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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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129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10폭병풍 蘇東坡 ⾚壁賦 641~650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가 나오고 또 나온다. . 댓글로 양급섭(Kyzbma Yang) 교수님께서 소동파의 적벽부라고 아래와 같이 알려 주셨다. "순서 제대로 잘 맞추어 놓았구만! 그 유명한 소동파의 네. 麗末 朝鮮年間에 조선인애송시 빌보드 차트에서 No.1을 놓치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蘇의 反髙麗 성향에도 불구하고. 마치 섬것들 反韓 정서 속에서도 BTS 음악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듯이. 심지어 현대문학 전공인 꾸지마도 청춘시절엔 이걸 다 암송했었을 정도. 未堂 선생께서 만년까지 당신이 기거하시는 방 아랫목에 세워둔 두폭 병풍도 바로 이 적벽부. 후반의 蘇子曰부터 끝까지를 초서로 쓴 것이었지." . 하여 적벽부(⾚壁賦)를 찾아보았다. . 적벽..

[5/11 -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인연]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5/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5번째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인연]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大雨初收 萬壑淸 奇花晩發 四隣明 羨子光山 今日在 稱來無等 不虛名 . 큰비 처음 그치니 만 골짜기 말끔하고 기이한 꽃 늦게 피니 사방이 훤하네. 그대의 광주에 오늘이 있게 된 것 부러우니 전해오던 무등산 허명이 아니었네. *無等 : 견줄 바 없음 . 右甲寅秋 往訪無等山春雪軒 關以博士學位受否問題議論紛紛然 許百鍊博士學位狀已O? 全南大學事勢難處 故余亦力勸受而祝賀之 芝雲 ..

[4/11 - 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4/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4번째 작품 [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作意東君 又復情 羣生俾得 邀善鳴 仁鳳猶及 痴聾痼 鼓舞相通 聲外聲 *東君 : 종다리를 지칭 . 종달새를 노래하려는데 정 또한 깊어서 뭇생명을 좇아 좋은 울음소리를 맞아 얻었네. 착한 봉새 소리가 오히려 귀머거리에게 미치니 북장단과 춤사위가 소리 밖의 소리로 서로 통하네. . “己酉(1975)春 謹和 遲耘 仁兄 雲雀詩 毅弟” 詩與書掛於壁右 而時吟時味 如對逝友之淸儀 丁巳(1977..

[3/11 - 지운 선생의 종달새 프로젝트와 나]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3/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3번째 작품 [지운 선생의 종달새 프로젝트와 나]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年來雲雀 養多情 隨處隨時 耳內鳴 世人莫笑 耳聾漢 臨境能聽 聲外聲 *雲雀: 구름참새, 즉 종다리의 이명(異名). . 이 해 들어 종달새 기르느라 너무 몰두했더니 시시때때로 이명[=幻聽]이 들리네. 세상 사람들아 귀머거리라고 웃지를 마소 필요할 때에는 소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오. . 己酉春日 過三相橋邊 見雲雀之翔 眞偶得此一絶 而視之于毅齋畵伯 笑有和韻傑作 書之于此幅(?)耳 八十五翁 芝雲 기유..

[2/11 - 목숨과 맞바꾼 국화화분 하나]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2/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두번째 작품 [목숨과 맞바꾼 국화화분 하나]이다. . 別居何事多送迎 (별거하사다송영) 迎菊當夕又迎月 (송국당석우영월) 月白花白我心白 (월백화백아심백) 白莫相逆將奈別 (백막상역장내별) . 조선공산당 2차 후반기와 3차 당비서 지운 김철수는 1926년 코민테른에 파견되어 스탈린을 독대하여 조선공산당을 승인받고 공산혁명 군자금을 받아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단체에 나누어준다. 그 군자금을 노리는 임시정부 백범 김구의 살해 위협속에 백주 대낮에 김립 등 조직원을 잃고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다 1930년..

