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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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 이성찬 111

[식분(識分) - 자기 분수를 알라! -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한국인의 인식을 바꿔야']

https://youtu.be/dwI4WVvi1ok 백낙천 시에 '식분지족(識分知足) 외무구언(外無求焉)'이라고 '자기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 알면 밖에서 또 뭘 구하리요'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불교도인 동정 선생은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식분(識分)' 휘호로 방원(芳園) 선생의 중년 시절 호인 방산(芳山)을 위해 남기셨다. 미천한 입장에서 그 심오한 뜻은 뒤로하고 '자기 분수를 알라'는 확실한 거 같다.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서찰 등을 일별하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은 '질투(嫉妬)가 지배하는 파멸(破滅)로 가는 소인배(小人輩)의 나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분열(分裂)과 자멸(自滅)을 막는 길은 수신(修身)일 거다. 바로 '배고픈 건..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 1925~1975)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중에 동정 박세림 선생의 작품도 있다.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1925~1975) 선생은 1925년 4월 강화도 내가면 황청리에서 부친 밀양 박씨 동관(東觀) 박헌용(朴憲用) 선생과 어머니 유(柳) 씨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 동정 선생은 6세 때 한문과 궁체에 조예가 깊은 할머니 밀양 변(卞)(1862~1932) 씨로부터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웠다. 변(卞) 씨 할머니가 동정 선생에게는 첫 스승이었다. 2년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동정 선생은 부친으로부터 직접 서예를 배웠다. . 동정 선생의 부친 동관(東觀) 박헌용(朴憲用)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강화도 역사책인 강도지(江都誌)를 간행한 문필가였다. 동정 선생의 서예에 있어 가학(家學)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

[우경희(禹慶熙, 1924-2000)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중에 소품들이 제법 있는데 삽화 같은 연하장들이 또 엄청 있다. 그중에 우경희 선생의 삽화가 눈에 띈다. 방원 선생이 창경궁 식물원, 청량리 원예연구소 분소, 경무대 온실, 한남동 식물원, 부천 소사의 식물원 등 꽃 속에서 사셨으니 그림을 그리는 친구분들이 어쩔 수 없이 많을 수밖에는 없었다. . 언제나 식물원 구석구석에는 스케치하는 화가분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중에 우경희 선생도 있었다. 우경희(禹慶熙, 1924-2000) 선생은 1924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경기중과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분이다. 개성에서 중학교 미술 교사를 하다가 개성에 있던 미군 문화원(USIS)에 스카우트되어 선전 선동 포스터를 그리다 한국전쟁이 터져 서울로 피난 나왔다. . 그때 만화가 유용하다는..

[己未回羊(기미회양) - 지운 선생과 2.8독립선언서]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己未回羊(기미회양)' 작품 지운 선생의 이 작품은 '기미회양(己未回羊)'이다. 지운 선생이 일본 유학시절 유학생 동지들과 함께 1919년 동경 YMCA에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할때가 1919년 기미(己未)년이었다. 다시 기미년이 돌아온건 1979년이다. 60갑자의 기미년을 다시 맞이하신 1979년이 의미가 크셨을 거다. 그러니 '기미회양(己未回羊)'을 여러장 남기셨다. . 생전에 지운 선생은 용서하기 힘든 미운 놈 하나를 들라면 정읍의 나용균(羅容均)이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나용균은 함께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는데 인간이 되어 동지로 사귀었다고 한다. 미적거리는 춘원 이광수도 달래고 또 나용균도 달래서 2.8독립선언도 함께했다. 글 잘..

[한길 일로(一路) 김종기(金鍾起, 1911~1984) 선생의 작품]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 작품 속에 한길 일로(一路) 김종기(金鍾起, 1911~1984) 선생의 작품들이 있다. 아마도 방원 선생이 남농 허건 선생과 친하게 지내신 인연으로 김일로(金一路) 선생과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김일로(金一路) 선생 49세때인 1959년 3월 1일 부터 3월 10일까지 남농(南農) 허건 선생과 김일로(金 一路) 선생의 시화전을 목포 여정다실에서 개최할 정도로 남농 선생과는 절친했다. 당시 동양화의 화제(畵題)를 한글시로 대체한 최초의 한글시 부제시화전(副題詩畵展)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었다. . 생전에 호에 성을 붙여 김일로(金一路)를 사용하셔서 많은 이들이 김일로(金一路)를 성함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김일로(金一路) 선생은 전남 장성에서 1911년에 출생하여 전남과 광주의 아동..

