이 피네. (*1. 水門 관련 전공 의미 함축. *2. 華 ㉠풀꽃. cf)榮은 나무꽃 ㉡화려하다(榮華) . +++

주봉(周峰) 공영석(孔泳晳, 1934~)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 속에 합죽선과 부채를 보니 한국화가로는 산수화에 능한 옥산 옥전 주봉 그리고 묵화의 대가 구당 상산 선생의 그림들이 보인다. . 그 중에 주봉 공영석 선생은 옥산 김옥진, 일중 김중현, 남정 최정균 선생에게서 사사하였다. 내가 미국 유학을 나오기전 근무하던 잡지협회 부설 잡지연구소가 종로 청진동에 있어서 내 부친 방원 선생의 서울 나드리때 마다 뵈었던 분들 중에 한분이다. 자식벌인 내게도 하대하는 법이 없던 예의 반든한 분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주봉 공영석 선생 작품을 소개한다. . 주봉 선생은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수료하고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작가들과도 서로 또 함께 작품 활동을 하셨다. 주봉 선생의 독특하고 몽환적인 산수화는 보는 사람을 빨아드리는 마력이 있다..

옥전(沃田) 강지주(姜智周, 1936 ~)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 속에 합죽선과 부채를 보니 한국화가로는 산수화에 능한 옥산 옥전 주봉 그리고 묵화의 대가 구당 상산 선생의 그림들이 보인다. . 이어 생전에 부친이 인사동에서 매일이다시피 어울리셨던 옥전 강지주 선생의 작품을 소개한다. . 옥전 강지주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과 옥산 김옥진 선생에게서 사사하였다. 서라벌예대 동양화과와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내가 유학오기전 종로에 직장이 있었는데 옥전 선생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홍길동처럼 나타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정적이고 정열적인 분으로 기억한다. . +++

어느분이 난을 치고 방원 선생이 글을 쓴 작품 3

몇날 몇일을 정리한 내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보따리엔 천여점에 이르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가 있다. 지운 선생 서화를 찍어서 정리하려고 '지운 선생 서화보따리'라 이름 지었다. 그런데 지운 선생 서화 이외의 작품들을 따로 정리하여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정리하고 난 뒤에 지운 선생 서화를 정리할까 했는데. 그 이외의 작품들 숫자나 수준이 만만하지 않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처리하여야 할 판이다. . 어느분이 난을 치고 방원 선생이 글을 쓴 작품이다. . 양금섭 교수님 해설: . 蘭之貴, 何? 香耶? 非也. 四時不變與? 亦非也. 氣也? 節耶? 幽也? 淡耶? 皆非也. 極其言俱此衆美而友其善者之致也. 若非屈原無以爲蘭之友亦無蘭難以爲屈原之友矣. 噫! 是千古之大貴也歟 遲耘先生詩 (난초가 귀한 것은 왜일까? 향..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1927~2018) 선생 한국화 작품 2

내 부친 방원 선생은 키가 크고 준수하셔서 노인이어서 까지 길거리 캐스팅까지 받았으나 창피해 하셨고, 노래도 일품이었으나 대중앞에 절대 서지 않으셨고, 서화나 한국화 전시회도 마다하시며 사셨다. 상의군인 유공신청도 안하셨으니, 아둔한 내 눈에는 늘 실속이 없어 보였다. . 방원 선생 유품 보따리 속에 방원 선생의 동양화 하나가 눈에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내 여동생이 난을 치고 내 부친 방원 선생이 글을 쓴 작품도 몇점 보인다. 내 동생도 종로 옥산 선생 화실과 구당 선생 화실에 넘나들며 나름 사군자를 배웠던 모양이다. . 난 솔직히 가난하게 사는 그분들이 보기 딱해서 가까이 하지 않았다. . +++ 몇날 몇일을 정리한 내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보따리엔 천여점에 이르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가 있다. 지..

상산(象山) 곽현수(郭炫洙, 1947~) 선생 연하장 2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생전에 각별했던 친분만큼이나 구당 이범재 선생의 작품도 많다. 구당선생의 제자분 중에 구당 선생이 아끼던 분이 상산 곽현수 선생이다. 상산(象山) 곽현수(郭炫洙, 1947~) 선생 작품도 보인다. 상산 곽현수 선생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1947년에 출생한다. 개인전을 6회에 걸쳐 개최했고, 1983년 한국방송공사, 1984년 한국미술문화대상전 금상, 1985년 한국미술대전 특선과 금상을 수상한 후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 등 여러차례 수상했다. 1988년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상산 곽현수 선생이 방원 선생에게 보낸 연하장 묵화다. . +++

옥산(沃山) 김옥진(金玉振, 1927 ~ 2017)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옥산 김옥진 선생의 작품도 있다. 액자나 족자로 보관되어 있던것들은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챙겨가고 남은 것들이다. . 내가 박사학위를 받았을때 오랜 친구분인 옥산 김옥진 화백에게 받아 놓으셨던 축하 水仙花(수선화) 부가 있다. 재작년에 내 누나가 액자 족자를 행기다가 찾았다고 알려주었던 그 그림이다. . 金盤露積珠襦重(금반로적주유중) 금반에 이슬이 쌓이니 구슬져 고리가 무겁고 . 玉佩風生翠帶長(옥패풍생취대장) 옥매에 바람이 생기니 푸른 띄가 길도다 . 아마도 날 주려고 받아두셨다가 깜박하고 잊어버리셨거나, 그 사이에 부친에게 치매가 찾아왔나 보다. 이제 학위 받은지도 많은 세월이 흘러 가물거리는데 내 아바지 방원 선생이 미국까지 와서 많이 기뻐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