[1/11 - 죽음을 넘나드는 경성감옥 중병동 감방 생활]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1/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첫번째 작품 [시신에서 부활한 지운 김철수 - 죽음을 넘나드는 경성감옥 중병동 감방 생활]이다. . 平生我自樂 友有數三知 苟許一心契 何關千里離 . 寂時每會見 難處好相隨 有斯眞箇趣 (眞箇=眞個 진실로, 참으로 *근대의 白話 관용어) 時賦活歌詩 . 평생 나 홀로 즐기니 마음 통하는 벗은 셋 남짓 구차히 일심계에 들기를 허락했으니 어찌 천리 먼 길을 상관하리 . 적적할 때마다 만나 보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주네. 좋은 일에는 진실로 함께 즐기고 때때로 생계를 돕고 시를 화창한다네. . 檀紀四二六..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진정한 의미]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작품 논어(論語) 첫머리는 세 가지 즐거움으로 시작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토를 달아 외우던 기억이 새롭다. .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 지운 김철수 선생도 배움의 기쁨과 벗과 어울림의 기쁨을 인생의 낙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서화보따리에서는 헤어지고 좀슬은 서화를 많이도 남기셔서 나오고 또 나온다. .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413~440

"독립운동도 사회혁명운동도 다 넉넉한 돈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자금을 걷어 독립운동과 사회혁명운동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 코민테른에서 지급한 공산혁명군자금이 없었다면 일본침략기의 그 어떤 독립운동도 불가능했다. 이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보겠다. . +++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감. . 유래 및 용례 이 말은 ‘笑門萬福來(소문만복래)’와 대를 이루어 잘 쓰이는 말이다. 집안이 화목하려면 여유와 웃음이 있어야 한다. 웃음이 있으려면 입과 혀를 거칠게 놀리지 말아야 한다. 입과 혀에 관한 다음 시를 보자.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 .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 ‘禍自口出(화자구출) 病自口入(병..

[金盤露積珠襦重 玉佩風生翠帶長]

난 아바지 사랑 받는 자식이 아닌 줄 알았다. 교육감상을 받고 졸업한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내 아바지는 없었다. 대신 설대 의대를 합격한 내 큰 엉아가 참석해서 내 졸업식은 내 졸업 축하가 아니라 내 큰 엉아 설대 의대 합격 축하식을 방불케 했다. .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석사 졸업식때는 내 부친은 커녕 집안 식구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에서 녹화사업 받다 무릎연골이 작살이 나서 통합병원에 장장 6개월을 입원했어도 집안 식구 아무도 면회 한번 없었다. . 작은 엉아는 한술 더 떠서 남들 다 하는 군생활 꾀병부려 병원에서 편하게 군대생활 한다고 소문을 낼 정도로 사랑받지 않는 군 식구였다. . 그런데 그런 아바지가 딱 한번 졸업식에 참석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박사학위 졸업식때다. . 부친 방..

경성감옥 속의 하얀 국화 화분 하나 그리고 지운 김철수

조선공산당 2차 후반기와 3차 당비서 지운 김철수는 1926년 코민테른에 파견되어 스탈린을 독대하여 조선공산당을 승인받고 공산혁명 군자금을 받아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단체에 나누어준다. 그 군자금을 노리는 임시정부 백범 김구의 살해 위협속에 백주 대낮에 김립 등 조직원을 잃고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다 1930년 일제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고 감옥생활을 시작한다. 독립군의 변론을 자처한 김병로 선생과 이인 선생의 항소권유를 '조선의 법이 아닌 일제의 법에 판단받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경성감옥 감옥병동에서 수감중일때 사연을 하나 소개한다. . 지운 선생은 경성감옥 간수들에게 국화 화분 하나를 요청한다. 감히 죄수가 화분을 요구한다고 무차별 구타를 하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졌지만 지운 선생은 그에 ..

지운 선생과 노구조리 그리고 울릉도 '고고고고(古枯孤高)'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다. 방원 선생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다. 젊은시절부터 오랜세월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 선생과 동갑으로 오랜세월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다. 그런데 가족들이 새 알러지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러해동안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벗하며 지내야 했다. 새 알러지로 눈비비고 따끔거리면서 모이를 주고 물도 주고 냄새나는 똥도 치워주면서 ... . 1972년 어느날, 부안 백산에서 지운 선생이 종다리 여러쌍을 들고 오셨다. 지운 선생 말씀이 몇년전 신문에..