[8/11 - 지운 선생과 의재 허백련 화백과의 우정]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8/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8번째 작품 [지운 선생과 의재 허백련 화백과의 우정]이다. 양금섭 교수님께서 "서예로 박사학위를 가진 전주의 臨池堂 이은혁 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해설을 해주셨다. 두 분께 감사드리며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하자. . 朝陽通穴來 白矢射中壁 出入風千里 浮游塵萬石 . 百世誰曾看 億金吾不易 但恨此豪觀 與君未共席 . 아침 볕이 구멍 통해 들어 흰 화살 벽 가운데로 쏘도다. 바람은 천 리에 드나들고 떠도는 먼지는 일만 섬쯤. . 인간사에서 누가 일찍이 보았을까? 내, 억만금과 바꾸지 않는 것을. 다만 ..

[10/11 - 지운 선생의 혁명동지 毛澤東]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10/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 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10번째 작품 [지운 선생의 혁명동지 毛澤東]이다. 양금섭 교수님께서 "서예로 박사학위를 가진 전주의 臨池堂 이은혁 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해설을 해주셨다. 두분께 감사드리며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하자. . 同庚同志 起同時 風雨當年 意氣兒 對立第三 難擧類 長征萬里 亦其誰 . 羨君至死 憂天下 愧我如今 守四肢 再造中原 可安息 億千弟子 接縱隨 . 동갑내기 동지로 동시에 일어나서 풍우 당년에는 의기의 남아였었지. 이합집산하는 지사들 셀 수도 없었지만 장정만리를 행한 사람은 또 그 누구였나? . 그..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작품

방원 선생의 유품 중 지운 선생의 서화보다리에는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丈夫로서 必히 갖추어야 할 열가지 德目)의 일부 항목도 2폭 병풍용으로 보인다. . 그 첫번째 작품으로는 4번째 항목과 3번째 항목을 2폭짜리 병풍용으로 쓴 작품이다. . 첫 폭은 4번째 항목으로 '雪滿窮巷 孤松特立 丈夫之志節 (설만궁항 고송특립 장부지지절)'로 '눈 가득한 궁색한 거리에 외로운 소나무 홀로 선 것은 장부의 뜻 절개다.' 또는 '萬壑千峰(만학천봉)에 흰눈이 쌓였는데, 소나무 한그루가 외로이 우뚝서 있으니 이는 丈夫의 志操(지조)이다.'의 뜻이다. 이 구절은 '雪滿窮巷'을 '雪滿窮壑'으로 쓰기도 하는데 뜻은 대동소이하다. • 志節 : 굳게지켜 변암없는 節槪(절개). • 萬壑千峰 (만학천봉- 만개의 골짜기와 천개의 봉..

[근대사의 인물들 - 1916년 일본와세다대학 유학인사들]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8/11'진심장구 상편(盡⼼章句 上篇)' 서화 작품 '맹자(孟子)' '진심장구 상편(盡⼼章句 上篇)' 맹자왈(孟⼦⽈); “군자유삼락(君⼦有三樂)”에 나오는 이 말은 원래 一樂也가 아니라 三樂也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에서 마지막 삼락으로.‘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라는 뜻이다. . 原⽂(원문) 전체를 살펴보면 . 孟⼦⽈: “君⼦有三樂, ⽽王天下不與存焉. ⽗母俱存, 兄弟無故, ⼀樂也; 맹자왈: “군자유삼락, 이왕천하불여존언.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 ⼆樂也; 앙불괴어천, 부불작어인, 이락야; 得天下英才⽽敎育之, 三樂也. 득천하영재이교육지, 삼락야; 君⼦有三樂, ⽽王天下不與存焉. 군..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주돈이(周敦頤) 애련설(愛戀說) 671~678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가 나오고 또 나온다. . 이번에도 마지막 서화 댓글로 양금섭(Kyzbma Yang) 교수님이 주돈이의 애련설이라는 작품이라고 아래와 같이 알려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 "갑자년 새해 아침 주무숙공(周敦頤: 1017 ~ 1073)의 애련설(愛戀說)을 기록하다. 92세 늙은이 지운 *애련설 검색해서 대조해 보소." . 주돈이(周敦頤, 1017년~1073년)는 중국 북송시대 도주(道州) 영도(營道, 호남성 道縣) 출신의 유학자이자 성리학자로 자는 무숙(茂叔)이고 호는 염계(濂溪)이다. 본명은 돈실(敦實)이었으나 영종(英宗)의 이름 때문에 ‘돈이(敦頤)’로 고쳤다. 시호는 원공(元公)이며 저서에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

