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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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 906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9] 방원 이성찬 선생과 김백봉 선생

한국시간 2023년 4월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하신 김백봉 선생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님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방원 선생님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시절부터 안막 안제승 형제분들과 친구인 인연으로 오랜세월 안제승 선생님의 부인으로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 선생님과 꽃클럽 활동도 함께하시며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님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김백봉 선생님의 가족분들이 새 알러지에 아들 안병철, 딸 안병주와 안나경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저희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습니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8] 방원 이성찬 선생과 조동화 선생

고 조동화 1세대 무용평론가 춤 잡지발행인 [명복을 빕니다]국내 첫 무용 전문 월간지 ‘춤’ 창간 조동화 선생동아일보입력 2014-04-25무용 비평 기틀 다진 한국 무용계 큰별 1976년 ‘춤’을 창간해 국내 무용평론의 토대를 마련한 고 조동화 선생. 동아일보DB 한국 무용평론계의 대부이자 ..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7] 방원 이성찬 선생과 엄규백 박사

양정의숙 이사장 엄규백 박사 2020년 10월 22일 별세하셨습니다. 엄규백(88) 양정의숙 명예이사장이 2020년 10월 22일 숙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양정의숙 설립자 엄주익(1872~1931) 선생의 손자인 엄 이사장은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1973년 양정고 5대 교장으로 취임해 2007년 퇴임할 때까지 35년간 학교 현장을 지켜 ‘한국 중등 교육의 산증인’으로 불렸습니다. 2001년 인촌상(교육 부문), 2008년 올해의 천원교육상, 201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유족으로 아내 안재수씨와 아들 엄대호씨, 딸 엄인경·미경·문경씨가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이었고, 발인 2020년 10월 25일 7시였습니다. 엄규백 이사장, 佛 레지옹 도뇌르 ..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6] 방원 이성찬 선생과 정용재 박사

고 우석(愚石) 정용재(鄭瑢載, 1925~2013) 박사님은 1925년 전남 진도 지산면 가치리에서 출생하였다. 별칭은 정만흔이다. 1950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1963년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대학원에서 유전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7년 이화여대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67년 교수로 임명되어 1975년 교육대학원장,1978년 학무처장,1985년 한국생활과학연구소장,1986년 사범대학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도 명예교수로 활동했다. 방원 선생과의 인연은 방원 선생의 절친 이영노 박사가 이화여대 생물과 교수로 봉직하면서 정용재 박사와의 친분으로 자연스럽게 절친이 되었다. 작교하기 전까지 아래 보인 서신처럼 끈끈한 친분을 유지했다. 생전에 하은생물학상과 다수의 논저를 남겼다. 슬하에 연대 원주의대 산..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5] 방원 이성찬 선생과 전병규 장군

2014년 5월 30일 전병규씨 (전 육군 제33사단장) 별세 #살인마 #전두환 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게엄전국확대를 기화로 5.16쿠테타의 2인자 김종필도 잡아다 봉변을 가했다. 그 관련 회고록을 보다가 내 부친 방원 선생도 김종필과 같은 육사8기가 될뻔했다고 이야기하신게 기억이 났다. 죽마고..

근대사의 인물들 - 1916년 일본와세다대학 유학인사들

앞줄 중앙 지운 김철수 선생은 나의 고조부 이명직 선생의 '망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유학을 나가라!'는 사발통문에 감화되어 한학을 접고 일본유학을 결행한다. 나의 고조부 이명직 선생이 친일파에 암살당한 1915년, 그소식을 듣고 지운 김철수 선생은 귀곡단을 조직하고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선다. 아래의 사진은 내 부모님의 중매를 했던 인연으로 내가 지운 김철수 선생을 친할아버지 이상으로 접했던 연고로 보관하게 되었다. . 맨 뒤줄 좌에서 3번째는 조선에 식민사관을 뿌리깊게 심어버린 우봉 이병도 선생도 함께 자리를 했다. 당시 이병도는 20살의 나이로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유학중이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이병도 ). 1980년도에 작성된 사진 뒷면의 사진인물들의 정보에..

방원 이성찬 선생 평전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칠포세대에게 / 2015년 06월 26일(金)

[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칠포세대에게 / 2015년 06월 26일(金) 은미희 / 소설가 삶은, 생은, 늘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다. 비워야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고, 채움으로써 더 새로워질 수 있다. 그 비움과 채움의 연속에서 사람은 더 깊어지고 커지며, 성숙해 나간다. 제아무리 욕심 ..

[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농부의 마음으로 / 2015년 05월 29일(金)

[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농부의 마음으로 / 2015년 05월 29일(金) 은미희 / 소설가 일주일에 한 번 수업 때문에 지방을 오르내린다. 피곤한 일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새벽에 부산을 떨며 집을 나선 길이니 차 안에서라도 잠을 보충하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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