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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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 906

[제 조카가 UC Riverside 경제학과 3학년 편입에 합격했습니다!]

[제 조카가 UC Riverside 경제학과 3학년 편입에 합격했습니다!] 한국 부모들이 제 몫을 못하는건 제 형제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아들과 동갑이고 어려서도 자주 보고 귀여워하던 조카입니다. 한국 강남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재수해서도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대학을 가질 못해서 ..

[나의 뿌리: 한산이(韓山李)씨29世 인재공(麟齋公)22世-광목공(光牧公)21世-안소공(安昭公)19世-직재공(直哉公)18世-이사목공 (李思牧公)10世 후손]

稼亭先祖 遺訓: 我之子孫 百代至親 아지자손 백대지친(我之子孫 百代至親): 나의 자손들이여 백대가 지나도록 친하게 지내라! 얼마 전, 잘 알던 지운 김철수 할아버지와 나의 부친이 모셨던 우장춘 박사의 사연을 접하였다. 일본강점기 때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유학한 지운 할아버..

지운 김철수(遲耘 金隋(綴)洙) 선생을 만나다

지운 김철수(遲耘 金隋洙,金綴洙를 잘못 기억했을 듯) 선생을 만나다 修菴 金徹重 나는 이 하숙집에서 지운 김철수 선생을 처음 만나 뵈었다. 어느 날 하숙집에 한복 두루마기에 중절모자를 쓰고 탐스러운 수염이 넉넉하게 나신 청수한 노인 한 분 이 오셨기에 이 댁의 어느 시골에 사는 친척이겠거니 하였더니 인사를 드리고 보니 말로만 들었던 독립투사요 조선의 초기 공산당을 이끌었던 ‘원천리 독립투사 김철수’ 바로 그 분이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주인 주인식씨의 고종 4촌 형님이었던 것이다. 지금 계화면의 돈지에 사는 지운 선생의 둘째 따님 김용화 여사도 이 무렵에 이집에서 처음 뵈었다. 그 후로는 변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한 김용술 아저씨가 부안읍내에 문방구점을 개업한 이후 그곳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우리들이 결..

지운 김철수선생 – 좌익 소아병을 극복한 정치인

지운 김철수선생 – 좌익 소아병을 극복한 정치인 2005년 8.15 광복의날에 독립장을 추서 받은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 선생은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고 실천에 옮긴 분입니다. 선생은 동양3국의 초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며 일본·러시아·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3년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독특한 점은 1920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까지 지낸 선생은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북을 택하지 않고 1986년 돌아가실때까지 남한 땅을 지키셨습니다. 한국 사회주의자를 연구하는 이들은 “거물급 사회주의자인 선생이 남한 땅에 계속 생존해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1893년 전북 부..

이상원 (李相遠, Samuel Lee)

이상원 (李相遠, Samuel Lee) 이상원, Dr. Sam Lee 李相遠, Samuel Lee 출생 1961년 6월 11일 음력 대한민국서울특별시종로구계동13번지 거주지 미국캘리포니아팔로알토 별칭 자는 인제(忍齊) 아호는 황장(黃薔) 학력 로드아일랜드주립대 환경공학박사 직업 5.18 민주화유공자, 수필가, 언론인, 사회계몽가, 사상가, 재미 농공학자, 수공학자, 수문학자, 환경공학자 소속 80518 카페주인장, 미국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검사관 종교 천주교 배우자 안동김씨 김영신(金玲伸) 자녀 아들 이 마이클 부모 부 이성찬(李盛燦) 모 전주이씨 이춘연(李春淵) 웹사이트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이상원(李相遠, Samuel Sangwon Lee, 음력 1961년 6월 11일~ )은 대..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1代孫(호장공28世, 호장공27代孫, 목은22세)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1代孫(호장공28世, 호장공27代孫, 목은22세)]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스크랩] 지운선생님의 약력(고미술네트워크 펌)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1893-1986) -일제 감옥살이 13년 8개월 1893 전북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아버지 김영구(金永九)와 어머니 신안(新安) 주씨(朱氏) 사이에서 태어남 1906 김아로와 결혼. 3남2녀 낳음(금남,용선,용일,용화,용덕) 1908 이평면 말목에 있는 구례군수를 역임한 한학자 서택환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에 눈뜸. 군산금호(金湖) 학교에서 신학문 공부시작 1912 와세다대학 정치과 입학 1915 재일본유학생들과 ‘열지(裂指)동맹’결성 1916 조선인, 중국인, 대만인과 함께 ‘신아동맹단’ 조직하여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선언함. 귀국 1920 ‘사회혁명당’결성 (최팔용, 이봉수, 주종건, 최혁, 장덕수 ) 1921 이동휘와 함께 ‘고려공산당’ 창립(상해), 재무담당 ..

[스크랩] 독립운동가 故 김철수 선생 별세 26년만에 대전현충원에

부안 백산 출신 독립운동가 故 김철수 선생 별세 26년만에 대전현충원에 하청리 선영서 옮겨 안장 2012년 05월 15일 (화) 00:07:34 정진우 epicure@jjan.kr ▲ 부안 백산출신의 독립운동가 고(故) 지운(遲耘) 김철수 선생의 유해를 백산 하청리에서 옮겨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고 있다. 부안 백산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고(故) 지운(遲耘) 김철수 선생(1893~1986)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고인이 별세한 지 26년만이다. 국립대전현충원 직원들은 이날 오전 고인이 영면한 부안군 백산면 하청리의 선영을 방문, 유해를 현충원에 모신 뒤 독립운동가묘역에 이장하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날 이장식에는 유족들이 참석해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신 고인의 뜻을 기렸다. 사회주의 독립운동사의 거..

[스크랩]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사회주의자(빨갱이)라는 이유로 평생 남한 공안당국의 감시대상 1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 민족적인 성향 때문에 북한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초창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고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에 노력한 공산당 최고 원로였다. 2005년 광복 60년을 맞아 뒤늦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부안군 백산면 출신인 지운은 군산 금호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을 다닌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일본과 러시아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으며 1926년 제3차 조선공산당(일명 ML당) 결성시 책임비서를 맡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두차례에 걸쳐 13년 8개월간 ..

[스크랩] ㆍ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지낸 지운 김철수 서예 회고전

독립운동가의 옥중 한시 ㆍ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지낸 지운 김철수 서예 회고전 항일애국지사이며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낸 독립운동가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의 서예 회고전이 열린다. 김철수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독립운동을 했지만 사회주의자라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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