[지운 선생이 보낸 서찰의 주소를 통해 본 나의 주소지]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유품 중 지운 김철수(遲耘 金錣洙) 선생과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간에 오간 세필 명필의 서찰들이 1945년부터 지운 김철수 선생이 작고하던 1986년 2월까지 166통이 고스란하게 모여 있다. 그 봉투를 시절별로 살펴본다. . 1. 서울 종로 신신백화점 - 꽃집 2. 서울 용산 한남동 544 - 한남식물원 3. 경기 부천군 소사읍 조종리 199-2 - 방산식물원 4. 경기 부천시 원미동 199-2 - 방원식물원 5. 서울 용산 청파동 3가 107-36 .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396~397

천류불식(川流不息) . 이글은 공자의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 子在川上曰:“逝者如斯夫!不舍晝夜。” 자재천상(이라가) 왈 “서자여사부(인저)! 불사주야(로다).”하니라. *해설 : 공자가 시냇물 가에 있다가 이르기를 “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마무르지 않는도다.”하였다. *요지 : 공자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이 세상의 모든 것 쉼없이 흘러감을 지적하였음 *낱말 1. 서逝 : ‘갈 서’=서천逝川. ‘죽을 서’=서거逝去 2. 여사부如斯夫 : ‘이와 같구나’의 뜻. ‘같을 여’. ‘이 사’. ‘감탄 종결 어조사 부’ 3. 사舍 : ‘머무를 사’=불사不舍. ‘놓을 사’=사아기수舍我其誰. ‘집 사’=관사官舍. 4. 주晝 : ‘낮 주’=백주白晝. 화畫(그림 화)와 구분 할 것. . 子在川上,..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398~410

지운 선생의 서화 작품 해설이 돌팔이가 왈가왈부 할 사안이 아니다. 주변에 한문 공부 좀 했다는 일본 중국 대만 친구들 조차 돌팔이 내 한문실력(?)에 감탄 할 정도로 한국이 한문실력의 종주국이긴 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한문에 한소식 하신 분들의 댓글 재능기부에 맞기고자 한다. 난 내 기억과 지운 선생이 사사로이 내 부친에게 보냈던 서찰 내용 중에 한국정신문화원 간 '지운 김철수' 증언집에 거론된 내용을 중심으로 비사형태로 남겨보고자 한다. . [코민테른 군자금의 행방과 지운 김철수] . 증언집에는 코민테른에서 받은 군자금의 내용(200만루브르, 100만루브르 금괘)도 나름 나온다. 지운 선생은 그 엄청난 공로조차 증언집에서는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동지들에게 돌린다. 사회혁명당과 러시아 한인사회당이 박진..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귀거래사(歸去來辭)' 8폭 병풍 2점 서화 작품 357~382

지운 할아버지 서화 속에서 배접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너덜거리는 내 큰엉아 결혼 축하 '천지기념 장수가복(天地記今 長守嘉福)' 휘호를 발견했다. 이어서 8폭 '도연명 귀거래사(陶淵明 歸去來辭)' 병풍용 서화도 발견했다. 또 따로 큰형에게 주는 귀거래사 소병풍용 8폭짜리 서화도 나왔다. 지운 선생의 큰형 화혼 축하 서화이니 잘 보관하다 한국가면 배접이라도 해서 선물로 줘야겠다. 아니면 나중에 박물관 만들어 전시하던가 ... . +++ 1. 이태원 박사 결혼 축하 휘호와 8폭 귀거래사 병풍용 서화 2. 陶淵明(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 五斗米 때문에 鄕吏에게 허리 굽혀 알랑거리지 않겠노라! . 陶淵明은 中國 東晋사람으로 中國의 代表的인 詩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陶淵明의 여러..