한빛 권영호(1938~)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서 반가운 분의 한글 서예 작품을 발견했다. 한빛 권영호 선생 작품들이다. 한빛 선생은 1938년 부천군 소사읍에서 출생하신 부천 토박이다. 종로구 계동 우리집 본가 앞에 있던 중앙고를 나와 건국대법대를 졸업하셨다. 내가 소사북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소명여학교 앞쪽에 흐르던 개천옆으로 그림같은 집을 짖고, 금잔듸를 깔고, 꿩도 기르면서 신선처럼 사셨다. 소명여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서울성신여고 영어선생님으로 옮겨가셔서 경인선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셨다. 차분하고 늘 온화한 웃음을 보이신 한빛 선생님은 후일 한글서예가로 일가를 이루셨다. 또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엔 모교인 건국대 법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으셨다는 소식도 들었다. 건대부고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하셨다는 이야기를..

상산(象山) 곽현수(郭炫洙, 1947~) 선생 작품 1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생전에 각별했던 친분만큼이나 구당 이범재 선생의 작품도 많다. 구당 선생의 제자분 중에 구당 선생이 아끼던 분이 상산 곽현수 선생이다. 상산(象山) 곽현수(郭炫洙, 1947~) 선생 작품도 보인다. 상산 곽현수 선생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1947년에 출생한다. 개인전을 6회에 걸쳐 개최했고, 1983년 한국방송공사, 1984년 한국미술문화대상전 금상, 1985년 한국미술대전 특선과 금상을 수상한 후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 등 여러차례 수상했다. 1988년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상산 곽현수 선생의 8군자를 소개한다. . +++

석란(石蘭) 장금순(張金順, 1933~) 선생 작품

방원 선생 유품인 서화보따리 속에 또 눈에 보이는 석란(石蘭) 장금순(張金順, 1933~) 선생의 10군자 병풍용 묵화가 있다. 석란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에게 사사하였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국전에 5회 입선하고 한차례 특선을 했다. 그리고 전남도전에 특선 5회, 유네스코 백일장 장원을 했다. 석란 선생은 연진회원이고 한국미협회원이다. . +++

석파(石波) 선생 서화

부친 방원 선생 서화꾸러미 속에 석파(石波) 선생의 서화도 눈에 띈다. 그런데 몇일동안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느분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도통 검색이 되질 않는다. 혹시 아는분이 있거나 검색의 단초를 알려주실 분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린다. . +++ 石波(석파) - 素砂閑人(경기도 소사에서 한가롭게 지내던 분. 방원 선생과 가깝게 지내던 분으로 추정) - 작품속 내용을 통하여 양금섭(Kyzbma Yang) 교수님 해설

소강(小岡) 부달선(夫達善, 1921~1983) 선생 작품

액자나 족자는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챙겨가고 남은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유품 중에 한지를 둘둘마라둔 지운 김철수 선생 서화 보따리에는 지운 선생이나 방원 선생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분들의 서화가 잘 보존되지 못한 상태로 있었다. 지난 주말 서화들을 정리하다 보니 고 소강(小岡) 부달선(夫達善) 선생의 작품도 제법 눈에 띈다. 소강 선생은 1921년 제주에서 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오사카의 경판상업학교(京阪商業學校)를 중퇴하고 돌아와 인천에 정착하였다. 소강 선생은 소강서도원(小岡書道院)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였고, 검여 유희강 선생과 송석 정재흥 선생 등과 함께 인천서단을 이끌었다. 1962년 처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한 후 7년 연속 입선하였고, 인천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경기도전 초대..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1927~2018)선생 작품 1

내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은 한산이씨 목은 선생의 21대손으로 1927년 종로구 계동 13번지에서 이성구 선생과 순창 조씨 조언례 여사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출생한다. 일본강점기에 수원 농림을 나와 만주국 농림국 미곡검사관(滿洲國 農林局 米穀檢査官)을 지내던 부친 이성구 선생을 따라 만주에서 소학교를 다니다 경성의 봉래 고등 소학교로 유학을 나왔다. . 해방이 나던 1945년 3월 방원(芳園) 선생은 경성원예학교를 졸업하며 바로 초대 창경궁 식물원 원장에 취임한다. 그리고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식물원이 전라북도 전주로 옮겨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근무를 한다. 그해 후학을 양성할 작정으로 전주 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치지만 6.25 전쟁으로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녹설(綠雪) 이상재(李常宰, 1930~1989)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유품인 지운 김철수 선생 서화 보따리에는 고 녹설(綠雪) 이상재(李常宰, 1930~1989) 선생 작품도 눈에 보인다. 녹설 선생은 1930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여 주로 전남 광주에서 활동한 근현대 한국화가이다. 1952년 국민대학교 2년을 수료했고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에게 남종화를 배웠다. 연진회 회원이었으며, 1956년부터 1979년까지 매년 국전(國展)에 작품을 출품하여 2회 특선 및 20회 입선하였다. 1962년에 김옥진, 천경자 등과 함께 를 만들어 활동했다. 1984년에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80년에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현대 한국화전에 참여했고 1982년부터 1987년 사이에 국립현대미술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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