[山中採薬詩 - 지운 김철수 선생의 인간관계]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율곡시 '山中採薬詩' 작품 지운 선생의 작품 중에는 병풍으로 액자로 그리고 족자로 제작된 것들이 있다. 이 역시 대부분 한국에 있는 내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가져다 잘 보관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고도 남아 있던 내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 중에 지운 선생 족자가 있다. 이 또한 양금섭 교수님이 그 해설을 해주셨다.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자. 採藥忽迷途(채약홀미도) 千峯秋葉裏(천봉추엽리)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 林末茶烟起(임말차연기) 약초 캐다 문득 길잃었는데 온산 봉우리들은 단풍이 한창. 산 속 스님은 물 길어 돌아가는데 숲 가에는 차끓이는 연기가 이네. 戊午之旦 錄栗谷先生 山中採藥詩 爲芳山花伯 淸賞 八十六翁 芝雲 무오년 새아침 방산화백(芳..

[6/11 - 노 혁명가의 식솔들에 대한 연민]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6/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6번째 작품 [노 혁명가의 식솔들에 대한 연민]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靜對庭花 如有覺 落花情不 遜開花 元來開落 是花事 可笑人間 語自多 . 고요히 뜰안의 꽃을 보니 느낌이 있는 듯 낙화의 마음은 개화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걸. 본디 꽃 피고 지는 것은 꽃의 일이건만 가소롭게 사람은 쓸데없이 말이 많구나. . 己卯晩秋 獨步荒庭 見落花滿地 偶得此一絶 而消得當時某種憂鬱之情懷者也 丁巳春 八十五翁 芝雲 을묘(1975)년 늦가을에 홀로 시들어 가는 뜰을 거닐다가 떨어진 꽃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10폭병풍 蘇東坡 ⾚壁賦 641~650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가 나오고 또 나온다. . 댓글로 양급섭(Kyzbma Yang) 교수님께서 소동파의 적벽부라고 아래와 같이 알려 주셨다. "순서 제대로 잘 맞추어 놓았구만! 그 유명한 소동파의 네. 麗末 朝鮮年間에 조선인애송시 빌보드 차트에서 No.1을 놓치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蘇의 反髙麗 성향에도 불구하고. 마치 섬것들 反韓 정서 속에서도 BTS 음악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듯이. 심지어 현대문학 전공인 꾸지마도 청춘시절엔 이걸 다 암송했었을 정도. 未堂 선생께서 만년까지 당신이 기거하시는 방 아랫목에 세워둔 두폭 병풍도 바로 이 적벽부. 후반의 蘇子曰부터 끝까지를 초서로 쓴 것이었지." . 하여 적벽부(⾚壁賦)를 찾아보았다. . 적벽..

[5/11 -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인연]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5/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5번째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인연]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大雨初收 萬壑淸 奇花晩發 四隣明 羨子光山 今日在 稱來無等 不虛名 . 큰비 처음 그치니 만 골짜기 말끔하고 기이한 꽃 늦게 피니 사방이 훤하네. 그대의 광주에 오늘이 있게 된 것 부러우니 전해오던 무등산 허명이 아니었네. *無等 : 견줄 바 없음 . 右甲寅秋 往訪無等山春雪軒 關以博士學位受否問題議論紛紛然 許百鍊博士學位狀已O? 全南大學事勢難處 故余亦力勸受而祝賀之 芝雲 ..