[지운(遲耘) 김철수(金錣洙, 1893-1986) 선생과 자임(子任) 모택동(毛澤東, 1893-1976) 주석과의 인연] 386-395

지운 선생이 일본 유학 당시인 1916년에 결성한 신아동맹단에는 조선인 10명, 대만인 10명, 중국인 20명이 가담했다. 참여 인사들의 일부 성함은 한국정신문화원 간 '遲耘 金錣洙'에 나와있다. 지운 선생이 주축된 조선 유학생들은 1920년 조선에서 사회혁명당을 창당한다. 또 중국측 참여인사들은 중국에서 대동단을 결성한다. 그 대동단은 1921년 상해에서 중국공산당 결성의 핵심이 되었고 결성방식은 지운 선생의 조직결성 방식을 따랐다. 훗날 지운 선생이 중국과 러시아를 오갈때 동갑인 모택동을 친구로 삼을수 있는 바탕이 될수 있었다. 1976년 9월 9일 모 주석 사망시 그의 죽음을 애도한 지운 선생의 '만모동지(挽毛同志)' 휘호도 이 서화 보따리에서 수십편 찾았다. . 생전에 중국과 러시아에서 모 주석과..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272~285

십여년전 강현 구들연구소를 방문했을때 무운 김효명 선생이 읽어보라고 주신 두꺼운 책이 몇권있다. 한국구들의 기법을 정리한 무운 선생의 책과 함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99년에 발간한 '芝雲 金綴洙'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내 부친 유품 속에도 있어 내가 두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시간날때 마다 쭉 읽어 보았는데 내용이 어릴때부터 두달에 한번씩 대수리에서 올라오셔서 내방에서 주무시면서 들려주셨던 사회주의 관련 이야기들이었다. . 그 책에는 지운 선생의 장손주 김소중 선생과 고 백산고 이사장 고산 정진석 선생 그리고 무운 김효명 선생이 소장했던 녹음테이프를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사회주의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빨갱이타령하던 한국사회에서 저절로 작용했던 보..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251~271

지운 선생에 대한 나의 기억도 완전할수는 없다. 또 지운 선생이 40여년에 걸쳐 내 부친 방원 선생에게 보내신 엽서에서도 사사로운 내용 중에 역사적인 사실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수도 없다. 하여 지방 언론 매체에 지운 선생에 대한 기고문을 여러편 올리신 사학을 전공한 전 백산고 정재철 교감 선생의 기고문들을 모아 보기로 했다. . 이번엔 2003년 01월 20일자 부안21에 올려진 정재철 선생의 "[김철수] 민족의 해방과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을 소개한다. . 민족의 해방과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 . 정재철(전 백산고등학교 교감) . 작년(2002년) 4월 24일에는 부안에서 지운 김철수 선생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遲耘 金철洙』자료집이 출판되면서, 그의 탄생 1..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2폭 소병풍 2점 서화 작품 327~332

전 백산고 교감을 지낸 정재철(鄭在喆, 1955-)선생은 지운 선생과 관련된 기고문을 여러편 남기셨다. 지운 선생이 기거하던 대수리가 백산중고와 지척이고 1949년 백산중고를 설립한 고산(孤山) 정진석(鄭振奭, 1920-2005) 선생이 지운 선생 막내 동생인 김복수(金福洙) 선생과 함께 청년시절 부안군 공산주의 청년동맹을 결성한 인연이 있을 정도로 지운 선생과 백산중고는 인연이 깊기도 하다. 정재철 선생은 1955년 8월 1일 부안군 주산면 화정에서 주산지서 경찰공무원 정득술 선생과 전주 이씨 어머니 사이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백산중고를 나와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니 나에게는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88년 전교조 이전의 전교협 활동부터 시작했던 민주인사이기도 하다...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 소병풍 서화 작품 312~324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 소병풍 서화 작품 312~324 . 지운 선생의 서화를 정리하면서 나름데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지운 김철수'도 읽어보고 또 지운 선생을 소재로 한 학위논문 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분히 소설처럼 쓰인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그나마 나름 사실에 부합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김경민 전 부안독립신문 대표이사가 2010년 7월 28일자 부안독립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운 선생이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활동한 상황을 정리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가 되다조국의 광복과 통일 - 스러진 혁명의 꿈 - 지운 김철수 / 김경민(부안독립신문 전 대표이사)] . 조선공산당에 참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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