[金盤露積珠襦重 玉佩風生翠帶長]

난 아바지 사랑 받는 자식이 아닌 줄 알았다. 교육감상을 받고 졸업한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내 아바지는 없었다. 대신 설대 의대를 합격한 내 큰 엉아가 참석해서 내 졸업식은 내 졸업 축하가 아니라 내 큰 엉아 설대 의대 합격 축하식을 방불케 했다. .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석사 졸업식때는 내 부친은 커녕 집안 식구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에서 녹화사업 받다 무릎연골이 작살이 나서 통합병원에 장장 6개월을 입원했어도 집안 식구 아무도 면회 한번 없었다. . 작은 엉아는 한술 더 떠서 남들 다 하는 군생활 꾀병부려 병원에서 편하게 군대생활 한다고 소문을 낼 정도로 사랑받지 않는 군 식구였다. . 그런데 그런 아바지가 딱 한번 졸업식에 참석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박사학위 졸업식때다. . 부친 방..

구당(九堂) 이범재(李範載, 1910~1993) 선생 작품

생전 부친 방원 선생과의 친분으로 보아 구당 선생의 작품이 제법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부친의 유품 보따리에서 얼마나 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훌터본바로는 지운 선생 서화가 대부분일듯 하다. 부친이 소장하셨던 작품이 액자나 족자 하다못해 부를 해두셨기에 구당선생의 작품은 나의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잘 챙겨 두었을 것이라 믿어본다. . 구당 선생은 1910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광주로 올라와 살면서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선생으로부터 묵화를 사사 받았다. 1938년 연진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고, 1945년 해방이 되자 인민위원회 보성읍위원장에 그리고 4.19혁명 뒤엔 보성읍장에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자 읍장을 그만두..

지운 선생과 노구조리 그리고 울릉도 '고고고고(古枯孤高)'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다. 방원 선생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다. 젊은시절부터 오랜세월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 선생과 동갑으로 오랜세월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다. 그런데 가족들이 새 알러지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러해동안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벗하며 지내야 했다. 새 알러지로 눈비비고 따끔거리면서 모이를 주고 물도 주고 냄새나는 똥도 치워주면서 ... . 1972년 어느날, 부안 백산에서 지운 선생이 종다리 여러쌍을 들고 오셨다. 지운 선생 말씀이 몇년전 신문에..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7~1987) 선생의 서찰]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중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 선생이나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7~1987) 선생 그리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선생 등 유명하고 작품이 고가를 형성하는 작품들은 액자로 족자로 남겨졌고 이미 두 형과 누나 여동생 잘 보관하고 있기에 화선지로 둘둘 말려 남겨진 보따리에서는 발견할수 없다. 그런데 남농 선생이 부친 방원 선생에게 보냈던 서찰이 한통 보인다. 작품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지만 기록을 위해 남겨두고자 한다. . +++

[지운 선생이 보낸 서찰의 주소를 통해 본 나의 주소지]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유품 중 지운 김철수(遲耘 金錣洙) 선생과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간에 오간 세필 명필의 서찰들이 1945년부터 지운 김철수 선생이 작고하던 1986년 2월까지 166통이 고스란하게 모여 있다. 그 봉투를 시절별로 살펴본다. . 1. 서울 종로 신신백화점 - 꽃집 2. 서울 용산 한남동 544 - 한남식물원 3. 경기 부천군 소사읍 조종리 199-2 - 방산식물원 4. 경기 부천시 원미동 199-2 - 방원식물원 5. 서울 용산 청파동 3가 107-36 . +++

상산(象山) 곽현수(郭炫洙, 1947~) 선생 작품 3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생전에 각별했던 친분만큼이나 구당 이범재 선생의 작품도 많다. 구당 선생의 제자분 중에 구당 선생이 아끼던 분이 상산 곽현수 선생이다. 상산(象山) 곽현수(郭炫洙, 1947~) 선생 작품도 보인다. 상산 곽현수 선생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1947년에 출생한다. 개인전을 6회에 걸쳐 개최했고, 1983년 한국방송공사, 1984년 한국미술문화대상전 금상, 1985년 한국미술대전 특선과 금상을 수상한 후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 등 여러차례 수상했다. 1988년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상산 곽현수 선생의 8군자 8폭 병풍 2쌍에 이어 소 작품들을 소개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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